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마침 휴일이라 오전에 외출하기 전에 아침 일찍부터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애녀석은 실험실 출근하면서 연신 부러워하더만.. 얌마.. 대학원생이 무슨 근로자냐.. 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당연히 공대 원생은 개노가다 노동자란다.. 머 말이 아주 안되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너네가 그 노가다로 경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개소리 말구 꺼지라구 했다.. ㅋ 점심을 먹으러 예전에 와이프가 회사 다니던 동네였던 혜화동을 간만에 나갔는데.. 나야 몇 년 전에 그 가게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지만 와이프는 거의 이십여년도 넘은 세월을 지나 다시 찾은 곳이라 엄청 감개무량해 하더라.. 하긴 이런 옛날 가정집을 그 형태 그대로 내비두고 운영하는 식당이 삼십여년이 넘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 그대로 멀쩡하게 있다는 것은 졸라 울트라 슈퍼 다이나믹 코리아의 수도 서울에서는 절대 있을 수가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암튼 음식 맛이야 추억 보정을 받은 것이겠지만 그 옛날 그 맛 그대로라서 다시 한번 감탄을 하면서 점심을 먹었다는.. 오는 길에는 마침 강북으로 진출한 김에 생각이 나서 안국동 브람스를 들렀는데.. 머 사장님 여전하시고 가게도 의자에서 커버만 빼버린 것 말고는 그 상태 그대로더라.. 다만 손님은 온통 영감들.. -_-;; 암튼 이 집도 참 끈질기게 살아 남아 있다.. 머 어쩌다 들르는 객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바램일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구장창 변하지 않은 지금의 상태로 운영되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 가게이다.. 각설하고.. 어제 이른 아침에 꺼내 들었던 판을 한 장 올린다.. 게오르그 무파트의 모음곡 두 곡과 소나타 두 곡이 실려 있는 판이다.. 모음곡은 무파트의 관현악 모음곡집인 플로릴레기움 2집에서의 두 곡.. "고귀한 청춘" 과 "즐거운 시" 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곡들이고.. 소나타 두 곡은 이 양반의 제일 유명한 작품 "화성의 봉헌" 중 두 곡이다.. 화성의 봉헌은 나중에 내키면 전곡이 실려 있는 판으로 따로 올려 볼 예정.. 연주는 지기스발트 쿠이켄이 리더로 있는 라 프티트 방드가 맡고 있는데.. 이 양반들의 연주 졸라 좋다.. 머라고 해야 하나.. 뚝배기 장맛 같은 깊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소위 원전악기 연주 단체들의 뼈다귀만 남은 듯 여위어 있는 앙상블이라든가 아님 얼마나 더 질알맞게 연주할 수 있을까를 경쟁하는 듯한 연주라던가 그런 스탈하고는 완전 다른 풍성하면서도 정교한 앙상블을 들려주는데.. 그게 너무 오바스럽거나 아님 맥아리 없이 늘어지거나 하지 않는 적당한 텐션감이 있기 땜에 듣고 있음 엄청 귀가 즐겁다..
유럽 음악에 있어서 민족적 스타일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는 민속적 소리와 리듬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피상적으로 보자면 보헤미안, 헝가리, 러시아 또는 스페인과 같이 지역적인 면에서 다르게 떠올리게 되는 음악의 색상을 말할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20세기에 들어서 바르톡이나 스트라빈스키 등의 접근 방식을 보자면.. 국가적인 민속 예술의 요소는 지역 기반이라기 보다는 구성 요소에 근거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유럽에 있어서 예술의 모든 영역을 넘어서 심지어 삶의 모든 범위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민족적 스타일은 17세기와 18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뚜렷이 나타났다고 한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이 두 나라의 문화 간 충돌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직접 이 분쟁에 참여하거나 아님 둘 중 하나를 채택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연관이 되었다.. 그러한 예로서 고전 시대는 스타일의 종합이라는 형태가 음악 분야는 비엔나에서 정점에 이르게 되었고.. 그 곳으로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그치만 음악적 종합이라고 하면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는데.. 예를 들어 바하는 프랑스 모음곡과 이탈리아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무곡들의 배열과 3악장 협주곡 형태 사이의 형식적인 대조로 인해 그 배경이 되는 음악 세계 자체가 쉽게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바하가 존경했고 교육과 여행 중에 로마와 파리를 방문했던 프로베르거는 1650년 경에 하프시코드 음악 분야에서 스타일에 대한 문제를 명확히 다루었는데.. 이를 형식의 세계와 하프시코드의 언어 측면에서 조명함으로써 당시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는 바이올린 음악의 고전 국가가 되었고.. 파리는 영향력 있는 새로운 관현악 문화의 도시가 되었다.. 사보이의 유진 왕자가 터키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구한 구세주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위대한 후원자이기도 했고.. 비엔나 벨베데레의 건축자이기도 했던 것처럼 같은 사보이 출신의 게오르그 무파트 역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소를 결합시킨 위대한 음악가였다.. 그리고 그러한 짬뽕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바로 이 판에 실려 있는 곡들이라 하겠다..
무파트는 1653년 6월 1일 사보이의 메제브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자스의 몰샤임에서 예수회 학교를 다녔고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는데.. 1672년에는 6년 동안 파리로 가서 륄리-프랑스 스타일의 발레 제작을 배웠다.. 이후 비엔나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1678년부터 잘츠부르크 주교 예배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고 1681년부터 다음해까지는 로마에 머물면서 코렐리를 만나 발전된 이탈리아 바이올린 연주 기법을 배울 수 있었다.. 무파트에게는 이 때의 배움이 이후 그의 작품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새로운 이탈리아 스타일의 협주곡에 대한 첫 번째 시도로서 무파트는 1682년 "화성의 봉헌" 에서 소나타라는 전통적인 제목으로 작품을 출판하였다.. 이들은 1701년에 다섯 곡의 소나타/협주곡으로 재편집 되었고.. 12개의 콘체르토 그로소가 새로이 작곡되어 추가되었다.. 그의 프랑스 양식에 대한 연구의 결실은 1695년과 1698년 플로릴레기움 두 세트로 나타나게 되는데.. 얘네덜은 5부 오케스트라를 위한 15개의 서곡/모음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파트는 작곡가로서 단순히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양식을 결합시켰다는 정도로 퉁치고 끝낼만한 인물이 아니라 그의 협주곡이나 모음곡의 수준으로 보았을 때 바로크 양식과 개인적 표현 세계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당시로서는 졸라 현대적인 음악가였다고 한다.. 이 양반 역시 바하와 헨델에 가려서 살아 생전과 달리 그 이후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당시 유럽 음악 전통 간의 교류에서 엄청난 역할을 했던 세계적인 작곡가였다는 것이다.. 사실 이 판에 실려 있는 그의 모음곡 두 곡을 들어보면 얘네덜의 족보가 어딘지 졸라 아리까리한 느낌이 드는데.. 륄리의 화려함이나 헨델의 유려함 그리고 코렐리의 섬세함까지 모든 요소가 적절히 짬뽕이 되어 있는 듯하다는..
혹시 라 프티트 방드의 연주가 있을까 해서 졸라 찾아 보았는데 보이질 않아서리 연결시키는 링크는 호그우드가 지휘하는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의 연주로 플로릴레기움 2집 모음곡 중에서 "고귀한 청춘" 을 올린다.. 꿩 대신 닭으로 듣기에 충분하다 못해 더 좋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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