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하루 종일 우중충했다.. 낮에 잠깐씩 햇살이 비치기는 했지만 이젠 겨울이 코 앞에 닥쳤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듯.. 졸라 을씨년스럽고 음울한 분위기의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어제까지 교육이 있었던데다 체질적으로 영 안 맞는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열씨미 해줘야 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내 성정과는 달리 나름 신경을 썼고.. 그래서 그런지 어젯밤에는 일찍부터 뻗어서 잤는데 오늘에 와서도 피곤이 덜 풀린 듯.. 오전 오후 내내 병든 병아리 마냥 걸핏하면 졸리더라.. 하여간 밖으로 내다 보이는 풍경을 커피를 한 잔 빨면서 보구 있자니 생각 나는 음악이 있어서 오후 내내 그 음악을 들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한 번은 제르킨의 연주로 듣고.. 이대로 걍 덮어 버리기가 먼가 좀 아쉬운 감이 들어서 코바세비치의 판을 꺼내서 한 번 더 듣고 그랬다.. 사실 이 음악을 젤 첨 들은 것은 대딩 시절 루빈스타인의 연주였는데.. 오늘은 걍 손에 짚이는 대로 꺼내서 들은 판들이 쟤네덜이다.. 당시는 워낙 브람스에.. 그것도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 폭삭 빠져 있던 때라 1번 역시 졸라 기대를 하고는 사서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2번을 들었을 때 느꼈던 총천연색의 아름다움과는 영 딴 판.. 그 특유의 거친 듯한 느낌이 좋기는 했는데.. 계속 듣고 있자니 먼가 자꾸 불편한 심기가 지속적으로 안에서 꿈틀대는 것 같아서 엄청 불편했던 것.. 그 느낌은 여전히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유효해서.. 이 곡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들으려고 하면 큰 맘을 먹고 들어야 한다는.. 졸라 이상한 시츄에이숀에 처하곤 한다.. 솔직히 듣고 있자면 졸라 고통스럽다.. 특히나 1악장에서 느껴지는 분노와 비애와 체념과 기타 등등의 오만가지 짬뽕이 되어 있는 어두운 정서는 1악장을 집중해서 듣는 것 만으로도 사람 진을 쏙 빠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걍 두 장을 연짱으로 들었는데.. 두 번째 판을 듣다 보니 집중했던 정신이 급산만해지면서 머 그런 느낌도 별루 안 들고 괜찮더라.. -_-;;
1854년에 작곡이 시작된 브람스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에 있어서 완성작과 이에 대한 영감 사이의 관련성이 부족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이 작품.. 특히나 1악장의 고통스러운 난산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졸라 뿔따구가 난 것처럼 들리는 D단조의 주 테마는 원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는데.. 브람스는 이 버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폐기를 하고서는 이 소나타의 첫 악장을 교향곡으로 재작업을 했단다.. 그러나 스물 한 살 먹은 작곡가의 이러한 교향곡 형태로의 완성에 대한 시도는 이 양반 특유의 자아 비판으로 인해 완존 실패로 끝나버렸고.. 베토벤이 쌓아 올린 졸라 높다란 교향곡의 탑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는 브람스에게 있어서 원동력이 아니라 장애물로 작용을 하고 만 셈이 되었다.. 암튼간에 그래서리 이 양반은 1856년에 이르러서 이 첫 악장을 피아노 협주곡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마치 교향곡과 협주곡을 절충한 스탈의 무엇인가가 나오는 듯했다.. 근데 그 작업이 또 다시 1년 이상을 끌게 되었고.. 1857년에 가서야 뒤의 두 악장이 추가되어 협주곡이 완성을 보게 된다.. 물론 마지막의 론도 악장은 그 이후에도 몇 번의 개칠을 했단다.. 이 곡에 대한 동시대의 평가는 혹독했고.. 브람스는 이로 인해 졸라 고통을 겪게 된다.. 1859년 1월 22일 하노버에서 초연이 이루어지는데 돌아온 평은 정중하긴 했지만 쌀쌀맞은 편이었고.. 닷새 후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연주회는 19세기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적 스캔달로 점철되고 만다.. 피아노는 브람스 자신이 맡았었는데 연주자와 작곡가로서 엄청난 야유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피아노 솔로 파트의 비르투오시티를 자연스레 기대했던 청중들의 반응이 어케 보면 당연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브람스가 이 협주곡으로 창조해 낸 베토벤이나 슈만과는 또 다른 독창성을 생각해 볼 때 이것들은 졸라 무식한 색퀴덜이다.. ㅡ,.ㅡ 머 이 곡이 작곡되던 시기가 워낙에 슈만의 불행했던 삶의 행로와 이래저래 얽혀 있어서 그 유래와 담겨진 정서에 대해.. 클라라가 어떻다는 둥.. 브람스가 어쨌다는 둥.. 호사가들이 오만가지 입방정을 떨어댄다만.. 걍 음악만 놓고 봐도 충분히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곡이다.. 그러나 그 정서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자면 고통이 수반된다.. 물론 2악장의 처연하면서도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평화와 3악장의 경쾌한 듯하면서도 삐딱한 심사가 느껴지는 화려함.. 이 악장에 이르러서야 사실 이게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느낌이 살아 나는데.. 여기서의 론도 주제는 베토벤의 C단조 협주곡을 닮아 있다고 한다.. 그런 색다른 화려함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정서는 여전히 꿀꿀하다.. 재미있는 점은 이 협주곡을 듣다 보면 먼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만한 장소에서 반드시 기어 나오는 소리가 있다는 것.. 바로 혼의 소리다.. 특히나 2악장에서의 혼이 나오는 장면은 정말 겉으로는 졸라 터프해 보이는 이 양반의 이중성을 절감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하여간 이 양반은 정말 혼을 좋아했던 듯..
올린 판의 표지는 코바세비치의 피아노.. 콜린 데이비스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의 연주다.. 껍닥의 아자씨 헤어 스탈에 앞섶을 풀어헤친 빠숑이 오금을 저리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ㅁ-;; 연주는 꽤나 좋게 느껴진다.. 오케스트라의 음색 자체가 상당히 묵직하게 느껴지고.. 피아노가 투명하면서 살짝은 가벼운 듯도 하지만 무게가 필요한 곳에서는 충분히 후려쳐 대는 과단성도 보여 주시고..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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