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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홀스트.. 행성..

by rickas 2012. 9. 23.

 

 

오늘 날씨 졸라 좋더라.. 애녀석 시험 시즌이라 밖으로 기어 나가구 싶은 것을 꾹 참았지만.. 와이프랑 잠깐 장에 다녀 오는데 보니 오랜만에 보는 구름 한 점 없는 진짜 가을 하늘.. 머 이런 찬란한 가을도 이제 곧 시들시들.. 쭈글쭈글해 지겠지만 그때까지의 잠깐 동안은 정말 좋은 시간이다.. 좋았던 시절은 영속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시절이 가고 남는 회한과 쓸쓸함.. 그런 느낌을 전해 주는 곡이 문득 생각이 나서 올려 본다.. 홀스트의 행성 중 토성이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영국의 음악은 영국 연주자들에 의해서만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는 편견이 있어왔다.. 이런 유치하면서도 명백하게 잘못된 경향으로 말미암아 외국의 연주자들이 영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기를 꺼려하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고 한다.. 확실히 작품의 음악적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일상적인 연주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법인데.. 운좋게도 홀스트의 일곱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작품인 행성의 경우는 이러한 축에 속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 곡은 1918년 9월 29일 런던의 퀸즈 홀에서 프라이빗 연주회 형식으로 초연되었는데 이는 홀스트의 동료 음악가였던 헨리 벨포어 가디너에 의한 작곡자에 대한 증정 형식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곧이어 미쿡, 이태리, 오스트리아, 헝가리, 프랑스를 비롯해 심지어는 소련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나가게 된다.. 스코틀랜드에서의 초연은 1922년 1월 16일 에딘버러의 페터슨 콘서트에서 단지 세 개의 악장.. 화성, 금성, 목성만으로 이루어졌고 1926년 12월 2일에 가서야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글래스고우의 세인트 앤드루스 홀에서 BBC 콘서트의 일환으로 전곡이 연주되었다..

전체 일곱 개의 악장의 첫 번째 레코딩은 1922년 9월부터 1923년 10월에 이르기까지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이루어졌다.. 홀스트는 1926년 6월부터 10월에 걸쳐 이 곡을 다시 녹음했는데 새롭게 도입된 녹음 장비 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양반도 재생 음악의 소리라는 것에 대해 상당히 예민했던 듯.. 아마도 오늘날 같았으면 작품의 꼬라지로 보건대 오디오 덕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 매우 강한 추정이 되지 않을 수 엄따.. -_-;; 그 이후로 수 많은 영국 지휘자와 외국 지휘자들이 이 곡을 녹음했다.. 보울트는 이 곡을 다섯 번 녹음했고.. 사전트는 두 번.. 그리고 머 솔티, 서스킨트, 매리너, 깁슨을 비롯한 오만 기타 등등의 지휘자들이 졸라 녹음을 해댔으니 하여간 이 곡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들 사이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는 곡임엔 틀림 없다 하겠다.. 오늘날 홀스트의 행성은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이후 영국 작곡가의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는 가장 많이 녹음된 작품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홀스트의 점성술에 대한 관심은 1913년 봄에 동료 음악가였던 클리포드 박스를 만나면서 생겨났다.. 나중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일반적으로 나에게 음악을 암시하고 제안하는 것들에만 이끌려서 공부하게 되는데.. 최근에 알게 된 각 행성들의 특징은 나에게 많은 것을 제공했다"  그니깐 이 양반은 행성들에 대한 점성술을 접하면서 상당한 음악적 영감을 받았던 듯하다.. 홀스트의 딸내미인 이모젠이 홀스트의 작품집 세 번째 권에서 언급한 바를 읽어 보면 그가 이 행성들에 대해 알게 되었던 관념적인 이미지가 그대로 이 작품에 투영되었음을 볼 수 있다.. 즉, 화성이 지닌 꼴통스럽고 단호하며 확신에 차 있는 특성.. 금성이 지닌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타고난 성향.. 날개 달린 신들의 전령으로서의 수성이 지닌 명석함과 재치.. 목성이 가진 자신감과 희망에 찬 특성.. 토성이 가진 참을성과 영속성.. 천왕성의 기이함과 불예측성.. 그리고 해왕성의 미묘한 신비함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그가 지녔었다는 각 행성들에 대한 심상들이 각각의 악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첫 번째 필사본에 나와 있는 홀스트의 오리지날 타이틀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일곱 개의 작품' 이었는데 1919년 2월에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 전까지의 홀스트의 작품에서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생각해 볼 때 나중에 붙인 이름이 보다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동원된 악기들을 열거해 보자면.. 거기다 해왕성에는 여성 합창단까지 등장.. -ㅁ- 이게 장관인지 가관인지는 잘 모르겠다.. -_-;; 내가 원래 책가방 크다고 공부 잘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신봉해서리.. 하여간 첨에 이 곡을 전부 듣고는 으.. 오디오는 일단 좋구 봐야 되겠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었다.. 머 이 곡이 그저 그런 소리로 흘러 나와도 상상력만 동원하면 얼마든지 이빠이 감동을 때릴 수 있을 만한 그런 곡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제대로 들어 보자면 아무래도 하드웨어가 좋아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긔.. -_-ㅋ

 

이 판의 연주를 맡은 양반들은 알렉산더 깁슨 경이 이끄는 스코티쉬 국립 교향악단이다.. 이 판은 1979년 7월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녹음되었는데.. 1979년은 깁슨 경이 스코티쉬 국립 교향악단에서 응악 감독으로서의 스무 번째 시즌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의 수족 같은 오케스트라였을 것이고.. 그래서리 오케스트라의 확고한 합주력을 예상치 않을 수 없고.. 거기다 디지털 녹음이라 상당한 기대를 안겨 주는 음반인데.. 들어 보면 사실 머 그저 그렇다.. -_-ㅋ 물론 연주 솜씨가 션치 않다는 것이 아니라.. 머 내가 그 정도를 떠벌릴 만한 주제도 못 되지만.. 현대적인 디지털 녹음에서 기대했던 선예한 해상력이랄까 하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주가 맘에 드는 것은 내가 이 작품에서 제일 좋아하는 토성의 연주가 무척이나 맘에 들기 때문.. 쓸쓸함과 공허함.. 그리고 평온한 휴식.. 이러한 감정들의 흐름이 왠지 졸라 강하게 가심에 와서 닿는 느낌을 제공해 주는 면이 있다는 것.. 그런 것 때문이다.. 물론 목성에서의 유장한 선율 역시 졸라 멋지게 늘어뜨린다.. 솔직히 내가 머 이 작품 자체를 졸라 좋아해서리 이 판 저판 사서 들어본게 어니라 좀 그렇긴 하지만 적어도 메타의 LA필 연주가 소리는 훨씬 좋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토성에서의 그러한 미묘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연주는 깁슨 경의 것이 더 맘에 든다.. 아쉬운 것은 뒤트와가 지휘한 몬트리올 심포니의 연주 LP를 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도통 눈에 뜨이질 않는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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