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이 있다.. 아마도 집에서 보던 신문에 나 있는 책 소개 기사를 보고 샀던 것 같은데.. 하긴 내가 이런 책에 관한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겠나..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래서래도 신문을 끊기가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사실 이 넘의 신문에다 써 갈기는 몇몇 색히덜은 진짜 꼴두 보기 싫은 것들에다가 급기야는 요즘에는 그 대단하신 류 모씨까지 객원 필진으로 모셨다던데.. 참 질알두 지가지가 한다.. 머..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려고 한다나.. 다양은 질알.. 기왕이면 우아하신 중립을 과시도 할 겸.. 이넘저넘 다 모시지 그러냐.. 어디 한 두 새끼냐.. ㅋㅋ
아 근데.. 말이 헛나갔는데.. 이 책이 상당히 재미있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도 널리.. 그리고 막강하게 퍼져 있는 긍정적 사고라는 명제를 이리저리 해부해서 그 위선과 함정을 까발기는 내용인데 아직 반도 못 읽긴 했지만 꽤나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다.. 이 책의 서평 중에 프레더릭 크루스라는 사람이 쓴 말이 우끼다.. 오프라 윈프리.. 디팩 초프라에게 말하노니.. 제발 이 책을 읽어라.. 똑똑하게 생각하는 것은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 ㅋㅋ 가난과 실업.. 비만 등등.. 모든 현실 문제가 단순히 긍정적 마음가짐만으로 극복이 가능한.. 그러한 작은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고찰.. 흔히들 그런 광경을 주변에서 본다.. 세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은 이리도 개판인데.. 우리는 그런 것 모르고요.. 이리도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아효.. 호호.. 그렇지 모.. 걍 그게 행복하다는데.. 그러나 과연 그걸로 해결이 된 것일까.. 라는 것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던 경험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돌이켜보고 생각하게 되는 듯..
근데.. 이게 무신 뻘소리냐 하면.. 현실에의 긍정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베토벤 슨상님 생각이 떠 올라서 그렇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운명과 맞섰을까.. 아니면 운명을 받아 들였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이 모든 것이 다 축복이로다.. 하는 소위 긍정적 마인드로 무장하고 작품을 써 내려 갔을까.. 그에 대한 대답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오전에 간만에 꺼내서 들은 그의 피아노 소나타 31번이다..
이 곡을 듣다 보면 사실 긍정이냐 부정이냐 아니면 극복이냐 하는 것들이 이미 한 차원 낮은 단계로 격하되어 버리고 마는 그런 차원에서 이 양반은 놀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형식은 4악장이긴 한데.. 그게 그의 초중기 작품들처럼 그야말로 형식의 구조화라는 느낌보다는 걍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한 영혼의 노래를 그저 마음가는 대로 흐르게 하면서 단순히 흘러가는 길을 따라 이정표를 세워 놓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절망도 포기도 아닌.. 그렇다고 무신 중뿔나는 희망도 아닌.. 이미 그러한 감정을 초월해 버린 듯한 아름다운 슬픔이 곡의 곳곳에 점멸된다.. 어째 들음 슈베르트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의 슬픔은 워낙 인간적인 느낌이라 여기서 느껴지는 것하고는 또 다른 듯.. 무엇보담도 3악장에서 들려 주는 우울함이 어둠속으로 사라지면서 그걸로 인생 종치는가 싶다가.. 조용히 그 어둠 속에서 불빛.. 그런데 그게 무쟈게 광명을 던져 주는 그런 빛이 아닌 보일락말락한 작은 호롱불 같은 빛이 아련히 솟아 오르는 것 같은 4악장 푸가의 등장..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 극적인 장면의 전환이다.. 이 곡을 듣다 보면 이 대목에서 항시 진이 쏙 빠져 나가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오전에 돌린 판은 솔로몬의 연주.. 그의 56년 8월 녹음인데.. 녹음이 어째 좀 개떡 같아서.. 똑같은 모노라도 왜 데카의 녹음이랑 비교해 보면 피아노 소리가 이 정도 밖에는 안 되는지 졸라 불만이다.. 그래도 그의 연주에서 나오는 가오를 느껴 보구 싶어서 이 판으로 꺼내 들었다..
판의 뒤에 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있는데.. 솔로몬이 영국에서는 졸라 잘 나갔지만 독일 비평가들에게서는 환영을 받지 못했고.. 판을 내어 놓을 때마다 그의 지나치게 싸늘한 고전적 양식미가 심지어는 피상적인 천박함으로까지 매도되면서 비난이 쏟아졌다는 얘기가 있다.. 글을 쓴이는 이러한 경향이 그와는 대조적으로 표현력이 풍부한 전통적인 슈나벨이나 제르킨의 해석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지 음악 자체에 대한 그의 해석은 베토벤이 겪어야 했던 비참한 환경을 그가 필사적으로 극복하고서 도달한 최상의 구조적 경지를 피아노 사운드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졸라 훌륭하다고 한다.. 슈나벨이 그러한 경지로 나아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보여 준다면 솔로몬은 그 결과에만 집중해 있다는 것.. 이런 것으로 솔로몬이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써 놓았다.. 생각해 보자면 슈나벨류의 찌질대는 연주도 가치가 있듯이 솔로몬의 쿨한 연주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얘기 같은데 졸라 길게 횡설수설 해 놓았다.. 영국넘들하고 독일넘들하고의 정서적인 차이인지..
근데 이 판의 소제목은 졸라 머찌다.. 솔로몬이 연주하는 베토벤.. 음악의 극단에서..
솔로몬이 연주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베슨상의 31번 소나타야말로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음악의 극단에 위치한 작품 중의 하나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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