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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베토벤.. 교향곡 9번..

by rickas 2019. 12. 30.



2019년도 이제 하루 남았다.. 해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는 졸라 상투적인 멘트가 꼭 기어 나오기 마련이지만..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하다.. 더구나 올해는 단체로 쳐돌아서 미친 새끼들을 상당 기간 목격할 수 밖에 없었던 개피곤한 상황이 있었던 고로 말 그대로 다난한 한 해였음이 틀림 없다.. 머 어쨌거나.. 세월은 가게 마련이고.. 결국은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 이르렀다.. 개인적으로는 머 별루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애녀석이 군대를 갔고.. 그 덕에 간만에 와이프랑 둘이서 여름 휴가두 오붓하게 다녀올 수 있었고.. 그치만 역시 그 덕에 강릉을 좀 자주 들락날락 하게 되었다는게 변화라면 변화 정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구 보니 올해가 결혼 25주년이기도 했는데.. 그 핑계를 대구 외이프랑 맘에 드는 시계 하나씩 사서 차자는 훼이크를 쓰면서 새 스피커를 들여 놓기도 했다.. -_-ㅋ 알면서두 넘어가 준 와이프가 고맙다.. ㅋ 이게 다 작년 말에 남의 오디오 맞춰 주면서 그넘의 장터 바닥을 다시 들락거리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지름신을 영접하다 보니.. 나는 이제 더 이상 오디오 같은 거는 별로 신경이 쓰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개구라 치네.. -_-;; 암튼 그랬는데 그넘의 사이트를 들락거리다 보니 그게 아니더라능.. 암튼 스피커 얘기는 나중에 하구.. 요 몇 년간 좀 뜸하긴 했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간만에 오늘은 베토벤 슨상님의 9번이 실린 판을 한 장 올린다..


베슨상님의 9번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것 만큼 시간 낭비두 없을 것 같다만.. 생각해 보면 이 곡이야말로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시도한 바깥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이후의 작품들인 후기 현사들이야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 내지는 독백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이 곡이 그가 세상에 전할 수 있는 마지막 메시지였던 것 같다.. 졸라 거창한 마지막 메시지.. 오늘 올린 판은 솔티 슨상님이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판이다.. 이 판을 꺼내 듣기 전에 내가 갖고 있는 9번 LP가 뭐가 있나 하구 보니 뭔 넘의 9번을 클케 많이 사 모았는지 원.. 암튼 해마다 한 장 씩 올리는 데는 당분간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능.. -_-;; 이 판은 데카반이고 성음 라이센스 판인데.. 얘를 구했던게 아마도 대딩 1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앞에 있던 태림 레코드였나.. 뭐 그런 제목의 판 가게에서 샀던 것 같은데.. 당시 9번을 살려구 했을 때 그 판 가게에서 별루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샀던 듯하다.. 어쨌거나 이 판으로 베토벤의 9번을 꽤나 많이 들었고.. 그만큼 나한테는 익숙한 연주가 되어 버렸다.. 사실 녹음이 그리 좋은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모르게 좀 어둡고 둔탁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연주 자체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따지고 보면 오만 음악 평론가 나부랭이들이 솔티의 연주가 졸라 다이나믹하구 힘차면서 극적이라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난 잘 모르겠더라.. 그치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9번에 있어서는 일종의 첫 사랑 같은 느낌이 드는 판이 이 판이라 하겠다.. 글구 보면 당시에는 조또 엄는 학생 시절이고.. 더구나 수입반이라는게 정식으로 유통되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기껏 있는 판이라고는 성음에서 찍어낸 라이센스가 다였고.. 간혹 미친 척 지구에서 찍어낸 라이센스 정도.. 그니깐 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판들을 신난다구 사서 참 열심히도 들었던 생각을 해 보면 요즘같이 모든 종류의 음원들로 오만가지 다양한 연주들을 실컷 들을 수 있는 시대하고는 차원이 다른 태고적 시대라는 느낌이 든다.. 머 그 때가 더 음악적으로 순수했고 어쩌구 하는 신파같은 소리는 됐구.. 그 때랑 비교해 보면 솔직히 차이나는 것은 나 자신의 집중력이 아닐까 싶다.. 당시는 뭔 판을 사서 듣건 졸라 음악 자체에 대한 집중력이 살아 있었는데.. ㅅㅂ 요즘은 듣다 보면 신경 쓰는게 졸라 많아서리 온전히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지 못 하는 꼬라지를 항상 느끼게 된다.. 머 어쩌겠냐.. 나이를 쳐먹으면서 그만큼 세상의 번뇌를 등짝에 짊어지게 되다 보니 그런걸.. 근데 이게 걍 좋게 말해서 번뇌지.. 솔직히 얘기하자면 대부분이.. 소리가 이렇구 저렇구 그래서리 이렇게 저렇게 보완이 되었으면 좋겠구.. 그러다 보면 무슨 질알을 해야 좋아질라나.. 머 그런 번뇌를 넘어서는 물욕이 대부분이긴 하다.. 그러다 그 분이 강림하시면 그야말로 머릿 속에만 있던 질알을 현실로 체화시키는 과정에 접어 들기도 하는 것이다.. -_-ㅋ


암튼 한 해가 다 지나가는 이 때 습관적이고 고루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베토벤 슨상님의 9번은 한 번 들어줄 일이다.. 모든 일에는 마침표라는 것이 필요하고 그래야 또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관계로 그런 한 해의 마침표와 같은 의미를 던져주는 곡으로서 이 곡을 듣는 것이다.. 링크시키는 영상은 무티가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의 연주 영상이다.. 2015년 5월 7일 연주인데.. 젊었을 적 꽃미남 같던 무티가 이제는 나이가 잔뜩 먹은 티가 팍팍 나는 할배가 되어서 등장한다.. 따지구 보면 이 양반 나이가 올해로 일흔 여덟이라능.. 헉.. -_-;; 그치만 여전히 조낸 멋있다.. 역시 무티는 지휘하는 폼이 뭔가 아티스트의 간지가 좔좔 흐른다.. 뒤에 보이는 베이스 연주자들을 보면 연령대가 장난이 아닌 것이 이 오케스트라의 연륜을 말해 주는 듯하다.. 그치만 9번 교향곡에서 나타나는 베토벤의 사상과 싱크로를 이루듯이 연주자들의 인종은 졸라 코스모폴리탄 적이다.. 예전부터 시카고 심포니의 연주 실력이 기능적인 면에서는 그야말로 최정점에 이른 오케스트라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흐름을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음악을 또박또박 들려 주면서 충분히 잘난 체를 해가는 연주의 느낌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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