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비발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뭐 어떤 덜 떨어진 색퀴는 비발디가 똑같은 곡을 수 백번 재탕해 먹었다고 일갈했다지만.. 그건 그 잉간 생각이고.. 난 그렇게 울궈 먹은 느낌이 드는 곡들도 좋은데 어떡하겠냐.. ㅋ 사실 비발디를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넘나두 좋아라 하게 된 것은 아마도 90년대 초 그 유명했던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사계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전에도 비발디의 사계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협주곡들을 즐겨 듣기는 했었고.. 그게 대부분이 당근 이 무지치의 잘 정돈되고 얌전한 연주 녹음이었지만.. 비발디는 좋아하는 작곡가이기는 했어도 뭐 그 정도까지는.. 하는 수준이었다.. 근데 그런 얌전한 연주가 다 인줄 알다가 비온디의 에우로파 갈란테로부터 터져 나오는 비발디는 완전히 다른 차원을 보여 주었던 기억이 난다.. 박물관 유리 케이스 안에 박제되어 있던 비발디를 길거리로 끄집어 내서 살아 숨쉬게 만든 느낌이랄까.. 뭐 그랬다.. 그 이후에야 안토니니의 조화로운 정원을 비롯해서 다양한 시대 악기 연주 단체들이 등장해서리 누가 누가 더 질알맞게 연주할 것인가를 내기 하듯이 비발디의 협주곡들이 쏟아졌고.. -_-ㅋ 그야말로 비발디 르네상스라고 할만한 시간들이 이어졌던 것 같다.. 이 무지치의 연주가 단정하고 우아한 실내악이었다면 비온디나 안토니니는 아마도 당시 이탈리아인들이 느꼈을 법한 원초적인 감정과 불꽃 튀는 에너지를 복원해 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근데 내가 좀 희한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무지치에서 에우로파 갈란테로는 아무리 현대 악기와 시대 악기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해석이랄까 그런 면에서도 넘나두 큰 차이가 있는데.. 혹시 이러한 해석 방식의 간극을 이어줄 만한 연주는 없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근데 그게 얼마 전부터 시모네와 이 솔리스티 베네티의 연주를 주의 깊게 듣게 되면서 무척이나 재미있는 지점이 보이더라는 것.. 레이블이 에라토이다 보니 그리 자주 접했던 판들도 아니긴 했지만 그나마 갖고 있던 시모네의 연주가 좀 있었는데.. 비발디는 내가 워낙 시대 악기 연주에 취해 있었던터라 걍 이 무지치의 아류 정도로 치부하고 이 판들을 잘 듣지 않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의 연주 판을 꺼내 듣다가 느껴진게.. 이 양반의 연주야말로 그 사이의 연결 고리가 아닌가 싶더라는 것이었다.. 시모네는 현대 악기를 쓰면서도 비발디 특유의 '질주하는 본능'을 억누르지 않는 느낌이다.. 비온디나 안토니니 만큼 과격하지는 않아도 악보 사이사이에 숨겨진 드라마를 읽어내려는 시도는 확실히 이 무지치와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사실 비온디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감정의 선을 파고 든다면 안토니니 같은 경우는 거의 타악기적인 리듬감으로 몰아붙이는 연주를 들려주는데.. 시모네의 연주를 듣다 보면 아.. 이 양반들도 이때 이미 이 짜릿함을 알고 있았구나.. 하는 일종의 동질감이 느껴진다.. 확실히 시모네와 이 솔리스티 베네티는 이 무지치에 비해 다이내믹의 대비를 더 강하게 주고 때로는 거칠게 몰아붙이는 추진력을 보여준다..
그래서 오늘 올리는 판은 비발디의 신포니아와 콘체르토 15곡이 시모네와 이 솔리스티 베네티의 연주로 실려 있는 에라토 판이다.. 재미있는건 이 당시 이들의 녹음에서 사운드 엔지니어의 이름을 찾아보면 익숙한 이름이 보이는데.. 욜란타 스쿠라이다.. 오푸스111에서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녹음을 프로듀싱 했던 동일 인물이니 뭐가 됐건 희한한 인연이 있었던 느낌이다.. 비발디 시절의 신포니아는 주로 오페라 서곡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에 관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연주되던 기악곡이었는데.. 비발디는 오페라와 상관 없이 독립적인 연주를 위해 신포니아를 쓰기도 했단다.. 비발디는 신포니아에서 "빠르게-느리게-빠르게"로 이어지는 3악장 체제를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한 셈이었다.. 협주곡하고는 구조적으로 상당히 비슷해 보이지만 신포니아에는 독주 악기가 없이 오케스트라 전체.. 주로 현악 합주와 쳄발로가 유기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앙상블을 중시한다는 점이 다르다 하겠다.. 또 다른 차이점이라면 협주곡만큼 주제가 반복되는 리토르넬로 형식이 복잡하게 얽히기보다는 좀 더 직선적이고 명쾌한 흐름을 가지는 점이라고 한다.. 사실 비발디가 완성한 이 3악장의 신포니아는 이후 고전파 시대에 들어서면서 하이든과 모짜르트에 의해 근대적인 교향곡으로 진화하는 토대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암튼간에 이 판에서도 귀가 더 솔깃해지는 곡들은 역시나 단조곡들인데.. 비발디의 단조곡들을 듣다 보면 哀而不悲라는 것이야말로 이런 것이다라고 얘기해 주는 듯하다..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질척거리지 않고 차가운 물속을 유영하는 듯한 투명한 슬픔인데.. 그게 장조 곡들에서 느껴지는 단순한 활력과는 차원이 다른 구조적 긴장감과 서정성이 공존하는 듯하다.. 시모네의 에라토 녹음은 현의 광택이 두드러지는 소리를 들려주는데.. 이게 현대의 시대 악기 연주들이 마찰음의 미학을 보여준다면 시모네는 화려한 배음의 미학 위에서 극적인 연출을 시도하는 것 같다.. 암튼간에 소리 좋은 판이다..
연결시키는 링크는 이 판에서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곡을 두 개 걸어 놓는다.. 하나는 신포니아 B단조 RV 168 연주는 힐라리스 체임버 오케스트라라는 듣보잡 단체인데.. 최근 연주 같아서 걍 올려 놓는다.. 다른 하나는 콘체르토 G단조 RV 152인데 이들이 빠지면 섭해서리 조화로운 정원의 연주로 올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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