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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비버.. 묵주 소나타..

by rickas 2023. 11. 18.

타이달을 듣다 보면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졸라 당연한 얘기지만 굳이 까리한 신보를 살 필요 없이 일단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두 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대로 실컷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인데..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에 아망딘 베이어의 앨범을 뒤적거리다 묵주 소나타가 새로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군 급호기심이 땡겨서 열심히 들었던 적이 있었다.. 듣고 난 소감은 어떠했냐.. 한 번 듣고 바로 주문했다.. -_-;; 이렇게 솜털같이 가볍고 리듬감 넘치는 연주라니.. 종교적  후까시하고는 완전히 상극되는 지점에 있는.. 세속적이지만 그렇다고 때묻지는 않은 철딱서니 없는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연주라는 생각이 들더라.. -_-ㅋ 사실 내가 비버의 묵주 소나타를 워낙에 애정하는 고로 그동안 사재낀 판이나 CD도 좀 된다만.. 간만에 정말 신선한 연주를 들은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는 이 곡을 가장 변퇴스럽게 연주한 -_-;; 괴벨의 녹음인데.. 이건 좀 과한 면이 있고.. 만지나 할러웨이는 걍 무난하고.. 포져 누님의 녹음은 어째 걍 이쁘기만 한 느낌.. 근데 베이어의 연주는 확실히 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실실 추운 계절로 접어드는 요 시점에 딱 어울리는 곡이 아닐까 싶은데.. 생각난 김에 오늘 들었던 판을 올린다.. 프란츠요제프 마이어의 바이올린으로 녹음된 도이치 아르모니아 문디 판이다.. 예전에 이 곡의 LP로 처음 구했던 판이 당연히 멜쿠스의 녹음이었고.. 그 이후 꼭 구하고 싶었던 판이 두 가지.. 하나는 라우텐바허 누님의 판과 프란츠요제프 마이어의 이 판이었다.. 당시 라우텐바허 누님의 판은 의외로 쉽게 미쿡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마이어의 판은 드럽게 구하기 어렵더라.. 그래서리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아마도 영국이던가 독일이던가 어느 사이트에서 찾아내 구하고선 졸라 뿌듯해 했던 기억이 있는 판이다.. 어쩌면 요즘은 국내 LP 사이트에서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이런 판들은 대개가 말두 안되는 가격을 올려 놓구 호구를 기다리는 낚시꾼들이 많더라.. 멜쿠스와 마찬가지로 소위 원전 악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멜쿠스가 원전 연주치고는 상당히 감정적인 느낌의 연주를 들려준다면 마이어는 졸라 엄숙하고 경건하다.. 그리고 그 울림이 무쟈게 아름답다.. 녹음이 무척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연주 자체가 느릿하면서 찬란하게 빛나는 여러가지 빛깔의 울림을 공간에다 쵝촥 흩뿌려주는 느낌을 들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괴벨의 CD에서 테오르보를 맡고 있는 콘라드 융헤넬이 마이어의 판에서도 등장한다는 점..

잘츠부르크 대주교 막스 간돌프, 쿠엔베르크 백작은 유럽의 가장 위대한 궁정에 비견될 만한 궁정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는데.. 이 명성은 대부분 무파트와 비버라는 두 명의 음악가에서 비롯되었다.. 비버는 1644년 보헤미아의 마을인 바르텐베르크에서 현장 경비병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게 없다.. 슈멜처에게 배웠던 것 정도만 알려져 있고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거장으로서 그가 발전해 나갔던 경로 역시 그리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다만 그는 1678년 초에 궁정 관현악단의 보조 지휘자가 되었고 1684년에는 지휘자가 되었는데 잘츠부르크의 이 관대한 후원자에게 헌정된 최초의 작품 중 하나가 묵주 소나타로 알려진 16개의 소나타였다.. 사실 이 곡은 말이 소나타지 형식 자체는 소나타라는 양식과 거리가 먼 걍 바이올린 모음곡이라고 하는게 오히려 맞을 듯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곡은 묵주 기도의 15가지 신비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신비를 묘사하는 동판 에칭을 각 소나타의 시작 부분에 배치하여 제목 대신 다양한 작품의 의미와 주제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사실 막스 간돌프라는 양반은 워낙에 마리아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서리 1674년 잘츠부르크 인근에 유명한 마리아 플레인 순례교회를 건립하게 했고.. 교회 건축을 위해 막대한 사비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1676년에 묵주기도회 창립을 담당하기도 했으니 비버의 묵주 소나타와의 맥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겠다..

비버의 묵주 소나타는 바이올린 음악 분야에서 독특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묵주 신비의 연관성이 표제 음악의 의미에서 볼 때 적절하게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이올린의 비정상적인 조율이라 하겠다.. 사실 동반된 에칭에 의해 설정된 주제와 각 소나타의 관계는 직접적인 묘사라기보다는 유보적이고 관조적인 느낌이 들게 한다는데.. 오히려 이러한 면이 음악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있단다.. 뭔 개솔인지 잘 모르겠는데 -_-ㅋ 걍 내 생각으로는 그저 그 장면의 분위기가 묘사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스코르다투라 기법의 사용으로 비버는 새로운 음조 범위를 달성할 수 있었고 이는 비버를 동시대의 다른 잉간들보다 뛰어난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데.. 비버가 그의 후기 소나타에서 스코르다투라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묵주 소나타를 종교적 주제에 맞게 특별히 차별화된 방식으로 작곡하려 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단다.. 소나타 중 두 곡은 컬렉션과 별개로 그 자체의 작곡으로 보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데.. 미하엘보이에른 수도원에서 발견된 열한 번째 "부활" 소나타와 비엔나의 소수파 수녀원에서 발견된 열번째 소나타 "십자가에 못박히심" 이 그들이다.. 특히 수녀원에서 발견된 열번째 소나타 작품에는 1683년 투르크족의 비엔나 침공과 관련된 프로그램 제목 이외에도 묵주 소나타에서는 볼 수 없는 마지막 악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암튼간에 비버의 묵주 소나타는 그가 전례 음악에 집중하여 얻어낸 창조력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자.. 그의 서정적 추진력과 심오한 해석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는 위대한 작품이라 하겠다.. 머 꿈보다 해몽은 각설하고.. 난 이 곡이 넘 좋아서리 한때는 그야말로 무한반복으로 들은 적도 있다는.. 뭔가 지랄맞은 세상의 어두움 속에서 빛으로 가득한 한움큼의 소금을 받아드는 느낌이랄까.. 그 소금으로 에이 ㅅㅂ 졸라 재수없는 새끼들 꺼지라구 뿌려대면 딱 좋을 듯.. -_-ㅋ

연결시키는 링크는 열번째 곡 "십자가에 못박히심" 이다.. 미리엄 혼타나라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같은데 연주의 후까시와 영상의 간지가 잘 버무려져 있길래 걍 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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