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다 보면 당대에는 잘 나갔다고 하는데 현대에는 잊혀지거나 별 볼 일 없는 음악가 취급을 받는 양반들이 있게 마련이다.. 사실 현대에 와서도 변함없이 인정을 받고 대우를 받는 양반들을 보면 머 그럴만한 건덕지가 있었기에 그랬다는 생각이 들구.. 잊혀지거나 션찮은 대우를 받는 음악가로 전락해 버린 양반들을 보면 이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 머라고 해야 하나.. 결국 남는 잉간들은 뭔가 당대의 일반적인 유행을 뛰어 넘는 혁신을 만들어 낸다거나 각별히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 주는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그치만 음악이라는 것이 일종의 날건달들 풍류의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함 머 그리 졸라 혁신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냐.. 라는 생각도 든다는.. -_-;; 당시 유행가처럼 연주되고 만인들이 좋아했지만 현대의 식자들에게는 별 볼 일 없는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걍 오늘날의 장삼이사들이 들어서 좋음 그걸로 족한 것 아닐까 싶다.. 훔멜의 음악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음악이라는 생각인데.. 오늘 올리는 판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내가 각별히 좋아하는 곡이 실려 있는 판이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앞면에 있고 뒷면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 협주곡이 커플링 되어 있다.. 마르틴 갈링의 피아노와 알렉산더 파울뮐러가 지휘하는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의 연주인데.. 이중 협주곡의 바이올린은 라우텐바허 누님이 맡고 있다.. 하여간 이 누님은 이런 헐렁한 레이블 단골이신게 좀 아쉽다는.. 그치만 머 데카 프레싱이라 그런지 소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껍닥의 해설을 좀 옮겨보자면.. 요한 네포무크 훔멜의 음악을 감상하려면 과거 시대의 다양하고 변화하는 미적 선호도에 반응해야 한다.. 한 세대의 청취자와 연주자들이 특정 작곡가에게 가졌던 큰 존경심은 때때로 현재의 취향에 비추어 사람을 어이없게 하기도 한다.. 그니깐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았던 작곡가들은 오늘날 종종 무명에 가까운 상태에 놓여 있기도 하고.. 한때 소홀히 여겨졌던 사람들이 때로는 오늘날 주인공으로 부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하라는 이름은 18세기에는 칼 필립 에마누엘이나 요한 크리스티안을 의미했지만.. 19세기 중반부터 바하는 요한 세바스티안을 이르는 명칭이 되어 버렸고.. 망각에서 구출되어야 했던 것은 그의 아들들이었다.. 훔멜은 원래 베토벤과 동급으로 당시의 뛰어난 음악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위상은 쇠퇴를 거듭했다.. 이제 조금씩 그가 복권되고 있기는 하지만 훔멜의 음악은 더 이상 정상을 차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볍게 무시할 수도 없는 그런 류의 음악이 되었다.. 동시대인들이 즐겨 듣던 그의 음악 특유의 우아함과 세련된 특성은 오늘날에도 즐길 수 있는 감각이고.. 그의 작품에서 훔멜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연결하는 명확한 고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의 피아노 기법과 교육학에서 그의 작품은 C.P.E. 바하에서 체르니, 슈만, 쇼팽, 리스트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훔멜은 원래 어린 시절 바이올린으로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지만 별로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하고.. 피아노로 갈아 타면서 급속도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7세에 비엔나로 이사를 왔는데.. 당시 모짜르트가 훔멜의 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모짜르트가 후원하는 콘서트에서 데뷔함으로써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독일,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을 순회 연주하면서 엄청난 찬사를 받았고 스승들도 만날 수 있었다.. 런던의 클레멘티나 비엔나의 일브레히츠베르거와 살리에리 등이 그에게 영향을 끼친 스승들이었고.. 특히 하이든은 훔멜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1804년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그의 후계자로 훔멜을 추천했다.. 훔멜은 1811년까지 이 직책을 맡았지만 그의 유명했던 전임자와는 달리 비엔나 극장을 위해 작곡하는 것을 선호했고..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의 분쟁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유럽 전역의 콘서트 투어를 재개했고 이후 1833년 바이마르에 정착하여 죽을 때까지 그 곳에 머물렀다..
훔멜과 베토벤의 인연은 그들이 둘 다 알브레히츠베르거의 제자였을 때 시작되었고.. 불행히도 이후의 소원함은 훔멜이 죽어가는 베토벤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서야 복원되었다.. 괴테는 친구 중에서 훔멜을 손꼽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고.. 리스트의 스승인 체르니는 훔멜을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또한 슈만은 종종 훔멜의 협주곡과 소나타를 연주하기도 했는데.. 훔멜의 베토벤 교향곡 피아노 이중주 편곡은 많은 개인들의 가정에서 연주되곤 했다.. 여러 지역을 여행했던 영국의 음악 평론가 에드워드 홈즈는 1828년 "독일 음악가들 사이의 산책" 이라는 저서에서 훔멜에 대한 애정을 묘사했는데.. "착한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은 훔멜은 그 어떤 이보다 정의롭고 꾸밈 없으며 친절하고 다정한 태도가 얼마나 많은 동료들의 음악적 우상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라고 기록했다.. 훔멜은 무엇보다도 그의 피아노 즉흥 연주의 독창성에 있어서 음악적 아이디어의 풍부함과 끊임없는 변주로 청취자들을 놀라게 했다.. 달콤한 멜로디의 흐름과 계속해서 시작되는 우아한 프레이즈는 듣는 사람이 예상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결코 터무니 없거나 사치스럽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그대로 드러나는데.. 훔멜의 주제와 이의 세심한 전개는 그의 피아노를 통해 비엔나 스탈의 가벼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훔멜의 화려하고 긴 호흡의 멜로디와 즉흥적인 방식, 멜로디 라인에서의 꾸며진 장식과 같은 기법은 쇼팽을 예견한다고 하는데.. 사실 이 협주곡을 듣다 보면 쇼팽의 협주곡에서 느낄 수 있는 머랄까 그 특유의 달콤한 헐렁함이 똑같이 느껴진다는.. -_-ㅋ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 협주곡은 모짜르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이후의 본격적인 이중 협주곡이라 할 수 있단다.. 원래 모짜르트 자신도 똑같은 구성의 이중 협주곡을 계획했지만 완성하지 못했고.. 바로크의 콘체르토 그로소와는 다르다 하겠는데.. 바하의 경우 두 대의 악기가 솔로 선율을 함께 혼합한다면 모짜르트는 두 악기 사이의 정중한 대화처럼 교대로 사용하게 하고 있다.. 훔멜은 모짜르트의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교대로 주제를 연주하면서 진정한 파트너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연결시키는 링크는 독일의 피아니스트인 엘스 비제만스와 카프리치오 바로크 오케스트라라는 듣보잡 시대악기 연주 단체의 2020년 11월 연주 실황이다.. 보아하니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던 듯한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는 답답해서 어떻게 마스크를 쓰고 살았었는지 까마득한 시절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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