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보면 자기 자신이나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졸라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조낸 소심해서리 끊임없이 불안해 하고 자신이 없어 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보통은 자신감이 중요하네 어쩌네 하면서 자신 없어 하는 사람들을 찌질한 잉간으로 치부해 버리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사실 조또 엄는 새끼들이 자신감만 충만하면 꼭 사고를 치더라.. 원래 최악의 상사라는 것이 대구리 뇌 속은 조낸 추상적이고 몸땡이만 영롱한 거뜰이 엄청시리 부지런을 떨어대면서 밀어부치다 보면 그 밑에 있는 애덜만 죽어나게 마련이거덩.. -_-;; 세상사라는 것이 단 하나의 원리나 가치로 재단될 수 없듯이 어떤 경우에는 조낸 소심해서리 계속 의심을 품고 불안해 하고 이를 반복하면서 작은 것부터 꼼꼼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편이 옆에서 보기에는 사내 색퀴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조낸 찌질해 보여도 훨씬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어 놓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능.. 예술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양반들은 그야말로 부심 쩌는 그래서리 본인의 작품에 대해 대중이나 평론가 쩌리 색퀴들이 멀 알겠냐는 자의식 만땅인 대범한 양반이 있는가 하면.. 본인의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쪽팔려 하구.. 그래서리 어떤 것들은 걍 폐기해 버리기두 하는.. 그런가 하면 본인은 나름 잘났다구 세상에 내어 놓았는데 평론가들의 융단 폭격을 맞구서는 떡실신이 되어 버리기두 하는 그런 경우도 있더라능.. 작곡가들을 보다 보면 그런 소심함의 대명사가 될 만한 양반들이 몇몇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라흐마니노프가 아닐까 싶다.. 이 양반은 본인이 지나온 격변의 세월로 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인생 자체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러한 격변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직접적으로 휘말렸던 것두 아니구 오히려 졸라 안정되고 부유한 삶을 살았다더라.. 그치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양반의 타고난 성격일지 아니면 예술적 감수성의 출중함 때문일지는 모르겠다만.. 라흐마니노프는 자기회의에 끊임없이 시달렸던 작곡가였다.. 그치만 오늘은 그의 그런 성향과는 많이 달랐던 작품인 교향곡 3번을 올려 놓는다.. 올린 판은 볼트 경이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의 연주인데 조낸 씩씩하고 통쾌한 연주다.. 이 곡은 조낸 아이러니컬한 시츄에이숑이 있는 고로 그 얘기부터 해보기로 한다..
라흐마니노프의 졸라 개망작으로 여겨졌던.. 본인도 자신없어 했지만 그 초연서부터 이어져 온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그렇게 여겨졌고 그래서리 필사본까지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파기해 버렸던 그의 교향곡 1번은 현대로 접어 들면서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조낸 러시아 음악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칭송을 받기에 이르는데.. 그 반면 이 3번 교향곡은 이 자기회의 쩔어주는 작곡가가 이 곡에 대해서만은 상당한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있었단다.. 근데 우끼는건 이 교향곡 역시 초연과 그 이후의 공연에서도 지속적으로 일반 청중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좋지 못한 평을 계속 들어 왔고.. 또한 그래서리 이 작품 역시 졸라 망작이란 평가를 지속적으로 받아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번 교향곡에서 이러한 반응에 대처하는 작곡가의 자세와는 이 3번 교향곡에 대한 자세가 완전히 180도 달랐다는 것.. 그만큼 라흐마니노프가 이 작품에 대해 갖는 확신은 대단했던 듯 싶다.. 이 곡이 쓰여졌던 1936년 당시 이 곡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그 관현악의 기술적인 완성도 자체는 인정하지만.. 라흐마니노프가 이제는 창작력이 엥꼬가 나서리 구닥다리 아이디어를 내어 놓구서는 이를 그저 단순히 세련되게 재포장하는 정도 밖에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고 한다.. 버뜨 그러나.. 이 곡 역시 세월이 지나면서 재평가되었고.. 오늘날에는 주목받을 만한 장대한 규모의 작품이자 작곡가에 대한 근거 없는 험담을 한큐에 날려 버빌 만한 걸작으로 인정을 받게된다.. 그니깐 라흐마니노프가 이 곡에 대해 특별히 갖고 있던 근자감은 결국 사실로 판명이 나게 된 셈이라 하겠다.. 사실 가장 주요한 이유이긴 하겠지만 이 교향곡 3번이 라흐마니노프의 찬미자들에게서조차 시큰둥한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이 이 교향곡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작곡 방향의 변화를 느끼고 이를 졸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머냐면.. 라흐마니노프는 기본적으로 모더니스트가 아니었고 당대의 기술적인 혁신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교향곡으로 그가 지속적으로 그러한 작곡가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린 셈이 되었기 때문인데.. 그니깐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비관주의적인 로맨티시즘이 이 곡에서는 별루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라 하겠다.. 오히려 이 3번 교향곡에서는 보다 객관적인 접근 방식과 그때까지의 라흐마니노프와는 잘 안 어울릴 것 같은 톡톡 튀는 화성의 표현 양식이 쓰이고 있다 한다.. 3번 교향곡은 그 이전의 교향곡에 비해 보다 간결하면서도 투명하고 색감이 넘치는 오케스트레이션을 보여 준다고 하는데.. 사실 이 곡을 들으면서 제일 와 닿는 느낌은 그 독특한 색채감이라 하겠다.. 특히 클라리넷이나 트럼펫 그리고 플룻 등에 의해 나타나는 먼가 기묘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은 단순히 이 곡이 그저 라흐마니노프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달콤한 애수에 더해 예측할 수 없는 의외성과 그에 동반하는 즐거움을 주는 요소라 하겠다.. 곡은 전체가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듣다 보면 지속적으로 이 양반이 먼가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왔다리 갔다리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두우면서도 로맨틱하고 내면으로의 침잠을 순간 순간 보여주던 1악장과 2악장에 비해 3악장은 조낸 화려한 느낌이 드는 에너지가 넘치는 악장인데 듣다 보면 졸라 복잡한 면이 뒤섞여 있는 듯하다.. 어케 표현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차이코프스키적인 화려함과 프로코피에프적인 번뜩임이 짬뽕이 되어 있다구 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하여간 졸라 복잡한 교향곡인데 이제까지의 라흐마니노프와는 분명히 다른 신선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연결시키는 링크는 네메 예르비가 지휘하는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 아카데믹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듣보 오케스트라인데 머 전곡 연주한 링크도 그렇게 많은 것두 아니구 해서 걍 걸어 놓는다..
'음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프랭.. 여러 나라 사람들.. 프랑스.. (0) | 2014.12.14 |
---|---|
하이든.. 피아노 3중주.. Hob. XV No.6.. (0) | 2014.12.13 |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 (0) | 2014.12.07 |
모짜르트..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협주 교향곡.. (0) | 2014.12.06 |
합스부르크의 류트 음악.. (0) | 2014.11.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