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제대로 정신 좀 챙기고 저녁 때 음악을 들었다.. 토욜 이런 저녁 시간 무렵이면 보통은 코난을 보면서 시간을 죽이거나 아님 겜을 하거나 그랬는데.. 생각해 보니 업데이트된 코난두 다 봤고.. -_-ㅋ FM은 요즘 월컵 보느라 좀 관심 밖이구 해서.. 넘 오랫 동안 앰프에 불을 안 넣은 것 같기두 하구.. 생각해 보면 최근에 정신을 좀 집중하구서리 음악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는 듯.. 하긴 머 꼭 음악을 정신을 집중하고 미간에 주름을 잡아가면서 졸라 심각하게 들어야 반드시 맛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근데 오늘은 그러지 않구서는 듣기 힘든 그런 곡을 간만에 들었기에 올려 놓는다..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슈만의 음악이라 하면 머 보통은 안 봐도 비디오요.. 안 들어도 오디오 아니겠냐.. 미쳐버린 열정의 낭만.. 그의 생 자체가 조낸 비극이다 보니 그의 음악 역시 그런 느낌이 드는 곡들이 많은데.. 오늘 올리는 바이올린 협주곡이야말로 그 태생부터 해서 세상에 알려지기까지의 드라마틱하고 뽠타스틱한 경로를 반추해 보자면.. 그의 음악적 특성이 그대로 투영된 곡이 아닐까 싶다..
슈만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곡을 1853년 9월 21일에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일기에 남겨진 기록에 의하면 이 곡이 10월 1일에 마무리 되었고.. 10월 3일에는 오케스트레이션까지 해서 모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곡을 요아힘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는데 요아힘의 평은 초장에는 의례적인 호감을 보여 주었으나 이내 의혹을 넘어서 곡에 대한 불만을 클라라 슈만에게 토로했단다.. 주된 내용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끔찍한 패시지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잉간은 바이올리니스트 들먹거리면서 지가 이런 곡을 수용할 만한 재목이 못 된다구 자백하는 것이 종특인 듯.. 하여간 클라라는 그런 요아힘에게 그가 얘기했던 피날레를 다시 좀 손을 봐 줄것을 부탁했다는데.. 이 양반은 이를 걍 쌩깠고.. 1858년 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 리허설을 했는데.. 이게 졸라 참극이었다고 한다.. 요즘 조낸 싸나이라면 이 정도의 뽜이팅은 있어야쥐를 몸소 쳐 보여 주시는 투지 넘치는 양반하구 발음이 비슷해서 내가 타이핑을 해놓구서두 제대로 쳤나 다시금 확인해 봤다.. -_-;; ㅅㅂ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드러워지는 듯한 느낌.. 암튼 그래서리 브람스가 편집한 브라이트코프 편집판에서도 이 작품을 제외하는 것으로 결정이 된다.. 슈만의 막내딸이었던 오이게니가 1938년 1월 15일 더 타임즈에 한 기고에서 당시에 이런 결정이 내려졌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나는 그러한 결정이 내려졌던 날 프랑크푸르트 우리 집 분위기를 결코 잊을 수가 음따.. 엄마가 우리에게 와서는 얼굴에 나타나는 깊은 슬픔을 억누른 채 이 협주곡은 출판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출판하지 않기로 방금 요아힘하구 요하네스랑 함께 결론을 내렸단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머 이런 얘기가 실렸단다.. 젠장.. 도대체 문장 구조가 어케 된 거냐.. 새끼에 새끼를 치다 보니.. -_-;; 1898년 8월 5일 요아힘은 그의 전기 작가였던 모저에게 쓴 편지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딴게 아니라 단지 이 협주곡이 슈만의 다른 빛나는 작품들과 동일한 수준이 아니었다라는 조낸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요아힘의 아들은 악보의 필사본을 베를린의 프러시안 국립 도서관에다 팔아 넘겼는데.. 이 당시 조건은 슈만 사후 100년이 될 때까지는.. 그니깐 1956년까지는 연주도 하지 말고 출판도 하지 말 것이었다고 한다.. 우끼는 잉간들일세.. 하여간 이렇게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이 협주곡은 조낸 골때리는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져 빛을 보게 되는데.. 그 과정이 믿거나 말거나지만 졸라 환타지스런 얘기라는 것.. 요아힘의 조카 손녀딸 뻘이었던 아델라와 옐리 다라니는 당시에 나름 잘 나가는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이 양반들이 1933년 스펠링 텀블러 게임을 하다 슈만 구신이 내려서 자기의 잊혀진 작품을 찾아 연주해 달라고 했단다.. ㅋㅋ 머 가계도로 보자면 원래 이를 알고 있었을 확률이 다분히 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쑈를 잘하면 꺼뻑 넘어가는 것이 세상 사람 심리라.. 하여간 그래서 찾아낸 악보를 가지구 1937년 10월 첫 연주 계획을 잡았으나 슈만 막내 딸내미의 반대와 나찌 새끼들의 저작권 주장으로 인해 이는 무산되고 만다.. 그러나 결국 이 협주곡은 1938년 2월 16일 첫 번째 공개 연주가 이루어지는데.. 역시 바이올린은 옐리 다라니가 맡았고 아드리안 볼트가 지휘하는 BBC 교향악단이 협연을 했다.. 어쨌거나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곡이니 만큼 곡 자체도 상당히 혼란스럽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나찌 새끼들의 질알 덕에 쿨렌캄프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협연으로 1937년에 초연을 한 것으로 되어 있기도 한데.. 중요한 것은 이 곡을 순수 독일인의 혈통을 이어 받은 적자로서 드런 유태인 작곡가인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대항마로 생각했다는 것.. 예술을 가지구 지네 종족이 잘났다는 것을 설파하려던 것의 연장선 상이었을 것 같은데 증말 유치 돋는 새끼들이다.. 하긴 그래두 이것들은 겉으로나마 조낸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고.. 거기 연루되었던 새끼들을 아무리 나이가 쳐 먹었어두 끝까지 잡아서 족치는 정성을 표시두 하구 있지만.. 섬나라 왜구들은 조또 반성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하긴 오히려 그 덕에 부귀영화 쳐 누린 것들이 오히려 대우를 받고 그걸 지금두 우아하신 논리로 당위성을 설파하는 새끼들이 대접을 받구 있는 형국이니.. ㅅㅂ 멀 바라겠냐..
곡의 시작은 앞으로 이 곡이 처하게 되는 비극의 시작을 알리듯 조낸 장엄하면서도 우울한 그리고 슈만 특유의 격정으로 일렁이는 듯한 분위기로 열리는데.. 이어서 꿈결같이 알흠다운 바이올린이 튀어 나오고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의 대조적인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2악장은 슈만이 천사가 들려주는 멜로디를 받아 썼다는 구라를 쳤다는데.. 이는 아마도 이 양반이 정신이 오락가락 하다보니 지껄이신 흰소리가 아닌가 싶지만.. 실제로 곡은 따스하면서도 몽롱한 아름다움을 절절히 그려낸다.. 그리고는 분위기를 일신해서 3악장으로 돌입하는데 이 악장은 앞선 두 악장과 상당히 분위기가 다르면서 화려한 느낌이 든다.. 이것만 봐도 이 양반이 그리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의심을 가져볼 수도 있겠다.. 극도의 불안정한 불안감.. 머 그런거 같다.. 사진으로 올린 판은 크레머와 무티가 협연한 판인데.. 이 녹음에서는 의외로 크레머의 바이올린이 두툼하게 들리는 느낌이 든다.. 이 양반 이래저래 별루 호감이 가는 연주자는 아니긴 해도 이 판에서의 연주는 나름 잘 어울리는 듯..
연주는 르노 카푸송의 연주로 1악장을 걸어 놓는다.. 짜슥.. 잘 생겼다..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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