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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모랄레스.. 마니피카트..

by rickas 2011. 9. 24.

 

 

예전에 지방에 몇 년간 내려가서 있던 적이 있었는데.. 그 곳 기숙사로 쓰던 아파트가 워낙에 골때리는 곳이어서 이웃간 소음이건 나발이건 신경을 전혀 안 쓰는 아주 아스트랄한 곳이었다.. --; 보통은 이런 경우 윗집이나 옆집에서 질알을 떨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인데.. 다행스럽게도 옆집도 우리 기숙사로 쓰는 집이었고.. 윗집도 마찬가지여서.. 난 오히려 이런저런 신경 쓸 필요없이 내 방에서 아무리 늦은 시각이라도 맘껏 볼륨을 올려 놓구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스트레스를 줬을지 모르겠는데.. 머 그렇다고 내가 어느 색히처럼 상판때기에다 철갑을 두르고 잉간의 한계따위는 가뿐하게 초월해 버리지는 감히 못해서리 걍 들을만한 정도로만 들었는데.. 특히나 내가 큰 소리를 싫어하다 보니.. 그저 신경을 크게 쓰질 않아도 되었기에 그게 좋았다는 것..

당시에 집에서 가져 내려간 인켈의 인티에다 프로악의 태블릿이나 린의 칸을 제대로 된 스탠드에다 올려서 방의 삼분지 일 지점 정도로 쭉 빼 놓구 들었었는데.. 전형적인 니어 필드 리스닝이었지만.. 소리는 무척이나 좋았다.. 퇴근하면 내 방에 들어와서 CD를 올려 놓군 불을 끄구 유령처럼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음악을 듣는 것.. 평일에 어쩔 수 없이 식구들과 떨어져 있던 그 당시에 그야말로 유일한 낙이었다.. 아마도 조금만 더 있었으면 당시 생각으로는 오디오를 한 살림 본격적으로 차리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바람에 그 생활은 청산해 버리고 말았다..

 

당시에는 정말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LP는 주말에 집에서나 들었으니.. 아마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CD의 대부분이 당시에 샀던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바로크나 고음악에서 음질 좋은 CD들이 본격적으로 많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어서 정말 신기하고도 맘에 드는 CD들을 많이 사서 들었다.. 그 중에서 특히나 신기했던 음반 중 하나가 ECM 레이블에서 나왔던 오피시움이라는 음반이었다.. 아마도 당시 오디오 잡지에서 소리 좋다는 뽐뿌질을 보구 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여러 작곡가들의 미사곡 일부를 힐리어드 앙상블이 부르고 그 위에다 얀 가바렉이라는 자슥이 초절정 캐변태 색소폰 소리를 집어 넣어 불어 제끼는 독특한 구성을 들려줬다.. 이 음반을 사서 듣곤 맨 첨에 나오는 첫 곡부터 완죤 맛이 가구 말았었다.. 크리스토발 데 모랄레스의 죽은 자를 위한 성무일과 중 주여 우리를 용서하소서라는 곡이었는데.. 으.. 이런 음악을 이런 식으로 요망스럽게 만들어 놓을 수도 있구나.. 하고는 충격을 먹었던 것.. 근디 내가 아무래도 좀 변퇴끼가 있어서인지.. --; 이런 짓이 무척이나 신선하고 골을 때리는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느꼈었다..

 

근데 왜 이런 야그들을 줄줄이 풀어 놓냐하면 오늘 간만에 모랄레스의 마니피카트와 모테트를 꺼내서 듣다 보니 당시 그 시절 생각이 나서 그런 것.. 브루노 터너가 지휘하는 런던 프로 칸티오네 안티쿠아.. ㅅㅂ 이름도 졸라 머찌다.. 의 연주.. 맨 첨에 한 10분 남짓 나오는 마니피카트가 졸라 멋있는데.. 물론 다른 짤막짤막한 모테트들도 좋지만.. 그레고리안 성가의 선율로 시작하면서 차차 소리를 화려하게 다듬고 발전시켜 가는데.. 그 표현력의 뽀대가 정말 일품이다.. 그의 마니피카트는 1542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했는데 무척이나 널리 사본이 퍼지고 출판되고 했단다.. 당시에 그 어느 누구도 모랄레스만큼 마리아를 위한 찬가에 그레고리안 성가의 선율을 뽀대있게 집어 넣은이는 없었다고 한다.. 암튼 웬만한 작곡가들은 개나 걸이나 다 작곡한 마니피카트이지만.. 모랄레스의 것은 무척이나 경건하면서도 나름 소박한 화려함이 있는 멋진 곡이다..

 

표지에 있는 그림은 볼프 후버가 그린 방문이라는 그림인데.. 마니피카트라는 것이.. 마리아가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자베스를 방문했을때 받은 수태고지의 축사에 대하여 응답한 찬미의 노래이니.. 바로 그 장면을 그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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