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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슈베르트.. 교향곡 9번..

by rickas 2024. 2. 3.

아주 오래 전부터 생긴 습관이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졸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뭔가 멘탈적으로 지쳤을 때 당연히 슈베르트를 찾아 듣게 되는 것이다.. 글구 그 중에서도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작품이 바로 그의 교향곡 9번이다.. 졸라 피곤했던 지난 주에도 이런 저런 음악을 듣기는 했지만 역시 제일 먼저 손이 갔던 것은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이었다.. 머 이 교향곡이 오늘날까지도 되두 않는 잉간들 한테서는 음악적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이 곡이 나한테 주는 것은 그게 좀 모호한 얘기이긴 한데.. 걍 축약해서 말하자면 위로와 공감이라 하겠다.. 그게 무슨 베토벤 스탈의 중뿔난 전투력이나 에너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짜르트 스탈의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감도 아닌 그저 옆에서 에구 ㅅㅂ 고생했네.. 하면서 등을 토닥거려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글구 거기에 더해 한 움큼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추억팔이랄까.. 머 그렇다.. 하긴 생각해 보면 슈베르트의 음악이 원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이런 9번 교향곡과 같은 식으로 졸라 뻥튀기 되어도 나한테 흘러 들어오는 정서적 흐름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암튼 내가 이 교향곡을 각별하게 애정하는 고로 내 딴에는 꽤나 많은 지휘자의 연주를 사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지난 번에는 간만에 샤를 뮌슈의 보스턴 심포니 연주반으로 꺼내 들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이게 원래는 리빙 스테레오로 판 값 좀 하는 넘이었을텐데.. 당시에 영국 라이센스 싸구려 판도 같이 있길래 내가 무슨 황금귀라구 하는 생각에.. 낼름 이 싸구려 판으루 들고 왔던 것 같다.. 머 소리는 모르겠고.. 연주가 골때리는데.. 뮌슈 이 양반의 연주는 진짜 마초적 연주의 진수를 들려주는 듯하다.. 졸라 직진.. 무조건 이빠이 풀 악셀로 밟는거다.. 조낸 달리는거야.. 머 이런 식의 연주 되겠다.. ㅋ 첨에 샀을 때 듣고서는 좀 기가 차서리 던져 놓았던 생각이 나는데.. 며칠 전에 들어 보니 머 그건 그 나름대로 들을만 하더라.. 역시 나이를 먹으니 졸라 너그러워지는 것인지.. 아님 사리판단이 불분명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_-;; 암튼 과거에 허용하던 수용의 범위가 이제는 꽤나 늘어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슈베르트가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졸했을 때 비엔나에 있는 그의 가장 가까운 음악가 칭구들조차도 그를 교향곡 작곡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슈베르트를 그들의 모임을 위해 많은 아름다운 노래와 피아노 왈츠 또는 실내악을 썼던 수줍음 많고 그다지 매력은 없지만 사랑스러운 동료로 여기고 있었다.. 사실 이 양반들은 슈베르트가 스물 한 살이 되기 전 이미 여섯 개의 교향곡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슈베르트는 10년 동안의 사이에 미완성 교향곡을 작곡했고.. 그의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에 위대한 C장조 교향곡을 완성했다.. 그렇지만 슈베르트의 칭구들은 이 교향곡들을 본 적이 없었고.. 미완성 교향곡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슈베르트가 그저 유쾌한 세밀화 화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 즉 교향곡 작곡가로서 불멸의 선상에 서 있는 존재라는 것을 세상이 깨닫게 되기 전까지 이 두 개의 교향곡은 대중에게 공연될 일이 없었다.. 1822년 슈베르트가 그라츠에서 무심한 듯 던져 놓고 이내 잊어버렸던 미완성 교향곡의 경우 슈베르트가 늘상 고려해야 했던 자원의 부재.. 그니깐 완전히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솜씨의 칭구들이 오케스트라에 섞여있는 비율 같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그의 자유로운 음악적 성향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첫 번째 교향곡이라 할 수 있겠다.. 그로부터 6년 후 슈베르트는 그의 백조의 노래라 할 수 있는 C장조 교향곡을 완성하였는데.. 이 교향곡이야말로 그동안 슈베르트가 걸어 왔던 족적과 그에 수반된 음악적 성취를 완전히 뛰어 넘는.. 말도 안 되는 난이도와 길이 그리고 오케스트레이션을 동원한 지금까지 슈베르트가 세상에 보여주었던 세계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드높은 궤적을 보여주는 그런 작품이 되었다.. C장조 교향곡은 슈베르트의 부고 기사에서 그가 초연을 바라고 1828년 비엔나 악우협회에 제출했던 것으로 잠깐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연주 곤란으로 판정 받은 이후 1839년 슈만이 슈베르트의 형인 페르디난트가 소유한 악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잊혀진 상태가 되었다.. 슈만은 그의 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음악적 예언자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즉, 쇼팽을 세상에 선포했고.. 브람스라는 이름의 모호한 젊은이를 세상에 알린 양반이었다.. 슈만은 슈베르트의 C장조 교향곡 악보를 보구서는 졸라 흥분해서리 이를 후딱 복사한 담에 라이프치히의 지휘자였던 그의 칭구 멘델스존에게 보냈다.. 멘델스존은 게반트하우스 콘서트에서 여러차례 공연을 했고.. 큰 찬사를 받았다.. 그치만 일케 이 걸작이 세상에 소개된 이후에도 사실 세상에서의 일반적인 수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1842년 하베넥이 파리에서 음악원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을 시도했는데 마지막 악장의 리드미컬한 선율의 반복에 대해 연주자들이 졸라 비웃었다고 한다.. 2년 후 멘델스존이 런던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했을 때도 연주자들은 마찬가지의 반발을 일으켰다.. 에이 졸라 무식한 프랑스와 영국 색퀴들.. -_-ㅋ 그치만 그런 모질이들의 폄하와 비웃음을 거쳐서 이 교향곡은 살아 남았고.. 이는 슈만이 했던 말.. "강한 것이 그 길을 만들 것이다.." 를 증명했다.. 슈만 넘 므찌다.. ㅋ

유튭을 찾아보니 오만가지 연주가 전곡 영상으로 올라와 있는데.. 머 이런 곡은 일단 가오빨이 중요하니깐.. -_-ㅋ 반트 옹의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의 연주로 걸어 놓는다.. 영감님 스케일 장난 아니고 알흠다운 노래의 유장한 흐름도 넘 머찌게 들려주는 연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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