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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2번..

by rickas 2013. 6. 1.

 

 

멘델스존은 졸라 비범한 잉간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당대에는 구시대의 모짜르트를 찜쪄먹을 정도의 조숙성과 천재성을 보여준 듯한데.. 예전의 그런 난리 굿에 비하면 요즘은 걍 그저 그런 작곡가 중의 하나가 된 듯하다.. 그러나 이 양반의 짧았던 생애를 생각하면.. 그리고 작품들이 쓰여졌던 시절의 나이를 생각하면 진짜루 대단한 양반임은 틀림없다는 생각.. 특히나 늘상 흔하게 듣는 음악들이 아닌.. 그니깐 그의 바협이라던가.. 아님 교향곡 3번이나 4번이라던가.. 머 그런 곡들 말구 그리 자주 들리지는 않는 그런 곡들 중에 증말 보석같은 곡들이 박혀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군 하는데.. 오늘 올리는 곡도 그런 멘델스존의 보석 같은 곡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 그니깐 그것두 벌써 십 년두 훨씬 전 이야긴데.. 지방에서 몇 년 혼자서 내려가 있던 적이 있었긔..  당시 평일의 낙은 오로지 퇴근하구 나서 기숙사 내 방에서 불 꺼 놓구 듣는 음악이었는데.. 그 때 린의 쪼끄만 스피커인 칸의 위치를 제대루 잡아 놓구나서 흘러 나오던 소리가 너무나도 좋게 들렸던 기억이 아직두 생생하다.. 당시에 앰프니 CD 플레이어니 하는 것들은 대개 개허접들이었는데.. 물론 내 생각엔 나으 막귀로는 거기다 마크에 와디아를 쳐 갖다 붙여도 칸에서 나오던 소리는 마찬가지였을거라 생각.. -_-;; 하여간 당시에 음악을 무쟈게 많이 들었는데.. 아마도 대딩 시절 이후 평상 시에 그 정도로 많이 들었던 적은 그 시절이 유일한 듯.. 당시까지 CD라는 매체와는 별루 안 친했었는데 그넘으 편의성땜에 그 때는 CD들을 사서 들었긔.. 그 촌구석까지 아날로그 하겠답시구 턴테이블 장만하구 포노 앰프 들여 놓구 하는 짓거리가 너무 덕후질 같아서리 걍 조촐하게 CD로 듣자는 생각이었는데.. 아마도 나중에 다시 올라오지 않고 조금만 더 있었으면 덕후질을 했을 듯.. 그때는 지금 기억에 주로 고음악이나 아니면 메이저 작곡가인데도 불구하고 잘 안 듣던 작품들을 주로 사서 들었었고.. 그 당시 감탄을 하면서 들었던 곡 중에 바로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이 있었다.. 1번과 2번이 수록된 제르킨 영감님과 오먼디 할배의 협연 판이었는데.. 당시까정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무시칸 나는 신나라에 CD 보러 나갔다가 신기해서 냉큼 집어 들었긔.. 당시에 듣고서는 아니 이런 조낸 머찐 곡을 왜 여태까정 몰랐을까 하는 생각두 하구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곡이 맘에 들다 보니 당연히 LP를 구하게 되었고.. 이넘 저넘 사재끼긴 했지만 당시에 젤 첨 듣고 뻑갔던 CD가 제르킨 영감님 연주이기에 그 판을 올려 놓는다..


일반적으로 멘델스존은 작곡을 졸라 초스피드로 했다고 한다.. 머 이런게 조낸 비범하거나 그에 더해 천재 스퇄 잉간들의 특징인 것 같다만.. 보통 별 어려움 없이 쓱쓱 써내려 갔던 것에 비하면 여기 올린  2번 협주곡은 공을 잔뜩 들이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애초 곡의 기원이 되는 지점은 멘델스존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가 신혼 시절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첨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멘델스존의 어려움은 새로운 작품을 이전 것에 비해 월등하게 훌륭한 곡으로 만들겠다는 본인의 의지에 많이 영향을 받았을 거란다.. 물론 곡은 실제로 1837년 버밍엄 페스티벌에서의 초연을 위해 졸라 빠른 속도로 쓰여졌고.. 이 페스티벌에서는 그의 오라토리오인 바울도 함께 공연되었다고 한다.. 우끼는 것은 이 곡이 그가 결혼한 직후에 작곡된 것이라서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졸라 행복한 감정을 듬뿍 담은 닥살 크리 돋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것은 함정.. 곡은 완존 우울하다.. 왜일까.. 내가 머 멘델스존의 맘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알 수 없지만.. 그가 느끼고 사고하는 지평은 아마도 당시의 결혼이라는 어찌보면 1회성의 이벤트를 훨씬 뛰어 넘은데 있지 않았나 싶다.. 그는 실제로 이래저래 어려서부터 유복한 생활을 했고.. 당시의 일반적인 음악가들이 오만 지지궁상을 떨었던 데 비해 성인이 되어서도 잘 나갔지만.. 반면에 다른 이들의 음악을 되살리는 데에는 상당한 애를 먹었던 듯하다.. 특히나 슈베르트의 9번 교향곡 같은 경우는 마지막 악장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머 이런 캐허접의 마무리가 있냐구 낄낄대면서 개판을 쳤다고 하던데.. 이 양반의 고상한 특성 상 이런 개호로잡넘으 색퀴덜을 봤나.. 하면서 난리 부르스를 떨지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대고 앓았다고 한다.. 멘델스존은 그 곡의 위대함을 알아차렸건만.. 동 시대의 걍 무지랭이 색퀴덜은 그런 걸 몰랐던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자기 누님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자신까지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았던 그런 유리 멘탈을 가진 이 양반의 성정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간에 곡은 조낸 비장함 내지는 우울함이 전반적인 정서인데.. 그 와중에 한가운데 자리 잡은 2악장은 마치 무식하게 험준한 봉우리 사이에 보일 듯 말 듯 존재하는 꽃이 만발한 자그마한 평원 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2악장은 우아하게 이쁘다.. 멘델스존의 심미안이라는 것이 그저 달콤한 꿀울 쳐발른 듯한 오글거림이 아닌 조낸 높은 경지에 존재한다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악장이 아닐 수 음따..


어디선가 보니 멘델스존은 죽고 나서 나중에 나치 색퀴덜이 염병질을 떨어댈 때 무쟈게 수난을 당했던 듯하다.. 일례로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앞에 있던 그의 동상이 끌어 내려져서 녹여지고 그랬단다.. 하여간에 예나 지금이나 무식한 색퀴덜은 답이 음따.. 특히나 사상과 이념을 앞세우는 것들 치구 쓰레기 색퀴덜이 아닌거뜨리 없드라.. 그치만 멘델스존은 비록 유태인이긴 했지만.. 응.. 머라구.. -_-ㅋ 졸라 사려 깊고 겸손한 양반이었던 듯하다.. 이 양반은 당시로서는 졸라 개깜놀을 할 일.. 암보로 연주를 했다는데.. 피아노 3중주를 연주하던 어느 연주회에서 피아노를 맡았는데 하필 피아노 악보만 없더란다.. 암보로도 연주를 할 수 있었지만 다른 양반들이 이 색퀴 졸나 잘난척 하기는.. 이라는 오해를 살까봐 걍 아무책이나 올려 놓구서는 악보인 척 연주를 했다는 야그가 있다.. 머 이게 나쁘게 보자면 잔머리를 굴린 처세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꼭 그케 삐딱하게만 볼 필요가 있겠냐.. 이거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겸손.. 그런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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