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에는 오페라를 거의 안 들었다.. 이게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나야 클래식을 부모님이 항상 틀어 놓고 계시다보니 코찔찔이 시절부터 자연스레 듣게 된 거였고.. 울 엄마나 아버지가 듣는 음악 중에 오페라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나마 오페라와 관련된 곡들이래야 끽해야 오페라 서곡들이나 유명한 아리아 내지는 합창곡들이 다 였던 것 같다..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성향을 그대로 이어 받았는지 나도 대딩 시절까지는 오페라는 거의 듣는 분야가 아니었다.. 뭔가 오바질 하는 듯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게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근데 당시 대딩 여사친 중에 성악 감상에 특화되어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얘는 당시 학생회관에 있던 음악 감살실에서 가곡이 나오건 오페라 아리아가 나오건 카수를 기가 막히게 알아 맞히곤 했었다.. 사실 그나마 당시 모짜르트의 오페라를 조금이나마 듣기 시작했던게 이 친구의 영향이었는데.. 그치만서도 여전히 대부분의 오페라는 나한테는 별 관심 없는 영역이었고.. 꼴랑 몇몇 모짜르트의 오페라를 듣는게 끝이었다.. 그러다 나이를 먹으면서 취향이 이리저리 변하듯이 언제부터인지 오페라 역시 예전보다는 훨씬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물론 대학원 시절에 칼라스 누님의 아리아 모음집 LP를 듣고서는 뻑이 갔던 적도 있었던 데다가 예전에 한창 LP들이 똥값으로 풀려 나올 때는 나중에 늙어서 할 일 없음 괜히 광화문이나 기어 나가서 염병질 떨지 말고 조용히 집구석에서 음악이나 들어야겠다는 심산으로 바그너와 베르디를 비롯한 여러 오페라들을 장만하기도 했었다.. 근데 이게 웃긴게.. 나중에 늙으면 과연 이 해설서와 가사집을 열심히 보면서 음악을 집중해서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실실 들기 시작했고.. 그래서리 괜히 나중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시간 날 때 짬짬이 들어보자 하구 조금씩 듣기 시작한지가 몇 년 된 것 같은데.. 들을수록 난 바그너 보다는 베르디가 더 취향에 잘 맞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뭔가 졸라 거대한 이상과 세계관을 가지고 허세 쩔어주는 듯한 음악을 꽝꽝거리는 바그너의 악극보다는 졸라 내용은 거의 막장 아침 드라마 싸다구 날리는 수준이더라도 잉간 군상의 모습을 음악으로 드라마틱 하게 묘사하는 베르디가 나의 싸구려 취향에는 훨씬 더 잘 맞더라는 것이다.. 모르겠다.. 졸라 가볍기가 이를데 없는 내 천성 상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_-;; 내가 나이가 더 먹어서 좀 더 진지해지면 바그너를 힘들어 하지 않고 들을 수 있을까.. 그치만 현재로서는 베르디나 푸치니 그리고 벨리니 같은 이태리 작곡가들의 작품이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게 사실이다.. 사설이 졸라 길었는데 각설하고.. 오늘도 내가 딱 좋아하는 베르디의 오페라를 들은 김에 그 판을 하나 올려 놓는다.. 베르디의 일 토로바토레.. 세라핀과 라 스칼라의 50년대 후반 DG 녹음 되겠다..
사실 칼라스 누님의 빠돌이로서 원래는 카라얀이 지휘한 판이나 아님 보토가 지휘한 판을 올렸어야 했는데.. 귀가 타락하다 보니 모노 판보다는 스테레오 판으로 자연히 손이 가더라.. -_-ㅋ 물론 내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스테레오 녹음인 에레데가 지휘한 테발디와 델 모나코 콤비의 판도 나름 훌륭하지만 오늘 골라서 들었던 판은 베르곤지의 만리코가 넘나두 우아해서 그의 목소리가 생각난 김에 꺼내 듣게 된 것이다.. 이 판의 캐스팅을 보면 진짜 초호화판인데.. 레오노라의 안토니에타 스텔라.. 이 누님은 칼라스나 테발디와는 또 다른 매력을 들려주는데.. 약간은 어두운 듯하지만 순수한 느낌의 음색이면서도 고음이 무쟈게 빛나는.. 그리고 칼라스 보다는 다소 안정적으로 극적인.. 이게 말이 되나.. -_-ㅋ 그런 노래를 들려준다.. 1950년대와 60년대 라 스칼라의 주역이었다고 하는데 내가 가진 이 누님 녹음은 꼴랑 이 판 하나라 아쉽.. 내가 생각하는 이 판의 백미는 아주체나를 맡은 피오렌차 코소토인데.. 이 녹음 당시 20대 초반이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이 먹은 집시 여인의 광기와 모성을 특유의 파워와 어두운 음색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베르곤지야 뭐 두 말할 나위 없이 우아한 만리코인데.. 이 오페라의 제목처럼 그가 졸라 무식한 파워의 전사가 아니라 음유 시인이라는 측면을 제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루나 백작을 맡고 있는 바스티아니니 역시 단순무식한 악당이 아니라 뭔가 비극적 품위를 가진 인물처럼 느껴지는 노래를 들려준다.. 이 판은 뭐 현대 녹음에야 비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성악이 상당히 명료하게 포착되어 있는데다 스테레오 분리도나 균형이 잘 잡힌 오케스트라 음향을 들려주어서 듣는 내내 소리의 즐거움을 충분히 선사해 주는 판이라 하겠다..
일 토르바토레는 소위 베르디에 있어서 기적의 3년이라 불리는 1851년부터 53년 사이.. 그러니까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가 쓰여졌던 시기에 쓰여진 걸작이다.. 스토리의 원작이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스라는 스페인 양반의 희곡인데.. 집시 여인의 복수, 형제 간인 줄 모르고 대결하게 되는 형제, 이들의 삼각 관계, 과거와 현재의 뒤엉킴 등으로 줄거리가 개복잡해서리 베르디가 좀 단순화 시켰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잡한 면이 있는 고로 굳이 줄거리를 따라가기가 질알맞다면 걍 음악만 즐기는 것으로도 충분한 작품이라 하겠다.. 초연은 1853년 1월 19일 로마의 테아트로 아폴로에서 이루어졌는데.. 베르디 자신은 초연 전 칭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줄거리가 너무 복잡하고 음악이 너무 혁신적인데다 마지막 Miserere 장면에서의 기술적 어려움 등으로 성공에 대한 회의감을 피력했다고 한다.. 그치만 그의 우려와는 달리 초연은 거의 광란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후에 유럽 각지에서도 동일하게 센세이셔널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초연이 끝난 후 베르디가 칭구에게 다시 보낸 편지에는 로마는 미쳤고.. 모든 곡마다 앙코르를 외쳐대는 통에 15번이나 커튼콜을 받았다는 얘기를 적고 있다.. 그치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디는 이 작품에 대해 여전히 확신이 없었는지 이 작품이 진짜 좋은 작품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이라면서 몸을 사렸다고 한다.. 특히나 줄거리가 너무 엉터리라 과연 50년 후에도 공연이 될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베르디는 나중에 이 작품에 대해 일 트로바토레는 내가 쓴 것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지만 가장 예술적인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한다.. 이 작품은 워낙 폭발적인 호응을 일으킨 덕에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화들이 꽤 많이 알려져 있다.. 로마 초연 후 불과 몇 달 만에 파리, 런던, 빈, 마드리드 등 유럽 전역에서 공연이 이루어졌고.. 라 스칼라는 초연했던 1853년 1년 동안 40회를 연속 공연했다고 한다.. 심지어 베네치아에서는 시즌 내내 일 트로바토레만 공연했다고 하니 그 인기가 거의 췩오 아이돌급이 아니었나 싶다.. 코벤트 가든 공연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관람했는데.. 대장간의 합창이 끝나자 앙코르를 요구했단다.. 지휘자가 오페라 중간이라며 난색을 표시했지만 여왕은 상관 없다며 다시 하라고 재촉했고.. 결국 앙코르를 했다고 한다.. 카루소는 이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서는 4명의 세계 최고 성악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유는 줄거리가 너무 복잡해서리 관객들이 음악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ㅋ 어쨌거나 일 트로바토레는 소위 "Big Tune Opera" 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고.. 이 작품 이후 모든 오페라가 히트곡 만들기에 눈에 불을 켜고 열심이었다고 한다.. 이는 푸치니나 마스카니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단다..
연결시키는 링크는 3개를 걸어 놓는다.. 그야말로 워낙 히트곡이 드글드글 하다보니 고르기가 힘든데.. 뭐 나중에 이 작품의 또 다른 판을 올릴 때 나머지를 올리기로 하고 오늘은 각각 1막, 2막, 3막에 나오는 레오노라의 아리아 "고요한 밤", 아주체나의 아리아 "불꽃이 타오른다", 만리코의 아리아 "아 그렇소 나의 사랑" 을 걸어 놓는다.. 카수는 당연히 차례대로 안토니에타 스텔라, 피오렌차 코소토, 카를로 베르곤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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