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이 작품 번호로는 1번으로 되어 있는 소나타를 출판했던 시기는 그가 30대 후반이었던 시절로 이는 그에게 있어서 18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음악 경력의 시작과도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된 작품에만 작품 번호가 붙는다는 관행으로 보았을 때 이 음악이 결코 헨델이 애송이 시절에 작곡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함정.. 잘 알려져 있다시피 헨델은 젊었던 시절 베를린, 함부르크, 피렌체, 베니스, 로마, 나폴리를 차례로 다니면서 음악적 영감을 키웠고.. 20대 중반에 영국으로 건너가서는 거의 반세기 동안 런던 음악계의 거물로 자리잡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오페라 극장에서의 극심한 라이벌 경쟁과 정치적 줄다리기가 있었지만 어쨌건 그 치열했던 아사리판의 와중에 살아 남아서 말년에는 그야말로 전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국가적 기념물급의 존재가 되었다..
헨델의 작품 번호 1번의 음악은 1722년경 네덜란드 출판사인 로저에서 12개의 소나타집으로 처음 출판했는데.. 당시 제목은 "플루트, 바이올린 또는 오보에를 위한 소나타" 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이러한 제목은 그 음악이 어떤 독주 악기에서도 동등하게 독립적으로 연주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각 악기 세트에 부합되는 소나타가 몇 개씩 있다는 것을 암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영국 출판사 존 월시가 거의 십년만에 새로운 에디션을 발행했을 때 일부 다르거나 수정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명백하게 동일한 판본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제목은 "하프시코드 또는 베이스 바이올린의 통주저음을 동반한 플루트와 오보에 또는 바이올린 소나타" 라고 되어 있었단다.. 이번에도 역시 모호하게 "또는" 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사실 제목은 동시에 두 가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데.. 하나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악기로 소나타 세트 전체를 연주할 수 있었다는.. 그니깐 말하자면 이 소나타집을 돈 주고 샀다고 했을 때 가성비 측면에서의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좀 더 까다로운 구매자를 위해 각 작품의 작곡 시 작곡가가 분명히 특정한 악기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각 소나타의 첫 페이지에는 작곡가가 의도한 적절한 악기를 나타내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는데.. 이는 리코더용 소나타 4개, 플루트용 소나타 3개, 오보에용 2개 그리고 바이올린 소나타 3개로 이루어져 있었고.. 제목 페이지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월시의 새 출판물에 대한 일부 광고에는 언급되었다고 한다.. 앞서 얘기했지만 출판된 기악곡에만 작품 번호가 붙었고.. 헨델의 60여년에 걸친 활동적인 경력 동안 단지 작품 번호가 6번으로 끝났다는 것을 볼 때 이 작품이 반드시 젊은 시절의 작품이라는 것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치만 소나타의 작곡은 출판일보다 훨씬 전부터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다루어졌다고 가정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데.. 하나는 이러한 실내악은 헨델에게 있어서 직업적인 음악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인 음악으로서 1720년대 헨델이 오페라 경력을 새롭게 시작한 이후 거의 연습하지 않았던 장르였다는 점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실제로 이 작품 번호 1번에 속하는 것에 대한 모호함은 작곡가가 출판을 위한 음악적인 준비 작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오늘 올리는 판에는 총 여섯 곡의 소나타가 실려 있는데.. 원래 로저의 판본에 있던 3곡인 3번, 10번, 12번 중 10번과 12번은 월시의 판본에서 일부 수정 사항을 포함해서 새로운 곡으로 교체되었고 프리드리히 크라이산더가 지난 세기에 그의 기념비적인 헨델 전집을 완성했을 때 월시의 판본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암튼 이렇게 해서 3곡하고.. 나중에 크라이산더가 대영박물관의 자필 원고에서 갖고온 D장조 소나타, 그리고 원래 로저의 판본에 있던 바이올린 소나타 2곡을 포함해서 여섯 곡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바이올린 연주는 라우텐바허 누님이 맡고 있는데.. 역시 이 누님은 지적이면서도 특별히 모나지는 않은 적당히 기분 좋은 예리함이랄까 그런 느낌의 연주를 들려 주신다는.. 이 곡을 연주한 또 다른 판인 멜쿠스의 연주도 좋지만 라우텐바허 누님의 판은 단정한 세련미가 좔좔 흐른다는 매력이 넘친다.. 헨델의 이 작품들은 18세기 음악 사상의 두 가지 주요 흐름을 결합하고 있다는데.. 하나는 헨델이 초기 수업을 받았던 약간은 촌빨 날리는 듯한 독일 오르간 악파의 영향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에 도착하기 전의 긴 여행 동안 세뇌되었던 이탈리아 멜로디의 세련된 도시성이 공존한다는 것이란다.. 특히나 헨델이 이탈리아 거장들과의 친분에서 얻을 수 있었던 이점.. 그니깐 섬세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졸라 고상하면서도 풍부하게 표현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하겠다.. 확실히 바하의 음악이 뭔가 폐쇄적인 덕후의 냄새가 난다면 헨델의 음악은 훨씬 더 보편타당하고 개방된 세련미를 보여주는 것 같다..
연결시키는 링크는 헨릭 세링의 바이올린과 휴겟 드레이퍼스의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는 10번 소나타이다.. 요즘 바로크 연주자들의 좀 오바스런 퍼포먼스에 비하면 굉장히 절제되고 단정하면서도 고아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들려준다.. 진정으로 아름답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 그런 연주와 곡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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