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를 다녀온 지도 이제 한달이 훌쩍 넘어가는데 아직도 폰에 있는 사진들을 제대로 정리를 못하고 있다.. 사실 정리라고 할 것도 없고 세 식구 각자 눌러댄 사진들 걍 다운 받아서 대충 분류한 다음 내깔겨 놓으면 그만인데 그것도 귀찮아서 뭉개고 있는 중.. 암튼.. 이번 휴가 사진들을 정리하고 포스팅 할 거 다 하구 나면 아마도 내년 여름 휴가철이 닥치지 않을까 싶다.. -_-;; 어쨌거나 이번에는 플로렌스에서 보았던 그림들 중 인상 깊었던 것들 몇 개를 올린다.. 대개는 우피치 미술관과 피티 궁전의 팔라티나 갤러리에 있는 그림들인데.. 간혹 베키오 궁전이나 아카데미아 갤러리.. 아니면 성당 등에 걸려 있던 것들도 있다.. 오늘은 그 중 아카데미아 갤러리와 우피치 미술관의 그림들을 올린다.. 사실 내가 플로렌스에 오구 싶었던 제일 큰 이유는 팔라티나 갤러리에 있는 그 그림을 보구 싶어서였다.. 아마도 그 그림 얘기는 다음 포스팅에서나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첫 번째 그림은 베키오 궁전에 걸려 있던 성 모자와 세례 요한이다.. 작자는 세바스티아노 마이나르디 또는 야코포 델 셀라이오로 추정된다고 한다.. 둘 다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화가이고 기를란다요의 영향을 받았다는데.. 이 그림이 유명한 것은 졸라 우끼게도 그림 안에 보이는 UFO 때문이다.. ㅋ 작자가 뭔 생각으로 그려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모의 뒤 편에 미확인 비행물체가 보이고 그 풍경에는 이를 눈이 부시다는 듯이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올려다 보는 잉간의 모습까지 묘사되어 있다.. 호사가들이 주둥이 털기 딱 좋은 떡밥을 화가께서 투척해 주신 셈인데.. 그게 뭔지는 누가 알겠냐.. 베키오 궁전을 갔던게 졸라 늦은 밤이라서 조명두 어둡고 하다 보니 색감이 좀 구린데 실제는 무척이나 곱다.. 특히나 성모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곤색과 적색이 무척이나 이쁜 그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음도 역시 베키오 궁전에 있던 그림인데.. 엘레오노라.. 그니깐 코시모 1세의 마누라였던 그녀의 예배실 제단화가 되겠다.. 사실 이런 궁전의 벽화나 천장화도 워낙에 뻑쩍지근한 작품들이 도배가 되어 있어서리 보다 보면 나중에는 멀미가 날 지경인데.. 베키오 궁전의 천장화도 화려하지만.. 피티 궁전은 그 화려함이 장난 아님.. 아마도 당시에 메디치 가문에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던 피티 가문의 어떤 잉간이.. 여봐라.. 거 왜 메디치 네꺼보다 훨씬 더 뽀대나구 고급지게 꾸며 보거라.. 하면서 그렇게 되었을 듯 한데.. 암튼 이런 건물들을 돌다 보면 모가지가 졸라 뻐근해진다능.. 천장에도 입이 벌어지는 그림과 장식들이 도배가 되어 있어서 말이다.. 어쨌거나.. 이 그림은 천장화에 있는 성 미카엘의 바로 밑에 붙어 있는 제단화인데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성모를 그린 그림이다..
다음은 아카데미아 갤러리에 있는 그림.. 옥좌 위의 성 모자인데.. 1320년에서 1325년 사이의 그림이란다.. 작자는 Master of St Cecilia 라고만 알려진 무명씨로.. 이 양반은 1290년대부터 132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플로렌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하니.. 아마도 그의 만년의 작품일 것 같다.. 그의 호칭은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산타 체칠리아의 생애를 그린 유명한 휘장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조토와 동시대의 인물이고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묘사한 프레스코화를 당시 플로렌스의 거장들과 공동 작업으로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머 그림은 전형적인 중성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성모에다 연식으로 이미 완성되어 보이는.. -_-;; 얼굴을 갖고 있는 아기 예수의 모습이다..
다음 그림은 정확치는 않지만 1300년대 후반의 피렌체 화가였던 마리오토 디 나르도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수태고지이다.. 이 그림은 원래 오르산미켈레에서 목수들 길드에게 할당된 벽 기둥에다 걸어 놓았던 그림이라고 한다.. 글구 실제 이들의 수호 성녀가 성모 마리아였단다.. 이 그림이 독특한 것은 일반적으로 수태고지 그림에서 성모가 서 있는 경우는 무쟈게 드물다는데 그 중 하나가 이 그림이라는 사실 되겠다..
다음 그림 역시 아카데미아 갤러리에 있던 부쟈르디니의 성 모자와 어린 세례 요한이다.. 역시 아기 예수는 근엄한 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고.. 세례 요한 역시 아기 예수와 동일한 나이대인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조낸 순종적인 표정과 몸짓을 하구 있다.. 그치만 성모 마리아는 얼굴에서 이전과는 다른 여성성을 보이고 있다.. 이 그림은 배경에 있는 대추야자 때문에 종려의 마돈나라고 불린단다..
다음은 세례 요한과 두 천사들과 함께 있는 성 모자라는 제목을 가진 그림인데.. 1470년 경에 그려진 보티첼리의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단다.. 아직은 리피와 베로키오 공방에서의 영향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 보티첼리 특유의 망가 같으면서도 시적인 우아함이 약간은 스며 나오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다음 그림도 아카데미아 갤러리에 걸려 있던 보티첼리의 바다의 성모라는 작품.. 머 이것도 아마도 보티첼리라고 추정되는 것이지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머 그렇다고 치고.. 배경에 바다가 보이기 때문에 그런 제목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아기 예수의 부자연스러움이나 신체의 비율이나 크기 등이 상당히 위화감이 들긴 하지만.. 성모의 그윽히 응시하는 눈동자가 꽤나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우피치 미술관에 있던 작품들이다.. 우선은 조토의 오니산티 마돈나이다.. 원래 오니산티 교회에 있던 작품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조토는 르네상스의 여명을 알린 양반으로 잘 알려져 있듯이.. 과거 회화에서 나타나는 판화형 박제 인간이 아닌 실제의 인간과 자연을 묘사하기 시작했다지만.. 그래서 자연스러운 사람의 감정과 동작을 360도를 돌아가면서 묘사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이 그림에서 보듯이 아직은 르네상스와의 시차가 느껴진다.. 그치만 성모의 표정을 보면 같은 방에 있던 치마부에나 두치오의 그림에 있던 정형화된 인상보다는 훨씬 인간스럽게 묘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음은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이다.. 원래는 시에나 대성당의 성 안사누스 제단화였던 작품인데 1799년 우피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왼편의 인물이 성 안사누스라고 하는데 시에나에서 열심히 포교 활동을 했다고 한다.. 맨 오른쪽 인물은 성 마가레트라는데 그녀가 용에게 삼켜졌을 때 지니고 있던 십자가로 용의 배를 가르고 나와서리 그녀를 출산의 수호 성녀라고 한단다.. 암튼.. 그림은 가브리엘과 성모 마리아의 동작과 표정이 무쟈게 역동적으로 묘사된데 비해 이들을 표현하는 방식은 졸라 2차원적이라 여전히 좀 지루한 느낌이 든다..
다음 그림은 보티첼리의 팔라스와 켄타우르스라는 작품이다.. 여기서 팔라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가리키는데 말하자면 지혜가 무식의 상징인 켄타우르스를 제압한다는 내용이란다.. 근데 팔라스가 입구 있는 가운에 징식된 다이아몬드 링 문양은 메디치 가문의 잘 알려진 문양이라고 하니 이 팔라스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뻔한 얘기 되겠다..
다음 역시 보티첼리의 성 모자와 다섯 천사.. 유명한 그림이다.. 비로소 성모 마리아의 표정에 인간스러운 모성이 나타나 보이고.. 아기 예수의 표정도 마음의 소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_-;; 이들이 왼손으로 쥐고 있는 석류는 장차 흘릴 예수의 피를 의미한단다.. 배경 자체도 실제 토스카나의 평원과 아르노 강을 묘사한 것이라는데.. 그러다 보니 그림 속의 인물들이 마치 실제의 세상에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듯..
다음 그림 역시 이전 그림하고 상당히 비슷한데.. 보티첼리의 석류의 마돈나이다.. 성 모자가 왼손으로 쥐고 있는 석류가 앞의 그림보다 훨씬 실제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다음 그림 두 개는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_-;; 똥통에 파리 꼬이듯 하는 그림들이 몇 개 있는데 얘들이 딱 그래서 잉간들 뚝배기 안 나오게 찍기가 무척이나 어렵더라.. 느낌은 머.. 교과서에서 보던 석굴암을 직접 본 느낌이랄까.. ㅋ
다음은 미켈란젤로 슨상의 도니 성 가족.. 이 양반은 본인이 스스로 자기는 조각가이지 그림쟁이가 아니라고 얘기했다지만.. 그래서 그런지 이 그림의 인물을 보면 그 아크로바틱한 자세하며 스케일 큰 명암의 처리가 뭔가 조각 같은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다.. 작품을 의뢰했던 양반의 이름을 따서 도니라는 명칭이 앞에 붙었지만.. 성 가족이라는 주제를 보았을 때는 고딕 시절의 전형적 이콘화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젊고 헐벗은 남자들을 배경에 깔아 놓는 구도를 보여준다.. 오른쪽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이가 어린 세례 요한이란다.. 어느 책에선가 보니 성 가족과 뒤의 헐벗은 남정네들 사이의 담이 보이는데.. 이 담이 바로 개판인 세상과 숭고한 세상을 가르는 경계선이고.. 그래서 그 경계선 상에서 숭고한 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매개체로서 세례 요한이 그 담에 붙어 있다는 해석이 있던데.. 후아~ 진짜 해몽 한 번 끝내준다 하구 감탄을 했었다능.. -_-ㅋ
다음 그림은 무척 특이한 작품인데.. 뉘른베르크 태생의 화가였던 알브레히트 뒤러의 성 모자이다.. 일명 배의 성모 마리아라고 불리는데.. 이는 성모가 들고 있는 배 때문에 붙은 명칭으로.. 배는 인류 구원을 위해서 앞으로 닥쳐 올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는 물건이란다.. 석류도 그랬는데 이번엔 배다.. 이 그림이 독특한 것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후광이나 베일이 전혀 없고 의상 역시 전형적인 곤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 그저 평범한 인간의 엄마를 나타내듯 그렸다는 점이다.. 그림의 족보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피티 궁전의 소장품에 속해 있었고 1773년 우피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다음은 라파엘로의 무쟈게 유명한 그림.. 검은 방울새.. 머 어떤 이들은 황금 방율새가 맞다고 하고.. 오색 방울새가 정확하다는 잉간도 있으니.. goldfinch 라는 명칭으로 보면 오색 방울새가 맞을 것 같은데 머 아무려면 어떠냐.. 걍 원래 부르던 대로 검은 방울새라 하자.. -_-;; 암튼 검은 방울새의 성모 되시겠다.. 라파엘로는 조낸 비범한 천재였다는데.. 무슨 천재였냐면..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장점만을 쏙쏙 뽑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면에서 그렇단다.. 머 어쨌건.. 이 그림은 성모 마리아를 그린 그림 중 가장 자애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그림이라는데.. 머 내가 모든 성모 마리아 그림을 다 보지는 못해서 자신은 없다만.. 동의를 안 할 수가 없는 말이다.. 이 그림은 원래 걸려 있던 건물이 붕괴되면서 열 몇 조각으로 산산히 찢어져 걸레가 되었었는데.. 그 이후 500여년에 걸친 반복적인 복구 작업과 최근의 첨단 장비를 동원한 색상의 복원 작업 등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진짜 대단한 잉간들이 아닐 수 음따..
드뎌 다 빈치 슨상이 등장하신다.. 이 그림 앞도 인산인해여서 대구리가 안 나오는 각을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더라.. 다 빈치가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문하생으로 있을 때 첨으로 혼자 그렸다는 수태고지 되시겠다.. 이 그림은 판의 껍닥에 워낙 많이 쓰여서리 꼭 실물을 보구 싶던 그림이었는데.. 아직 덜 익은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눈 앞에 실제의 그림을 보구 있다는게 무척이나 가심 뿌듯했었다능.. 이 그림도 호사가들 얘기를 빌자면.. 그림에서 나타나는 어색한 비례는 우측에서 각도를 몇 도 정도 주고 보면 완벽해진다는 둥.. 이를 계산한 것이라는 둥.. 말이 많은데 머 우찌 알겠냐.. 다만 성모가 앉아 있는 정원 뒤로 토스카나 지방의 전형적인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보이는 등 이제는 성모가 완전히 실제의 세상으로 내려온 것을 표현하고 있는 점이 완전한 르네상스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음은 다 빈치의 스승이었던 베로키오의 작품인 예수의 세례이다.. 이 그림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는 바사리가 쓴 책에 나온다는데.. 그림의 맨 왼쪽에 있는 천사와 일부 배경을 다 빈치가 그렸다고 한다.. 스승인 베로키오는 이를 보구 쇼크를 먹은 나머지 야이 ㅅㅂ 나 이제 그림 안 그려.. 그러구서는 붓을 꺾어버렸다는 얘기 되겠다.. 머 그 정도까지야 잘 모르겠지만.. -_-;; 앞에 보이는 조악한 야자수 그림과 뒤로 보이는 배경이 먼가 수준 차가 나는 것 같기는 하다능..
다음은 르네상스 미술의 문화적인 지평선을 뛰어 넘어 근대 회화로 진입하는 초입을 열었다고 칭송 받는 티치아노의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이다.. 이 작품 역시 판 껍닥에서 종종 보던 그림 되겠다.. 실제로 이 그림을 보구 있자니 감탄이 연발로 나오던데.. 이는 회화가 단순히 시각 만의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능.. 백색 시트의 주름과 여인의 살결에서 느껴지는 촉각적인 실제감은 가히 소름이 돋게 만들더라..
다음 그림은 카라바조의 젊은 바쿠스이다.. 카라바조는 당시로서는 이단아와도 같은 존재였고..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고전적 규범을 따른다기 보다는 자기 꼴리는 대로의 현실적 상황을 묘사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제가 뭐든 간에 당시로서는 조낸 불량한 인물들이 많았다.. 이 그림의 모델 역시 그의 손가락에 있는 굵은 마디나 군살 등을 보건대 부두에서 일하던 젊은 노가다 청년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의 화풍은 말하자면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정도의 충격을 당시의 화단에 주었는데.. 특히나 사선으로 비치는 극적인 빛의 표현 같은 부분은 나중에 이를 따르는 카라바조 풍이라는 사조까지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사실 그의 그림은 그가 주로 활동했던 로마를 가서 봐야 한다..
다음 그림은 여성 화가 젠틸레스키의 유명한 그림..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이다.. 유디트가 막 홀로페르네스의 모가지를 따는 극적인 장면을 왼쪽에서부터 들어오는 빛을 이용하여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젠틸레스키는 이 그림 이외에도 몇 점의 유디트 그림을 더 그렸다고 하는데.. 이는 이 화가가 유디트에 강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데서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그녀는 젊었을 적 화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그림을 배우다가 그녀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알아 본 아버지가 자신의 조수 화가에게 딸을 개인 지도하게 맡겼다고 하는데.. 이 상넘으 색퀴가 하라는 그림 지도는 안 하구 그만 스승님의 딸을 성폭행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 이후 이를 둘러 싼 재판 과정에서 젠틸레스키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엄청난 고통을 당했고.. 그래서리 이 그림이 그저 애국자였던 유디트를 평범하게 찬양하는 것이 아닌.. 여성으로서의 분노와 투쟁을 본인의 경험을 투영하여 이토록 과격한 감정이입이 들어가 있는 살벌한 그림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마지막 그림.. 1600년대 초반 네덜란드 화가였던 마티아스 스토머의 작품인데.. 역시 수태고지를 나타내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그가 1635년부터 1640년에 나폴리에 머물던 시절 그린 작품인데.. 카라바조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즉 빛에 의한 극적인 명암의 대비와 인물들의 역동감이 그것인데.. 이런 표현 넘 좋다능..
이것으로 아카데미아 갤러리와 우피치 미술관에 있던 그림들 중 졸라 인상 깊었던 그림들을 대충 올렸다.. 다음 번에는 피티 궁전의 팔라티나 갤러리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위주로 포스팅 하련다.. 근데 그림마다 구구절절 구라를 풀자니 증말 이 짓두 못할 짓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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