
판을 뒤적이다 보면 대충은 내가 어떤 이유로 구매를 했는지 기억나는 판들이 대부분이다.. 살령 내가 그리 즐겨 듣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평가와 그에 따른 호기심이라던가.. 아니면 걍 껍닥이 이뻐서라던가 류의 묻지마 구매를 했다고 하더라도 대충은 생각이 나곤 한다.. 날씨가 졸라 더워진 김에 새벽부터 공을 치구 왔더니만 그나마 오후 시간이 좀 생기길래 판을 뒤적이다 손에 잡힌 판 때문에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올려본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뭔슈와 보스턴 심포니의 RCA 리빙 스테레오 녹음이다.. 내가 원래 베를리오즈 같은 양반 작품을 그리 즐겨 듣지는 않았는데 예전에 고딩 시절인지 대딩 시절인지 음악동아에서 본 평론 때문에 이 판을 한 번 들어봐야겠다고 맘을 먹은 적이 있었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뭔가 인상적인 코멘트가 있었던 것 같다.. 거친 투명함이었나 뭐였나 암튼 좀 모순되는 단어를 병치시켰던 그런 코멘트였던 것 같고.. 당시에 그거 평론한 잉간이야 개폼 잡느라고 그런 소리를 했겠지만.. 당시 어린 넘이었던 나는 거기에 꼴딱 넘어갔었다는 것.. ㅋ 근데 문제는 당시 이 판이 아마도 라이센스로는 지구레코드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 이미 절판이었고.. 그래서 걍 입맛만 다시다 말았었다.. 그러다 나중에 아마도 대학원 시절에 와이프 학교 앞에 있던 판 가게에 같이 갔다가 당시에 정식으로 수입해서 문화부 딱지가 붙어 있던 다른 넘을 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판이 아닌 뮌슈가 파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녹음했던 EMI 판이었고.. 머 이 곡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고로 보스턴 심포니 녹음 음반은 걍 까묵고 있었더랬다.. 그러다가 어느날 얼마 안 듣고 처박아 놓았던 이 판이 보이길래 간만에 환상 교향곡을 들었는데.. 듣다 보니 예전 대딩 시절 생각이 나서 당시 미쿡에 종종 오더하던 중고 판가게를 뒤져서 이 판을 발견하군 주문해서 샀던 판이 바로 오늘 올리는 RCA 리빙 스테레오 음반 되겠다.. 물론 이 판도 사서 한 두어번 듣고서는 짱박아 놓았었는데.. 마침 오늘 얻어걸린 김에 간만에 들어본 것이다.. 그런거 보면 내가 어쩌다가 뮌슈의 녹음으로만 환상 교향곡을 두 장 갖구는 있지만 이 음악 자체를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닌갑다.. 암튼 그래도 오늘 여유를 갖구 듣구 있자니 소리도 훌륭하고.. 이제는 일단 귓구녕에 소리부터 들어온다는.. 염병.. 넘나두 괴랄하구 지랄맞으면서 빡씨게 연주가 된 것에 감탄을 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EMI 녹음보다는 RCA 녹음의 소리가 훨씬 더 명료하고 다이내믹이 장난 아닌 느낌이라는..
판 껍닥의 뒷면에는 보스턴 글로브의 사이러스 더긴이라는 양반이 "베를리오즈의 음악은 뮌슈의 모든 감정적 열정을 불러 일으키며.. 그가 음악의 해석자로서 가진 최고 자질의 테크닉과 상상력을 온전히 드러내준다.. 뮌슈는 베를리오즈를 연주할 때 가장 예술가로서의 재창조성이 빛을 발했고.. 보스턴 심포니는 그로부터 눈부신 강렬함과 화려함을 이끌어낸다.." 라고 썰을 풀어 놓았다.. 머 나야 베를리오즈를 잘 안 듣다보니 모르겠다만.. 워낙 뮌슈의 베를리오즈 연주에 대한 평이 좋다 보니 걍 그런가부다 한다.. 해설을 좀 옮겨 보자면.. 가끔씩 작곡가가 완전히 깜놀할 무언가를 들고 나타나서리 마치 세상에 전통 같은 것은 없다는 듯 새로운 길을 열어 젖히는 경우가 있는데.. 음악사에 있어서 이런 순간은 대여섯 번 있었다고 한다.. 이는 작곡가 자신도 관습을 뒤엎은 담에 스스로도 놀라면서 개척한 영역에서 다른 이들도 뒤따르는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 경우라는데.. 베토벤은 에로이카 교향곡을 "새로운 길"이라고 불렀지만 그 이후로도 다른 새로운 길들이 있었다.. 환상 교향곡, 라인의 황금, 틸 오이렌슈피겔, 목신의 오후 그리고 봄의 제전이 그들이라고 한다.. 그러구 보니 에로이카를 제외하면 난 새로운 길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극혐도 있다는.. -_-;; 어쨌거나 베를리오즈가 묘사적인 음조 판타지로 뛰어든 것도 정말 특기할 만한 새로운 길이었고.. 이렇게 하여 1830년에 "표제음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후 음조의 예술을 음조 이외의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한층 더 괴랄한 음악들이 출현하게 된다.. 사실 이 곡은 엄밀히 말해 교향곡이라 할 수 없는 교향곡인 셈인데.. 각 악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유로운 판타지로서 전통적인 고전 형식의 규칙이 아니라 당시 작곡가의 꼴리는대로의 감각 즉 비례감, 대조, 클라이맥스에 대한 감각에 의해 형성되었다.. 베를리오즈가 각 악장을 하나의 응집력 있는 힘으로 연결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이 교향곡은 아마도 다섯 개의 별개로 단절된 곡들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 한다..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도입 주제가 모든 악장에 스며들 때까지 상상력이 그에 사로잡히도록 했고.. 악장이 바뀜에 따라 성격이 변하면서 전체를 떠도는 집착.. 즉 고정악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잘 알려진대로 이 곡은 베를리오즈가 짝사랑했던 아일랜드의 여배우 헨리에타 스미드슨에 대한 감정이 졸라 복잡하면서도 지랄맞게 녹아 있는 곡이다.. 처음 세 개의 악장까지야 나름 정상적인 듯 보이지만 이 양반의 강렬한 본능인지 미친 똘끼인지 하여튼 이게 갑작스러운 전환을 요구하는데.. 음악은 독자적인 야생의 흐름을 타고 이야기는 거의 사라져 버리고 만다.. 작곡가로서의 베를리오즈는 주제를 비틀고 조롱하면서 마침내 진노의 날과 종소리로 이를 완전히 소멸시키면서 음악이 승리하고 이야기는 완전히 무너지게 만든다.. 베를리오즈는 아편의 꿈에 의지하여 그가 짝사랑한 연인을 "마녀와 악마들에게 조롱당하고 비웃음 받는 창녀"로 상상했다는데.. 이는 악몽 속에서만 이성을 편리하게 폐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거 보면 이 잉간두 졸라 개찌질한 잉간이었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연결시키는 링크는 마침 뮌슈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실황 연주 녹화가 있길래 올려 놓는다.. 정확히 몇년도 연주인지 기록이 없어서 답답하긴 한데.. 오늘 올리는 판이 녹음된 1962년 즈음이 아닐까 싶다.. 뮌슈의 지휘 모습을 보구 있자니 이 아자씨두 왠지 한 성깔 하셨을 것 같고.. 오케스트라를 그야말로 꽉 잡고 떡주무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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