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
오늘은 정말 간만에 들었던 곡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실려 있는 판을 올려본다.. 머 내가 이 양반의 피아노 협주곡을 첨부터 좋아라 했으면 아마도 진작에 포스팅을 했었겠지만.. 이런 음악은 머랄까.. 리스트가 들음 졸라 열받겠지만 나한테는 걍 계륵같은 존재라.. 아예 안 듣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찾아서 듣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어쩌다 생각나면 한 번 들어주는 어정쩡한 포지션에 있는 곡이라는 얘기다.. 그니깐 내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곡이라는 얘긴데.. 이는 예전에 음악동아에서 하도 게거품을 물면서 폭풍 칭송을 해 놓았던 연주와 그 연주에 대한 환상으로 판을 샀다가 곡 자체가 별로 흥미가 안 땡겨서 두어 번 듣고 내깔겨 놓았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당시 음악동아에서 졸라 선언적으로 이 곡의 결정반이라고 자신있게 떠들어 댔던 판.. 바로 리히터와 콘드라신의 협연이 녹음된 필립스 판이었는데.. 마침 고맙게도 이 판은 라이센스로 쉽게 구할 수 있는 판이어서 낼름 사서 듣군 흥미를 상실했던 기억이 있다.. 이는 아마도 리스트가 이 곡에 덧붙였다는 얘기인 "니덜은 아무도 이해 못할 걸.. ㅎㅎ" 라는 얘기를 실제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나도 잘 이해가 안 가더라고.. ㅋ 머 이해고 머고를 떠나서 이 곡은 넘 오바해서 후까시를 잡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리 그게 나한테는 별로 안 맞았던 것이었는데.. 머 이제 나이도 들고보니 후까시를 잡건 염병질을 하건 걍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심정으로 이해하고 들어줄만하다는.. 어쨌거나 오늘은 맨날 역사적 명반이라고 개나 걸이나 떠들어대는 리히터의 판은 좀 식상하니깐.. 미쿡 피아니스트인 이반 데이비스가 영국의 지휘자인 에드워드 다운스의 로열 필하모닉과 협연한 판으로다 올려본다.. 곡 자체가 스탈 자체가 그래서 그렇겠지만 이들의 연주 역시 강려크하면서도 꿀바른 듯한 달콤함이 뚝뚝 묻어나는 연주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최종적으로 완성되기까지 25년에 걸친 시간이 필요했다.. 그야말로 작곡, 재작곡, 수정의 연속으로 점철된 작품으로 이는 마치 브람스가 1번 교향곡을 세상에 내어 놓기 위해 겪었던 인고의 시간을 연상시키는 곡이라 하겠다.. 리스트는 1830년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오프닝 주제를 적었고 1832년 12월 12일자 편지에서 반주가 아직 작성되지 않은 새로운 곡에 대한 계획이 있음을 얘기했다고 한다.. 이는 고전 및 초기 낭만주의 양식의 일반적인 협주곡인 표준 3악장 형식으로 1834년에 만들어졌지만 이 초기 버전은 한번도 연주되지 않았다.. 이후 이 초기 버전의 주요 주제를 유지하면서 작품을 완전히 다시 쓴 1839년 버전은 단일 악장으로 이루어졌는데 리스트는 이를 출판하지 않고 따로 보관만 해 두었다.. 이는 꽤나 급진적인 양식이었는데 구조적으로는 하나의 악장이지만 4개의 악장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기 보다는 피날레에서 이전 악장의 아이디어를 요약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이 버전의 협주곡도 연주되지 않았고.. 리스트는 1849년, 1853년, 1855년에 이 협주곡을 계속해서 수정하여 거의 25년만에 최종적인 형태에 도달하였다.. 초연은 베를리오즈의 지휘와 본인의 피아노로 바이마르에서 이루어졌다.. 사실 리스트가 이렇게 이 작품에 오랜 기간 동안 계속 개칠을 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었던 것은 자신의 혁신적인 협주곡이 이해력이 부족한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두려워 했기 때문일 수 있단다.. 그래서 리스트가 자신의 악보에 덧붙였다는 얘기도 있고.. 그의 사위인 한스 폰 뷜로가 붙였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거 하나도 이해 못하겠네요.. 하하.." 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한슬릭 같은 양반은 이 협주곡을 가리켜서 스케르초 부분에서 솔리스트 방식으로 조명되는 트라이앵글에 허거덕 했던 나머지 "트라이앵글 협주곡" 이라고 빈정댔고.. 심지어는 "취미의 상실" 이라고 비난했단다.. 머 그치만 그렇게 평론가들이 개소리를 지껄여 댔음에도 불구하고.. 이 협주곡은 대담하고 강력하면서 혁신적인 작품으로서 오늘날까지 잘 살아 남았고 즐겨 연주되는 곡이 되었다..
연주자들의 정보를 뒤져보다 보니 지휘자인 에드워드 다운스의 얘기가 눈에 띄는 것이 있더라.. 이 양반이 말년에 청각과 시각을 모두 잃게 되는 지경이 되었던 데다가 본인을 수발하던 와이프가 말기 암에 걸려서리.. 와이프의 의지대로 스위스의 조력 자살 병원에서 부부 동반으로 자살을 했다는 얘기였다.. 당시에 영국에서도 상당히 크게 다루어졌던 사건인 것 같은데.. 사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깔끔하게 세상과 단절할 수 있는 선택을 본인이 본인의 의지로 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합리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연결시키는 링크는 아르헤리치 할매가 젊었던 시절.. 그니깐 사십여년 전이었던 1981년 도흐나니가 지휘하는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와 함께 한 연주 실황이다.. 진짜 그야말로 어매이징한 연주를 들려준다.. 이런 연주를 보다 보면 왠지 과거에 대한 아련함이랄까 머 그런 느낌이 드는데.. 그런거 보면 나두 이제 나이가 졸라 꼰대급으로 먹었나부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