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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비발디.. 모테트..

by rickas 2026. 6. 21.

공식 임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1713년부터 비발디는 작곡가 가스파리니의 후임으로 베네치아 피에타 구빈원의 전속 작곡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그 곳에서 바이올린 교사, 합창 지휘자, 그리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한 바 있었다.. 이 새로운 직책을 맡으면서 비발디는 이미 방대했던 그의 종교음악 작품 목록을 상당히 늘릴 수 있었는데.. 현재 우리가 아는 바로는 적어도 60곡에 이른다고 한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작곡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종교음악 작품들 중 상당수가 소실되었거나 아니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채로 어느 도서관의 먼지 쌓인 서가 한 구석에서 잠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단다.. "모테트" 라는 용어는 옛날 종교 음악의 특정 장르를 가리키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성경 텍스트를 사용해서 다성으로 편곡한 곡을 뜻한다.. 그러나 17세기 이탈리아에서는 "Motetto a voce sola" 또는 "Motetto a canto solo" 라 불리는 단성 모테트가 작곡되었는데.. 비발디의 시대에 이런 모테트들은 오늘날 우리가 "독창을 위한 칸타타" 라고 부를 법한 것에 더 가까웠다.. 비발디 자신은 "Motetto a canto solo con stromenti" 그러니까 "악기 반주가 있는 독창 모테트"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비발디가 직접 이 표현을 썼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당시 "모테트" 라는 말이 다성 합창 음악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그것과는 다른 독창 칸타타 형식임을 굳이 명시한 것이라 한다.. 일종의 장르 족보를 제목에다 붙인 셈이라 하겠다.. 현재까지 비발디의 모테트는 12곡이 알려져 있는데 그 중 두 곡이 실려 있는 음반을 올려본다.. 실제로는 총 세 곡이 실려 있는 훙가로톤의 음반인데.. 다른 한 곡은 시편 112편을 음악화한 것이다..


첫 곡으로 실려있는 "어린이들아 찬양하라"는 시편 112편의 첫 구절인데 정확히는 "주의 종들아 주를 찬양하라.. 어린이들아 주의 이름을 찬양하라" 에서 왔다고 한다.. 이 시편은 이미 고대 기독교 전례에 속해 있던 것이라 한다.. 비발디는 이를 독창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9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당대의 취향에 맞게 다양한 단위로 분할되어 있다.. 긴 오케스트라의 서주에 이어서 졸라 기교적이고 색채가 풍부한 일련의 아리아들이 이어지는데 듣다 보면 오금이 저린다.. 두 번째곡은 "분노 속에서" 로 시작하는 모테트인데.. 원래는 "지극히 의로우신 진노 속에서" 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선 인간의 두려움과 간구를 담은 내용이다.. 그러다 보니 세 곡 중에서 가장 극적이고 격정적인 내용과 형식을 보여주는 곡이라 하겠다.. 당시 이탈리아 모테트의 전형적인 형식에 따라 독창 성부가 부르는 매우 기교적인 알렐루야로 마무리가 되는데 듣다 보면 졸라 머쪄서리 나로서는 비발디가 참 대단한 양반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하는 작품이다.. 세 번째 곡은 익히 잘 알려진 "세상에 참 평화는 없노라" 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모테트인데.. 드러운 세상을 초월한 영적인 평화를 노래하는 듯한 명상적인 곡이다.. 하긴 물 건너 미친 양아치 새끼들 하는 꼬라지들을 보고 있자면 세상에 참 평화가 있을 리가 없다.. ㅋ


이 판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는데.. 노래를 맡은 소프라노가 진짜 졸라 주금이다.. 헝가리 판이다 보니 헝가리 소프라노 마그다 칼마르라는 양반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서구권에서의 지명도는 절대적으로 낮다지만 진솔하고 호소력 있는 노래를 무척이나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한마디로 졸라 아름다운데 그게 무슨 고급스런 질감이나 실크의 윤기 같은거 하고는 다른 결이고 어쩌면 살짝 청승끼도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사실 서구권 소프라들과 비교했을 때 뭔가 비브라토가 풍성하다거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음색과는 결을 달리하는.. 좀 더 직선적이면서 비브라토를 절제하는 투명한 발성을 하고 있다 하겠다.. 얼핏 엠마 커크비와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칼마르에 비하면 커크비는 애덜 목소리라 하는게 맞을 듯하다.. 커크비가 비브라토를 거의 완전히 배제한 소년 합창 같은 무기질적 순도 100% 라고 하면 칼마르는 커크비보다 자연스런 비브라토가 조금은 있고 음색에 인간적인 온기와 감정의 결이 살아 있는 유기적 질감이 강하다.. 커크비가 수정처럼 맑고 차가운 샘물이라면 칼마르는 맑지만 체온이 느껴지는 옹달샘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머 그렇다.. 이는 "세상에 참 평화는 없노라" 를 비교해서 들어 보면 금방 다르다는게 느껴진다.. 특히나 "분노 속에서" 에서 칼마르의 노래는 압권인데.. 바소 콘티누오 위에서 격정적인 찬양의 외침을 길게 끌고 가는 곡으로.. 칼마르처럼 음을 곧게 흔들림 없이 뻗어내는 목소리가 이 곡의 종교적 환희와 격정을 노래하는데 무쟈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마치 베르니니의 조각상 성녀 데레사의 법열을 연상시키는 그런 노래를 들려준다 하겠다.. 리스트 체임버의 연주가 요즘의 시대악기 연주하고는 달리 좀 로맨틱하면서 따스하지만 한편으로는 느릿하게 늘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칼같은 합주력은 정말 일품이다..


마침 마그다 칼마르가 노래한 "분노 속에서" 모테트가 있길래 걸어 놓기는 하는데.. 사실 이거 엘피로 듣는 거에 비함 유튭에 올라와 있는 음원의 음질이 너무 구리다.. 반투명한 유리를 하나 덧대어 놓은 느낌이라 원래의 질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마르 누님의 목소리를 아쉬운대로 접해본다는 의미로다 걸어 놓는다.. 글구 뽀나쓰로 시편 112편 역시 칼마르 누님의 노래로 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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