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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스카를라티..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by rickas 2014. 9. 13.

 

 

세상 일이라는 것이 무쟈게 희한한게.. 갑자기 어느 때는 잘난 잉간들이 떼로 등장하는가 하면.. 불세출의 병진들이 또 한꺼번에 지저귀는.. -_-;; 그런 때도 있게 마련이다.. 아마도 음악사에 있어서 조낸 신기한 해는 1685년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그 해는 위대한 작곡가들이 동시에 태어났는데 그들이 바로 바하와 헨델 그리고 도메니코 스키를라티였다.. 스카를라티가 태어난 이 시기의 이태리는 초기 바로크에서 실실 후기 바로크로 전이가 되어 갈려는 시기였고 이 때야말로 전례없던 고도의 성악 기교를 요구하던 벨칸토 오페라들이 당연히 이태라 카수들로 채워지면서 인기를 끌게 되던 때였다고 하겠다.. 이러한 보컬 음악에서 날렸던 당시의 음악가는 도메니코의 아부지였던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였다.. 이 양반은 성악이 들어가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미사, 기타 교회 음악을 비롯해서 키보드 음악이나 실내악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넓은 분야에서 작품을 남겼다.. 당시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그의 오페라는 전 유럽에 걸쳐서 유행을 했지만 이러한 유행은 곧 극장에서 밀려나게 되는데 그러기 전에 이들은 다른 유럽 작곡가들에게 그 족적을 남기게 된다.. 즉, 젊은 시절 이태리 여행 후에 100여 곡의 벨 칸토 양식의 칸타타를 썼던 헨델이 그런 경우였고.. 바하 역시 받아 들인 방식은 헨델과 달랐으나 그의 콘체르토나 실내악에 이태리 양식을 차용하기도 한다.. 또한 불란서의 라모 역시 도메니코 스카를라티보다 두 살이 위였는데 이 양반도 이태리 작곡 방식을 따른 칸타타를 작곡하기도 했다.. 도메니코가 태어나기 10여년 전 기악곡들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시작하는데.. 당시에 발전된 양식이 콘체르토 그로소와 솔로 악기가 등장하는 콘체르토였다.. 이들은 불꽃같이 스러져간 이태리 바로크 오페라와는 달리 당시에 작곡된 것들이 살아 남아서 오늘날까지 연주되고 있는데.. 이들의 작곡가들은 대부분이 바이올리니스트였고.. 베라치니, 나르디니, 코렐리, 비발디, 토렐리, 제니미아니, 로카텔리 그리고 타르티니 등이 그들이었다.. 한편으로는 첼로가 바이올린까지는 아니더라도 각광을 받게 되는데 이는 이들이 솔로뿐만 아니라 다양한 오블리가토 악기로 사용되면서 칸타타나 성악곡들에서 카수의 목소리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효과를 발휘하였던 탓도 있었단다.. 그러나 당시 하프시코드 음악은 대위법적인 다성 음악을 연주하는데 사용되었던 오르간과는 달리 대개가 찌질한 악기에 불과했는데 이러한 대세에서 벗어난 작곡가들이 바로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와 바하, 쿠프랭, 라모였다.. 1719년 스카를라티가 리스본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그 역시 주로 아부지의 양식을 따라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을 작곡했는데 그 이후로는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의 작곡에 매진하였고.. 이들은 스카를라티를 음악사에 있어서 졸라 독창적인 작곡가의 하나로 자리매김 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즉, 스카를라티는 당시까지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사이에 얽혀 있던 끈을 잘라 버리고 하프시코드 자체만의 사운드와 악기적인 기능성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리스본에서 스카를라티는 포르투갈 국왕이었던 주앙 5세의 궁정 교회 합창 지휘자로서 봉직했고.. 또한 공주였던 바르바라의 음악 선생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바르바라는 상당한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듯하고 따라서 스카를라티의 특별한 제자가 되었는데 이 공주는 1729년 아스투리아스의 왕자였던 페르난도와 결혼을 하게 된다.. 페르난도는 스페인 왕위의 계승자였고 스카를라티 역시 바르바라를 따라 마드리드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곳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작곡을 하는데 당시 작곡된 것들이 모두 500곡이 넘는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였다..


스카를라티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는 꾸준한 음악적 성장과 양식적인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이들이 무엇보다두 각별한 것은 모든 다양한 감정을 반영한 졸라 다면체의 보석 같은 느낌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한 때깔의 빛들은 소용돌이 치기도 하다가 자지러 들기도 하고.. 플라멩코 무희들의 딴스와 같은 중독성 있는 리듬을 보여주기도 한다.. 슬프거나 우수에 젖어 있기도 하고 어둑한 고함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오만가지 감상의 색깔들을 축약하자면 마치 고야의 캔버스를 들여다 보는 듯하다고 하겠다.. 실제로 세 번째 트랙의 롱고 15번 소나타는 시골의 춤곡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떤 곡들은 마치 거대한 기타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롱고 23번의 소나타 같은 곡은 목소리와 섞여 있는 사냥 나팔의 효과를 묘사하고 있기도 하단다..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_-;; 어쨌거나 스카를라티는 그의 키보드 음악의 화성적 스타일에 있어서는 당대의 작곡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어케 보면 급진적이기까지 한 스타일을 보여 준 셈이라고 한다.. 그는 졸라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그런 작곡가는 아니었지만 그의 소나타를 즐기는데는 그런 이성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감정에 내맡기면 충분하다 하겠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를 세상에 제대로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는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커크패트릭이었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스카를라티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야말로 조낸 시대착오적인 작품으로서 그 대담한 화성은 스트라빈스키에 견줄 수 있고 그 용감무쌍한 기교는 리스트 정도나 맞장을 뜰 수 있는 수준이라고 역설하였다.. 바하에게 있어서 멘델스존의 역할을 스카를라티에게 있어서는 커크패트릭이 한 셈이었다고 한다.. 올려 놓은 판은 미쿡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조셉 페인의 연주로 소나타 16곡이 실려 있는 판인데 데카 프레싱의 턴어바웃 판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들어서 그런지 소리는 조낸 좋은 것처럼 들린다.. -_-ㅋ


연결시킨 링크는 소나타 E장조 롱고 번호 23번 작품의 연주.. 머 당연히 스카를라티 하면 떠오르는 호로비츠 영감님을 올려 놓을까 하다가 좀 식상한 느낌이 들어서 리투아니아 출신의 연주자 바딤 차이모비치의 연주를 걸어 놓는다.. 영감님보다 훨씬 대범한 인상을 주는데 오히려 덜 다듬은 듯해서 더 싱싱한 느낌이 든다.. 영감님 연주는 어케 들음 쩜 부담스럽기도 하거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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