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예전엔 나 역시 연주자들에 대한 호불호가 꽤 있는 편이었다.. 근데 그게 나이를 먹음서 점차 희미해졌고.. 지금은 그런거 별로 없다.. 그냥 곡이 좋고 연주자도 잘 알려져 있는 양반이라면 그리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듣게 됐다.. 그치만 내가 갖구 있는 LP들의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연주자에 대한 호불호가 있던 시절 것들이라 어쩔 수 없이 예전 취향이 반영되었다는게 함정인데.. 간혹가다 요즘 심심할 때 줍줍하는 중고 판들은 그런거 없다.. 내가 이렇게 된데는 각 연주자들마다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일생동안 이룩해 놓은.. 물론 안 그런 것들도 있겠지만.. 그런 유산들을 함부로 어줍잖은 잣대를 가지고 재단해 버리는게 좀 덜 떨어진 유치한 짓거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취향이라는 것이야 당연히 있지만.. 예를 들어 심벌즈까지 동원되는 비첨의 메시아를 듣고서는 이거 완전 미친거 아냐.. 라는 식으로 극혐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님의 취향이고.. 글타고 비첨의 메시아를 완전 쓰레기니깐 듣지 말라구 게시판에다 싸지르는 것은 넘 치기가 뿜뿜하는 병신 짓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나같은 무식쟁이가 머라고 전문 연주자들이 해석해 놓은 결과물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떠들면서 이건 이래서 훌륭하고 저건 저래서 개떡이라는 심판관 역할을 하겠냐는 생각이 들면서부터였는데.. 예전에 어느 음악잡지에서 아르농쿠르의 해석을.. 아마도 바하의 B단조 미사 음반 비교평이었던 것 같다.. 어떤 듣보잡 평론가가 완전 쓰레기 취급한 것을 읽구서는..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양반은 아르농쿠르가 음악 해석의 기본도 안 되어 있다는 식으로 깠다.. 아니 ㅅㅂ 이 새끼는 아르농쿠르보다 훨씬 많이 배워서 더 제대로 된 지식과 역량을 갖구 있는 것일까.. 하는 말도 안되는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그때까지 내가 잘 일고 꾸준히 세뇌 되었던 이 순열 슨상님의 글도 한수 접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는.. 암튼 그 후로는 그저 내 취향 상 별로 안 내키는 연주자들의 연주에 대한 평가를 하는 덜 떨어진 짓은 안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런 양반들의 연주도 별다른 편견없이 곧잘 듣게 되었다.. 그래서리 이 순열 슨상님이 악평 중에 악평을 쏟아내었던 하이페츠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도 간혹 생각나면 꺼내 듣는 판이 되었고.. 이 연주는 이것대로 속이 션해지는 청량감을 느낄 수 있기땜에 나름의 재미가 있다.. 요즘은 그래서 누구누구의 판이 최고의 명반이라는 둥.. 이것만 있음 된다는 둥.. 최고의 연주라는 둥.. 같은 개소리들을 보면 걍 헛웃음이 나오구 만다..
사설이 졸라 길었는데.. 오늘 올리는 판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 실려 있는 판이다.. 오이스트라흐와 바우어의 연주.. 사실 오이스트라흐 얘기를 하려다 보니 하이페츠 생각이 났고.. 그러다 보니 하이페츠에 대한 예전의 기억들이 떠올라서 생각이 꼬리를 물었기에 사설이 늘어진 것.. 의식의 흐름이 졸라 지 멋대루인게 아직도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는 증거인 듯.. -_-;; 오이스트라흐의 연주에 대해서야 워낙에 예전부터 호평만 있어왔던 고로 나 역시 젊었던 시절부터 아무런 의심없이 그의 연주를 즐겨 들었지만.. 그와 소위 20세기 바이올린 계의 쌍벽을 이루었다던 하이페츠에 대해서는 나으 선호도 자체가 롤러코스터 타듯이 왔다리 갔다리를 했던지라.. 자연스레 오이스트라흐라고 하면 하이페츠까지 덤으로 생각이 나는 것이다.. 암튼 오늘 올리는 판은 오이스트라흐가 쥔공이므로 하이페츠 얘기는 나중에 하고..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를 들어보면 이 판에서도 그런 느낌이 팍 꽂히는데.. 나로서는 그 천변만화하는 듯한 풍부한 표정과 절정의 내공이 응축되어 있는 듯한 에너지감이 핵심적 느낌이라 하겠다.. 이 양반 연주를 듣다 보면 다른 바이올린 연주 특히나 요즘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애덜은 가라.. -_-ㅋ 그런 느낌이랄까.. 머 그렇다.. 이 판의 연주는 오이스트라흐가 61세이던 70년 5월 비엔나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니 그의 최만년 연주에 해당되는 셈이다.. 멜로디아의 서울음반 라이센스 레코딩인데 대딩 때 서울음반이 축복을 내렸던 시절에 샀던 음반이다.. 이 판하고 오이스트라흐 환갑 기념 음악회에서 리히터와 연주했던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은 당시 서울음반 덕에 구하기 힘든 판 라이센스로 쉽게 구해서 정말 잘 들었던 판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당시 서울음반 관계자께 심심한 감사를.. -_-;; 잘 알려져 있다시피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자신의 가곡 비의 노래에서 3악장 주제를 인용했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비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브람스는 워낙에 자기비판적인 양반이었고.. 그래서리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바이올린 소나타 역시 46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야 1번을 세상에 내어 놓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 적어도 어디서는 3개라고 하기도 하고 다른 데서는 4개, 심지어는 5개라고 하기도 한다만.. 암튼 그런 바이올린 소나타 전작들을 썼지만 그 특유의 자기검열을 적용해서리 걍 폐기해 버렸다고 한다.. 이 작품은 브람스 최초의 바이올린 소나타로서 원래의 제목이었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라는 제목에 걸맞게 두 악기의 동등한 파트너십을 의미있게 표현했다고 하는데.. 어느 사이트의 해설에는 우아한 부드러움, 고상함, 폭발적인 강렬함, 그리고 풍부한 순환적 상호 연결과 함께 신성한 안식으로 가득 차 있는 마법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해 놓았다.. 사실 브람스의 2번이나 3번 소나타에 비함 좀 더 서정적인 느낌이 강한데 2악장의 우수에 찬 듯한 아련한 멜로디를 따라가다 보면 이 브람스라는 양반이 얼마나 금가기 쉬운 유리잔 같은 감수성을 갖고 있던 양반인지 그 느낌이 온다는.. 이 곡 역시 브람스와 요아힘 그리고 클라라가 얽혀 있는 얘기가 있는데.. 어느 사이트의 글에 의하면.. 슈만이 살아 있었음 80번째 생일 그니깐 클라라가 70세 시절에 요아힘이 프랑크푸르트의 클라라네 집을 방문하여 함께 이 소나타를 연주했고..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이 작품의 마지막 악장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클라라가 브람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편지를 받아 본 브람스 입장에서는 참 먹먹했을 듯..
연결시키는 링크는 율리아 피셔의 21년 11월 연주되겠다.. 오이스트라흐 만큼의 넓대대한 스케일은 아니지만 무척 우아한 노래와 같은 연주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