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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by rickas 2015. 5. 24.

 

 

제정 러시아 시대에 태어난지 백년이 넘게 지나서야.. 그리고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에서 죽은지 40년이 지나서야 라흐마니노프는 비로소 작곡가로서 사후 지지를 받게 된다.. 물론 그는 살아 생전에는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광범위하게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작곡가로서의 위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사실 대중들이 그의 음악에 보낸 지지와 사랑은 별로 흔들리는 일이 없었건만.. 졸라 잘나신 대부분의 비평가와 학자들께서는 그를 조낸 시대 착오적인 스탈.. 즉 졸라 구닥다리 스탈의 작품을 쓰는 진부한 잉간으로 치부해 버렸다고 한다.. 1954년에 발간된 그로브 음악 사전에 따르면.. 살아 생전에는 조낸 커다란 성공을 거둔 몇몇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그 성공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임.. 이라 기록되어 있는 등.. 1950년대와 60년대에 그의 음악에 대한 정통적인 시각은 이런 류의 것이었다.. 그치만 이런 정통적인 시각이나 관점이라는 것들이 대개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또 빙구 짓이었다는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듯이..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그런 재조명의 작업을 거쳐 제대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게 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 러시아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자 그의 가족들을 이끌고 러시아를 떠나게 된다.. 그는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할 위치에 있었고 생계형 직업 활동을 해야 했기에 작곡가로서 우아한 작곡 활동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실제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였던 조셉 호프만이나 다른 지인들 모두 라흐마니노프에게 작곡은 됐고.. 오로지 피아노 비르투오조로서의 경력을 평생 이어 가도록 설득했다고 하고.. 이는 실제로 라흐마니노프의 일생에 걸쳐 그렇게 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1920년에 빅터사와 계약을 맺으면서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었던 RCA사와의 협력 관계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는 실제 레코드에 등장하는 첫 번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가 두 번째 협주곡을 작곡하고 35년이 지나서 작곡한 작품이 바로 오늘 올리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인데.. 이 작품은 1934년 7월 3일부터 8월 18일에 이르는 46일 동안에 쓰여졌다고 한다.. 초연은 그해 11월 작곡자의 피아노와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이루어졌다.. 곡의 메인 테마는 파가니니의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기상곡 중 마지막 곡에서 유래한 것이고.. 또 하나의 중요한 두 번째 주제는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곤 하는 심판의 날.. 디에스 이레 선율이 되겠다.. 그래서 그런지 그저 파가니니 스탈의 오도방정만을 좇는 것이 아닌 상당히 균형잡힌 심각함을 유지하게 되는 요소가 된 듯하다.. 머 이 곡을 생각할 때 항상 떠오르는 너무나도 흔해 빠진 멜로디가 등장하는 열 여덟 번째 변주는 아마도 오리지널의 파가니니 주제를 노래처럼 전도시킨 이 곡의 클라이막스가 아닌가 싶다.. 사실 모든 유행이라는 것이 오만 질알을 떨고 지나가게 되면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되는데.. 음악적인 유행 역시 그와 다를 바가 없어서 그런 유행이 전염병처럼 돌기 시작하면 많은 작곡가들은 거기에 맞춰서 자신의 스탈을 변형하게 마련이란다.. 그치만 라흐마니노프는 그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했던 경우였고 그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이었다.. 근데 이건 솔직히 꿈보다 해몽일 수도 있다능.. -_-;; 누가 알겠냐.. 그야말로 그가 조낸 꼴통 기질이 만땅으로 충만하야 그런 새로운 조류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이었을지.. 그치만 결국 평가는 현재 그의 작품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 것인가로 이루어지게 마련이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갔던 곤조 있는 작곡가로의 위상을 확립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올리는 판은 루빈스타인이 피아노를 맡고.. 라이너가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가 협연을 한 판인데.. 동 작곡가의 두 번째 협주곡이 커플링 되어 있다.. 예전에 작은 이모가 간혹 미쿡에서 들어올 때 몇 장씩 가져다 주곤 했던 판 중에 섞여 있던 판인데.. 적어도 라흐마니노프의 이 두 작품에 대한 연주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절품의 연주를 들려준다고 생각된다.. 졸라 무식하게 들릴 정도로 우악스럽지만 단단하게 다듬어진 시카고 심포니의 사운드에 완전 개달콤의 피아노가 졸라 로맨틱하게 종횡무진하는.. 대비와 균형이 너무나도 극적으로 이루어진 연주라는 내 꼴리는 대로의 생각이다..


연결시키는 연주는 1997년 베를린 필 송년 음악회에서의 실황이다.. 플레트네프의 피아노와 이제는 아련한 이름이 되어 버린 아바도가 협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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