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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포르크레.. 비올 모음곡..

by rickas 2026. 5. 17.

오늘도 역시 일찍부터 일어나서리 골방에서 판을 돌렸다.. 공을 친다거나 머 그 외 다른 일정이 없는 이런 주말이야말로 나한테는 진짜 황금 주말이라 하겠는데.. 머 그것도 이제 당분간은 없을 듯하다.. 염병.. 암튼 뭔가 결핍이 있을 때 그게 더 하고 싶어지듯이 휴일에 이래저래 일정이 많을수록 음악을 아침부터 하루종일 듣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뽀가 발동을 하게 된다는.. ㅋ 암튼 오늘은 그런 좋은 주말을 맞은 상쾌함도 있고 해서리 내가 좋아하는 판을 한 장 꺼내서 들었다.. 프랑스 바로크 비올라 다 감바 작품집 음반으로 샤를 돌레와 앙투안 포르크레의 곡들이 빌란트와 지기스발트 쿠이켄 형제의 연주로 녹음된 악상 레이블의 음반 되겠다.. 당근 빠따로 시대 악기 연주라 할 수 있겠지만 쿠이켄 형제는 빠른 속도보다는 각 성부의 울림과 무곡적인 성격을 천천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주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해석이 매우 개인적이고 편안하며 성찰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돌레의 곡에서 알르망드와 사라방드를 특히 느리게 처리하고 있는데다 쿠랑트 같은 후속 악장들은 춤곡의 성격은 유지하되 지나치게 밀어붙이지 않는 연주를 하고 있단다.. 머 그렇다 치고.. 녹음 자체는 전체적으로 악기 간의 균형이 매우 좋은 듯하게 들린다.. 곡의 성격이 그렇기도 하지만 하프시코드가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감바와 호흡을 잘 맞추어 나가는 파트너처럼 들리면서 음량의 밸런스가 아주 잘 잡혀 있는 것 같다.. 빠른 템포 보다는 여백과 호흡이 중시되고 프랑스 바로크의 우아하고 절제된 음색의 품위가 느껴지는 그런 연주라 하겠다..


사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프랑스에서는 감바와 통주 저음이 각별히 사랑을 받았고.. 그래서리 마시, 생트-콜롱브, 나도, 프뤼당, 돌레, 포르크레 같은 음악가들이 앞다투어 이 악기를 위한 작품들을 써제꼈단다.. 그 중에서도 앙투안 포르크레는 마랭 마레가 죽은 뒤 그리고 그보다 앞선 시대의 인물들 가운데서도 프랑스 최고의 감바 연주자로 명성을 얻었다.. 피에르 루이 다캥은 1754년에 쓴 "루이 14게의 문학적 원" 이라는 저서에서 마레와 포르크레를 언급하면서 일케 썼다고 한다.. "마레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와 맞먹는 잉간이 한 명 있었으니  그게 바로 포르크레라 하겠다.. 마레는 귀족처럼 말하고 귀족처럼 연주했다.. 그치만 포르크레는 그 반대편에서 악마처럼 말하고 악마처럼 연주했다" 또 다른 기록자인 르 블랑에 의하면 "한 사람은 천사를 연기하듯이 연주했고 다른 사람은 악마를 연기하듯이 연주했다" 라고 묘사되었고.. 실제로 포르크레의 작품은 감바 연주자에게 기술적 한계까지 밀어붙일 것을 요구하는 기준점이 되었다고 한다.. 포르크레의 작품은 딸랑 29곡만 남아 있는데.. 이들은 그나마 그의 아들인 장바티스트 앙투안이 1747년에 출판했고.. 아들의 사후 2년 뒤 이 작품들이 다섯 개의 모음곡으로 정리되면서 오늘날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모든 곡에 제목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고.. 보통은 영향력 있는 유명 음악가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생전에 발표된 작품의 수가 마레에 비하면 매우 적지만 포르크레의 현존하는 작품은 상당히 신중하고 절제된 인상을 준단다.. 아쉽게도 그는 솔로 감바를 위한 작품을 지금 남아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썼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중 상당 수가 유실되었다고 한다.. 여기 실려 있는 포르크레의 3번 모음곡 D장조 역시 각 악장마다 당대 인물들의 이름을 딴 성격 소품 형식을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트롱샹 가문에 대한 헌정의 악장은 뭔가 멜로디와 리듬이 술술 풀려 나가는 듯이 흐르는 선율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샤콘느야말로 이 모음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핵심 악장인데.. 상당히 긴 샤콘느로서 포르크레의 어둡고 강렬한 개성이 가장 완전하게 드러나는 악장이라 하겠다..


사족같은 카더라 얘기를 덧붙이자면.. 앙투안 포르크레 부자 간의 막장 관계 얘기를 풀어 본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아버지 앙투안 포르크레는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는 궁정 음악가로 최고의 지위를 누렸는데.. 그의 아들 장바티스트 앙투안 포르크레도 아버지 못지 않은 비올 연주자로 성장했고..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재능이 자신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질투했다는 것이 핵심인데.. 아들이 실력을 쌓아갈수록 아버지는 아들을 궁정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활동을 방해했다고 한다.. 단순한 경쟁심을 넘어서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왕에게 꼰질러서 감옥에 보내버리기까지 하는데 죄목이 뭐였는지는 역사적으로 명확하지 않고.. 실제 범죄라기 보다는 아버지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한 모함에 가깝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란다.. 이 양반은 악마는 커녕 악마도 이거 졸라 짜치는 새끼네 하고 혀를 찼을 법한 잉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건 여기에 금전 문제와 유산 갈등도 있었고.. 더구나 마누라와의 관계도 순탄치 않은 등 앙투안 포르크레는 가정 환경 자체가 상당히 불안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근데 결말이 골때리는게..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아버지 앙투안이 작품을 출판하지 않고 세상을 졸하자 아들이 1747년에 하프시코드 편곡판으로 출판하면서 아버지의 작품들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만약 아들이 ㅅㅂ 내가 그런 색히를 아버지라 만나서 이게 뭔 개고생.. 이라고 한탄하면서 출판은 고려하지도 않았다면 포르크레의 음악은 역사에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니깐 아버지에게 버림 받고 심지어는 아버지의 모함으로 빵까지 갔다 온 아들이 아버지의 음악을 세상에 남긴 셈 되겠다.. 머 그게 복수인지 화해인지 아니면 음악가로서의 사명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결시키는 링크는 이 음반에 실린 포르크레의 모음곡 중 샤콘느를 프랑스의 감바 연주자인 노에미 렌호프와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기욤 할덴방의 연주로 걸어 놓는다.. 하나 더 붙이자면 라 트롱샹, 편안한 움직임으로라고 표시된 악장인데 이거 듣고 있음 그야말로 몸과 맘이 서서히 이완되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알흠다운 음악을 쓴 이가 아들에게 어찌 그리 짜치는 찌질이 짓거리를 했는지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하긴 예술적 성과와 그 잉간의 성숙함이나 올바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머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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