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던가.. 눈이 오던 일욜날 집에 들어와서 바깥의 분위기도 그렇고 해서리 간만에 생각이 나길래 들었던 음악..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올린다.. 졸라 흔하게 너무나도 익숙하게 들리는 피아노의 서주로 시작되는 곡.. 들었던 판은 지나 바카우어가 피아노를 맡고 조지 웰던이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의 연주가 담겨 있는 판이다.. 데이터가 없어서 확인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오래된 녹음 같고.. 스테레오이긴 한데 소리두 좀 딱딱하다는 느낌.. 머 그런데 그건 아무래도 좋고 이 판을 굳이 꺼내서 들은건 지나 바카우어가 연주하는 피아노가 장난 아니기 때문이다.. 졸라 낭만적이면서 스케일 작살나는 그니깐 요즘 꼬꼬마들 한테서는 느낄 수 없는 사이다 맛 나는 연주.. 머 그렇다.. 이 누님은 꽤나 이채로운 경력이 있는데..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인이고.. 어머니는 이태리인인데.. 태어나기는 아테네에서 태어났고 유학은 파리에서 했으며 황동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조낸 코스모폴리탄적인 분이시다.. 글구 2차 대전 당시에는 연합군을 위한 콘서트를 600회나 열었다고 하니 어지간히 정치적으로 편향이 되어있던 분이 아니었던가 싶다.. -_-;;
암튼 각설하구.. 음악으로 돌아오자면.. 사실 이 곡은 대개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과 손 붙잡구 한 판에 실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둘이 조낸 친하기 때문이다.. -_-ㅋ 조성 역시 a 단조로 동일한데다 시작하는 부분에서 피아노가 한따까리 하는 부분하며 전체적인 스타일 면에서도 상당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단다.. 이는 그리그가 이 곡을 작곡했던 1868년 그니깐 스물 다섯살 때보다 딱 십년 전인 열 다섯살 꼬꼬미 시절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클라라 슈만이 연주하던 그 부군의 협주곡 연주회를 보구서는 조낸 캐감동을 먹었고.. 또한 슈만의 칭구였던 에른스트 페르디난드 벤젤에게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받은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그는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상당히 잘 나가고 있었던 것 같은데.. 1867년 그는 양가의 조낸 끈질겼던 반대를 이겨 내고서는 마침내 사촌이었던 니나 하게룹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러한 가족들 간의 균열은 이듬해 4월 딸내미가 태어나면서 그럭저럭 회복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음악가로서도 시립 관현악단의 지휘자를 맡고 음악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등 나름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단다.. 그치만 우끼는건 당시 노르웨이의 청중들은 조낸 심각한 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리그 역시 자신의 작품이 청중들에게 받아들여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곤 했다.. 나중에 그리그가 썼던 기록에 의하면 아 ㅅㅂ 이거뜰은 포기했음.. 음악은 걍 집에서만 연주할거임.. 머 이랬다고도 하는데 코펜하겐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음악에 조낸 관심과 열정이 넘쳤고 특히나 스칸디나비아 음악에 대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런고로 그의 피아노 협주곡의 초연은 그의 조국인 노르웨이가 아닌 코펜하겐에서 행해졌다는 것.. 초연은 1869년 4월 3일이었는데 에드문트 노이페르트라는 양반의 연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원래는 그리그가 솔로이스트로 내정되어 있었는데 오슬로에서의 지휘자 업무 때문에 참석을 할 수 없었다는데.. 초연은 졸라 싸가지 엄는 비평가 색히들이 우글거렸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나서 어쨌거나 결국 오슬로에서도 그 해 8월 7일에 초연을 할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청중들의 격한 반응으로 조낸 절찬리에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해피 엔딩 되겠다.. 1870년 그리그가 로마를 방문했을 때는 리스트로부터 격찬을 받고 여러가지 조언을 받기도 했다.. 이후에 그리그는 이 곡을 최소한 일곱 번에 걸쳐서 수정을 했는데 주로 사소한 부분이기는 했지만 나중에 초판과 비교해 보면 약 300군데에 걸친 차이점이 나타난다고 한다.. 최종본은 그리그가 죽기 몇 주 전에서야 완성이 되었다니 이 곡은 그리그가 거의 평생 동안 개칠을 해 온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듯.. -_-;; 재밌는 것은 이 곡이 역사상 첨으로 레코딩 된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점인데.. 1909년 박하우스의 연주였다고 한다.. 요즘은 1868년의 오리지널 버전의 연주가 녹음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그는 1882년과 1883년에 걸쳐서 그의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의 스케치를 했다고 하는데 결국 완성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곡은 워낙에 흔하게 들을 수 있는데다 머 걍 들음 그대로 와서 귀에 박혀 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_-;; 사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조성이 비록 단조이기는 하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그니깐 독일적이랄까 하는 시커무리 컴컴한 어두움이 아닌 그보다는 훨씬 무게감이 덜한 푸르스름한 어두움이 느껴진다는 것.. 연결시키는 링크는 루빈슈타인 영감님과 프레빈 꼬꼬마 시절의 70년대 연주.. 루빈슈타인 옹께서 이 연주를 했던 때가 거의 90살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영감님은 백내장으로 인해 거의 실명 상태였다고 한다.. 그에게 앞이 잘 안 보이시는데 어케 연주를 하심니꽈?? 라는 질문을 했더니.. 아니 피아노는 항상 여든 여덟개의 건반을 가지고 있고.. 악보 역시 음표가 변하는 것도 아닌데다.. 내가 85년 동안 피아노를 두들겼던 기억이 걍 남아 있는데 머가 문제임미?? 라는 대답을 하셨단다.. 영감님.. 진짜 대단하십니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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