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떠나 가신지 이제 얼추 3주가 다 되어간다.. 이미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그리 큰 동요는 없었지만.. 막상 일상 생활이 원상복구 될 즈음이 되어 가니 때늦은 감정의 동요가 문득문득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 8월은 그냥 기다리면서 짬 날 때마다 아버지를 보긴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거나 지랄맞게 덥던 여름이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어젯밤으로 끝나고 오늘 아침에는 션하다 못해 썰렁하기까지 한 바람이 불어대니 이제 좀 정신줄을 챙기고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이번에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든 생각이 결국 이 장례라는 것이 죽은 자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산자의 자기 위안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더라는 것.. 사실 대딩 2학년 시절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걍 철딱 없는 애새끼였던 고로 머 그런 생각이고 뭐고 할 겨를도 없었는데.. 이제 내가 나이가 먹어서 이런 일을 치르다 보니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명멸하더라는 것.. 암튼 여러 고마우신 분들 덕에.. 내가 과연 그런 호의를 그렇게 덥석 덥석 받아들여도 되나 싶을 정도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모든 일들을 마칠 수 있었다.. 앞으로 졸라 착하게 살아야겠다.. -_-ㅋ 난 사실 아버지와는 많이 다르게 살려고 노력해 왔고.. 그건 내가 철이 들면서부터 느꼈던 내 나름대로의 불편함 때문이었는데.. 머 그거야 그저 스타일 문제로 치부하면 그런 방식이 아버지의 방식이니 그걸 가지고 내가 가타부타 얘기할 입장은 못 된다.. 그치만 그런 걸 다 떠나서 아버지한테 특별히 고맙게 느끼는 점이 있다면.. 적어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가치 기준을 몸소 알려주셨다는 점이라 하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의 기본은 염치를 아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는 것.. 머 이 정도의 가르침이 아버지로부터 전해졌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나 싶다..
아버지 뜻대로 다행히 천주교 성지에 모실 수 있었고.. 그래서 장례식장에는 계속 조용한 카톨릭 성가가 무한 반복이 되고 있었는데.. 사실 내가 무한 반복으로 틀어 놓고 싶었던 음악은 따로 있었다.. 아버지한테 직접 여쭤보고 답을 듣지 못했기에 내 맘대로 그럴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하긴 아버지한테 당신 장례식장에서 이 음악 틀어 놓고 있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본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싸다구 처맞을 짓인 것 같긴 하지만.. -_-;; 그치만 아마도 그랬다면 아버지는 오케이 하셨을 듯.. 머 당신이 제일 좋아하던 곡이니 말이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지난 8월에는 음악이야 계속 들었지만 그걸 가지고 이래저래 끄적거릴 동력도 안 생겼고.. 머 그러다 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도 들더라.. 내가 이거 관종짓 내지는 유치뽕의 자랑질이나 처할려고 여기다 판을 주구장창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암튼 그런데다 아버지 일까지 겹치면서 블로그에 발을 끊고 있었는데 이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그나마 여기다 글로 끄적거려서라도 마음의 정리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간만에 여길 들어와 보는 것이다.. 암튼 이번에 장례를 치르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장례 첫째 날에 모든 식구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고 애녀석이랑 둘이서 장례식장에서 자기로 했는데.. 열시 반 쯤 되니깐 완전 파장 분위기라 모두 조용해지더라.. 그래서 폰에다 타이달을 연결해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을 조용하게 튼 다음에 아버지 제단 위에 놓아 두고서는 한참을 애녀석이랑 같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도 당신이 가장 좋아하시던 이 음악을 들으셨으리라 억지로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결국 이건 나를 위한 자기 위안과 위로가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제일 먼저 틀었던 음악 역시 동일한 음악.. 유진 오먼디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판으로다 들었다는.. 올리는 판에는 푸른 옷소매 환상곡을 비롯한 여러 자잘한 소픔들이 실려 있는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그야말로 두툼한 비단결 같이 느껴지는 현의 질감이 일품이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나서 풀어보자면.. 마스카니는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조용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시칠리아 작가 베르가의 희곡을 친구가 각색한 대본으로 오페라를 만든 담에 오페라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1등을 덜커덕 먹었다고 한다.. 이로써 마스카니는 하룻밤 사이에 유럽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는데.. 원래 이 양반이 참가했던 오페라 경연 대회는 1막짜리 오페라가 대상이었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2막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참가 자격이 없었다고 한다.. 마스카니는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는데.. 두 막을 연결하는 간주곡을 작곡했고.. 이 곡이 연주되는 동안 커튼을 그냥 열어 두었다고 한다.. 천잰데.. -_-ㅋ 연결시키는 링크는 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의 연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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