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최소한 부끄러움이라도 알고 느껴야 하건만 부끄러움은 커녕 오히려 개념은 아예 국밥을 쳐말아 잡수신 듯한 극강의 뻔뻔함의 포스를 보여 주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ㅅㅂ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어디 조낸 미개한 18세기의 오지에라도 나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저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바이러스가 본드처럼 찰파닥 달라 붙는 것은 아니니.. 이런 저런데는 가지 말구 이래 저래 행동하라는 것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만 첨에 제공하고.. 걸린 곳은 제대로 대응 방안을 만들어서 초장부터 조져 나갔으면 이 정도까지 개판 오분 전으로 난리 부르스가 나지는 않았으련만.. 에휴 ㅅㅂ 멀 바라겠냐.. 걍 자업자득이고 업보라구 생각할 수 밖에.. 똑같이 무식하고 무치하구 무개념이면.. 그게 무능이라는 것을 알아 보지두 못하더라.. 그냥 글케 어울려서 똥인지 된장인지두 모르구 걍 빌붙어 굴르면서 쳐사는거지.. 머 이넘으 난리통이 아니었어두 주말에 사람 많은 곳에 갈 일이 딱히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휴일은 그야말로 셀프격리 모드로 당분간은 들어갈 듯.. 머 그러다 보면 이넘으 일진광풍도 지나가지 않겠냐.. 그래서리 지난 주말은 코난과 축구와 함께.. -_-;; 일욜 새벽에 사실 유베가 이기리라고는 단 1 그램도 기대를 안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 한 구석의 미련은 남아 있었는데.. ㅋㅋ 바르샤 색퀴덜이 느무느무 잘하더라능.. ㅅㅂ 축구를 그야말로 아트처럼 하더라.. 머 그 정도면 실력 이상으로 올라온 느낌이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로 간만에 유베가 타이틀을 따 먹을라나 했는데 역시 운빨이 실력빨을 이길 확률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능.. ㅋㅋ 피를로가 질질 짜는 모습을 보니 쩜 아쉽긴 하더라.. 그치만 사실 이젠 넘 늙은 듯.. 머 이제부터는 정말 성남뿐이야.. 라구 주먹을 불끈 쥐어 보지만.. 하필 다시 내리막 크리를 탈 것 같은 불길한 예감두 들구.. -_-;; 머 일단 아직 꼴찌까지는 여유가 있다는 데에 조낸 위안을 가질 수는 있겠다능.. ㅋㅋ 머 여기까지는 쓰다 보니 넘 긴 잡설이 되어 버리구 말았는데.. -_-;; 사실은 지난 주말 저녁 때 들었던 판이나 포스팅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블로그를 들어 왔다가 제 버릇 개 못 준다구.. -_-;; 여지엄씨 걍 삼천포로 내달리구 말았다.. 암튼 올리고자 하는 판은 슈포어의 7중주가 내쉬 앙상블의 연주로 실려 있는 판이다..
슈포어는 1784년 4월 5일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음악가 부모 슬하에 태어났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열 다섯 살에는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드 백작의 실내악단 단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백작은 슈포어가 프란츠 엑크에게 레슨을 받도록 주선했는데 이 레슨을 통해 그는 바이올린 테크닉을 전면적으로 뜯어 고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1805년부터 1812년 사이에는 고타에서 콘서트마스터 역할을 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작곡가와 지휘자 그리고 비르투오조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1806년에 슈포어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는데 당시 잘 나가는 하피스트였던 도레트 샤이들러라는 여자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 스물 두 살에 장가를 갔으니 요즘 기준으로 치자면 조낸 빨리 간 셈인데 당시 신부의 나이 역시 열 아홉이었다는.. 암튼 슈포어는 이렇게 결혼을 하고 나서 와이프와 수많은 콘서트 투어를 다니게 된다.. 그는 1813년부터 15년까지 비엔나에서 안 데르 빈 극장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1817년부터 19년까지는 프링크푸르트에서 오페라를 지휘했다.. 1819년부터 20년까지 런던을 방문하고 돌아 와서는 드레스덴에서 머물렀는데.. 여기서 슈포어는 1822년 카셀에 새로이 생기는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아 들이게 되고.. 그 후 그가 1857년 은퇴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그는 카셀에서 1859년 10월 22일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의 생을 돌아 보자면 비르투오조로서.. 그리고 지휘자로서 또한 교육자로서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면서 조낸 분주하게 살았던 셈이다.. 그는 영국을 여섯 번이나 방문했는데 영국에서는 그가 작곡한 오라토리오가 멘델스존의 그것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조낸 분주한 연주가나 지휘자의 활동 뿐만 아니라 슈포어는 작곡가로서도 별시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작품들의 영역 역시 무쟈게 다양했는데.. 열 곡의 오페라와 열 다섯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열 개의 교향곡.. 그리고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실내악곡들이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조낸 버라이어티 하게 등장하는 5중주, 6중주, 7중주, 8중주, 9중주 등이 있고.. 이외에 일곱 개의 현악 5중주.. 4개의 이중 현악 4중주.. 그리고 서른 여섯 개의 현악 4중주 등도 포함된다.. 질은 둘째 치구라도 정말 엄청난 양의 다작을 쏟아낸 셈이 되겠다.. 슈포어의 자서전은 꼴랑 1838년까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판에 실려 있는 7중주의 작곡 시기를 알 수 없었지만.. 슈포어가 죽은 후 그의 두 번째 마누라인 피아니스트 마리안느 파이퍼가 그가 남긴 노트와 편지 그리고 일기 등을 친지들에게 처분해 버리면서 비로소 그가 자서전 후 세상을 뜨기까지 11년간의 기록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7중주는 1853년 여름 그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영국 방문 중에 구상되었다고 한다.. 카셀로 돌아오던 가을 무렵 그의 머릿 속은 피아노와 다른 악기들이 동반되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었고.. 집에 오자마자 의욕적으로 작곡에 착수하게 된다.. 그로서는 진정한 걸작 중의 하나인 이 작품은 그렇게 해서 슈포어가 나이 70에 완성을 한 작품 되겠다.. 근데 재밌는 것은 이 작품이 그렇게 늘그막에 작곡되긴 했지만 오히려 싱싱한 젊음과 황홀한 화음으로 가득한 조낸 알흠다운 곡이라는 것이다.. 근데 이건 판 뒷 면에 해설해 놓은 잉간의 견해이고.. 나는 일견 졸라 황홀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머 그 정도로 첨부터 끝까지 일관한다는 느낌은 잘 모르겠더라.. 이 곡은 카셀에서 예약제 콘서트의 프로그램으로 초연되었는데 당시 피아노를 맡았던 쟝 조셉 보트는 그 전의 이브닝 콘서트에서는 슈포어의 열 다섯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의 솔로이스트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단다..
첫 악장은 마치 브람스 시늉을 내듯 조낸 진지빠는 모드로 시작하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느껴지는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그치만 금방 따스하고 유쾌한 제 2주제로 변환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이러한 진지 모드와 방정 모드가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어쨌거나 1악장에서 이렇게 우왕좌왕 하는 듯한 분위기가 브람스와 닮아 있다면 쩔어주게 우아하면서 슈포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쵝오 경지의 알흠다움을 보여주는 악장이 바로 라르게토 악장인 2악장 되겠다.. 특히나 혼이 리드하면서 나오는 주제의 시작이 일품인데 이어지는 그 전개 과정은 증말 이 곡의 클라이막스가 아닐 수 음따.. 조까튼 세상에서 이런 평범한 듯 하지만 나름대로 황홀한 구석도 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 아니겠냐.. 3악장은 변덕스러운 느낌의 스케르쪼 악장인데 두 개의 트리오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클라리넷이 솔로로 활약하는 듯하고 다른 하나는 혼이 활약을 한다.. 전자의 경우는 마치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를 연상시킨다고 하는데.. 난 잘 모르겠다.. -_-;; 4악장은 좀 어수선해서리 머라 딱 꼬집어 얘기하기가 어려운데.. 전체적으로 보면 증말 평범과 비범을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느낌의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연결시킨 링크는 동 악단의 연주인데.. 2악장과 3악장이 실려 있길래 걸어 놓는다.. 사실 이 곡에서는 2악장만 건져도 본전 다 뽑은 것이라는 생각..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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