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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몬테베르디.. 트럼본을 동반한 4성 미사..

by rickas 2014. 10. 19.

 

내가 젤루 듣기 싫은 말 중의 하나가 보수와 진보라는 말인데.. 사실 이 말에 무슨 유감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걍 우리가 보수와 진보 타령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주제 넘은 짓이라는 것을 적어도 내가 겪어온 경험으로는.. 그렇게 졸라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ㄴㅁ 말이 났으니 얘기지.. 보수 진보 해서 무슨 밥이 나오냐 빵이 나오냐.. 일단 기본적으로 상식과 몰상식의 개념두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조또 보수 진보는 질알.. 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리 그런 보수와 진보 어쩌구 하는 얘기가 나오면 어잌후 슈발.. 그러셔쎄요.. 하면서 자연스레 외면하군 말게 된다능.. 근데 음악을 듣다 보면 잼있는 것이 이 음악의 역사 역시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경쟁을 거쳐 또 새로운 양식이 태어나구 하는 것을 반복해 왔기 땜에 그 덕으로 우리는 조낸 다양한 음악들을 지금 이렇게 흥청망청 듣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곡자 자신들이야 당시에 졸라 무한한 고뇌와 번민을 거쳐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내고.. 이를 어떤 잉간들은 졸라 반대하면서 기존의 양식을 강화하려 들구.. 머 그러다 보면 오늘날 듣는 입장에서야 그만큼 풍성한 음악을 입맛대로 듣게 되는 것이고.. 그니깐 우리 입장에서야 어떤 잉간들이 이기는 건 관심 없구 걍 이기는 편 우리 편 하면서 즐기기만 하면 된다는 아조 명료한 결론에 도달하구 만다능.. -_-ㅋ 오늘은 그런 새로운 조류를 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작곡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는 판을 하나 올린다.. 몬테베르디의 트럼본을 동반한 4성 미사와 프레스코발디.. 팔레스트리나 등의 작품이 실려 있는 판이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16세기가 시작될 무렵의 음악이라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를 의미했다.. 대위법의 기교에 기반한 아키텍처와 더불어 다성음악은 그 정점을 찍고 있었다.. 16세기 말로 가면서 소수의 반동 분자 색퀴들.. -_-;; 아니 일부 작곡가들이 근본적이면서 향후 계속적으로 지속될 변화를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프레스코발디나 팔레스트리나.. 그리고 몬테베르디 등이 그들이었다.. 프레스코발디 같은 경우는 기악곡과 밀접한 연관을 보였고.. 팔레스트리나와 몬테베르디는 음악을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개념을 도입하여 작곡을 했다.. 비록 이들이 여전히 16세기에 속해 있었고 그래서리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보여 주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상당 부분 새로운 스타일을 채택하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몬테베르디는 당시의 다성음악 양식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선두주자 격이었는데.. 이를 일컬어 Seconda Prattica.. 그니깐 제2작법이라고 한단다.. 이 양식은 시적인 텍스트를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해 멜로디를 적극 활용하려 했고.. 이에 따라 다성음악을 넘어 솔로 보이스를 졸라 현저하게 두드러지도록 했으며.. 대위법을 바소 콘티누오와 이들의 수직적인 하모니로 대체하려 했다.. 사실 몬테베르디는 그의 다방면에 걸친 천재성으로 볼 때 음악에서의 세익스피어라고 일컬으면 딱 맞는다고 한다.. 유머와 익살에 조낸 능숙하면서 인간의 모든 감정을 포괄하는 서정 드라마의 정점에 위치할 수 있는 작품들을 써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엄격하면서도 웅대함으로 가득한 종교 음악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는 것..


몬테베르디는 1567년 크레모나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일찌감치 후기 프랑스-플랑드르 악파 거장들의 유산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게 된다.. 스물 세살 때 만투아 공작의 꼬붕으로 들어 갔는데 이 덕에 그는 유럽을 이리저리 다닐 기회를 갖게 된다.. 1612년 그는 다시 크레모나로 돌아 오는데.. 졸라 빈털터리 그지가 되어 홀로 돌아 왔다고 한다.. 아마 그 공작이라는 색퀴가 졸라 부려 먹다 퇴직금에 전별금에 바리바리 챙겨 주질 않구 걍 내쫓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쁜 시키.. -_-;; 그러나 그 이듬해.. 그니깐 마흔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몬테베르디는 베니스 공국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성 마르코 성당의 마에스트로 디 카펠라 자리에도 오르게 되는데.. 그는 이 자리에 죽는 해인 1643년까지 30년 동안 머물게 된다.. 역시 인생사라는 것은 모르는 것.. 한 때 조땠다구 해서 영원히 조때는 법은 아니라는 것.. -_-;; 그의 작품들은 크게 3가지의 형태로 나뉜다고 한다.. 즉, 마드리갈과 오페라의 원조 격인 음악을 동반한 극.. 그니깐 Drama per Musica 라는 장르.. 그리고 종교 음악이 그들이다.. 그의 여덟 권의 마드리갈은 그가 점차적으로 다성음악으로부터 악기를 동반한 목소리로 중심축이 옮겨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단다.. 몬테베르디의 분명한 의도는 감정에 상응하고 또한 이를 부각시키는 선율의 스탈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특히 마지막 두 권의 마드리갈은 무쟈게 다양한 면들을 보여 주는데.. 대위법부터 레치타티보와 아리오소에 이르는 곡들이 있는가 하면 오케스트라를 동반한 무대 작품까지 망라한다고 한다.. 그는 마흔 살에 첫 오페라인 오르페오를 썼고.. 인간 영웅들이 등장하는 첫 번째 오페라 걸작 포페아의 대관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몬테베르디의 서정적인 작품들과 비교해서 종교 음악은 그만큼의 혁신이 없었던 관계로 다소 무시되었던 경향이 있었다고 하는데.. 조낸 혁신적인 스탈을 추구했던 성모 마리아의 저녁 기도를 제외하면 몬테베르디는 그의 종교 음악에서 구닥다리 스탈을 따르고 있단다.. 이 판에 등장하는 4성 미사 역시 다성음악이면서 전례용 음악의 전형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그니깐 이 판에 등장한 몬테베르디의 작품은 졸라 보수 꼴통의 그것도 여전히 품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하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듣고 좋음 그만 아니겠냐.. 이 곡 역시 글로리아에서 트럼본이 등장하는 깨알 같은 재미를 제공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조낸 엄숙하고 진지빠는 곡이라 하겠다.. 그치만 졸라 머찌다..ㅋㅋ 잉간의 디양한 감정에 충실한 곡도 좋지만 이런 경건한 알흠다움으로 가득한 곡을 듣고 있자면 대구리 속이 깨끗하게 씻겨 나가는 느낌이 들어서 느무느무 좋다.. 특히나 글로리아에서 서창으로 시작해서 점차로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은 성과 속을 나누는 경계면을 보여 주는 듯하다..

 

연결시킨 링크는 몬테베르디의 유작 격인 또 다른 4성 미사인데..이 곡 역시 경건한 알흠다움이 충만한 곡이다..걍 닥감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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