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얼마 전에 청소하느라고 집에 있는 DVD 타이틀을 정리하다 보니 웬 듣보잡 연주 영상이 있길래 얼떨결에 보게 된 일이 있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말러의 교향곡 1번이 함께 실려 있는 DVD 였는데 마르가리타 회헨리더라는 피아니스트와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연주더라.. 사실 베슨상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작품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하나같이 그 특유의 남성적이라고 쓰고 마초적이라고 읽는 생명력과 열기가 느껴지게 마련인데.. 이 연주 영상은 머라고 해야 하나.. 조금은 절제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현대적이고 깔끔한 인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시대의 베토벤 하면 일단 스케일 장대하게 질러대고 보는 그런 시원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좀 아쉽기도 하더라.. 그치만 이 연주도 무쟈게 좋다.. 특히 2악장의 연주는 오금이 저린다.. -_-;; 암튼 그래서리 뭔가 좀 아쉬움이 남는 김에 이 곡을 가장 마초적으로 뻥튀기 해 줄 수 있는 연주가 뭐가 있을까 찾아 보다 생각난 연주를 오늘 올려본다.. 클렘페러 영감님과 바렌보임의 EMI 전집에 실려 있는 연주 되겠다.. 판들을 훑어 보다 보니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베슨상의 피아노 협주곡 전집을 일케 사제꼈는지 모르겠는 판들도 기어 나오더라는.. 거기다 낱장까지 꼽아 보자면 꼴랑 이 다섯 곡의 피아노 협주곡에 너무 심하게 애정을 갖고 있었던건 아닐까 싶은 회의도 들더라는.. -_-ㅋ
오늘 올리는 판의 쥔공인 바렌보임과 클렘페러 영감님을 보구 있자면 이건 도대체가 할배와 손자가 함께 한 연주라는 생각이 들어서리 영 어색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이 판의 발매 연도가 1968년이니 영감님이 83세.. 젊은이가 26세.. 그치만 이 젊은이도 현재는 여든이 넘었다는 것이 함정.. -_-;; 그치만 음악으로 들어가 보면 졸라 왕고집불통의 클렘페러 영감님이 어느 정도 소위 유도리를 발휘하고 있는 듯하고.. 새카만 애녀석 뻘인 바렌보임 역시 적당히 영감님 기분을 맞춰 주고 있는 것 아닌가 싶게 둘의 호흡이 좋게 느껴진다.. 녹음도 좋고 거기다가 클렘페러 영감님 시절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이 판에서는 레그가 손털고 나간 다음 신규 사명을 제정했던 시절인 고로 뉴 필하모니아다.. 얘들 특유의 투명함은 투명함인데 뭔가 졸라 밀도가 높은 듯한 그런 투명함.. 이게 말이 되나.. -_-;; 거기다가 마초적으로 질러대는 금관이 더해져서 뭔가 열기는 열기인데 혈기방장한 열기가 아니라 뭔가 가오가 있는 열기가 스멀스멀 끓어 오르는 느낌이 든다.. 이 전집에는 슈피겔지의 주필이었던 클라우스 움바흐.. 이 양반도 독설가로 음악 평론에서 한가닥 했던 모양이다.. 이 사람이 쓴 클렘페러와 바렌보임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뭐 좀 재미있을라나 해서 읽어 보았는데 머 그리 딱히 재미는 없더라.. ㅋ 글의 부제는 사제와 대담한 인간이라 붙어 있는데 클렘페러와 바렌보임의 대조적인 측면과 공통적인 측면을 자기 나름대로 재미있게 풀어 보려고 노력한 것 같다.. 이 양반 표현을 빌리자면 이 판에서는 노인네 밑에서 20대가 놀구 있다는 것이다.. 글의 내용을 대충 옮겨보자면.. 1942년 태어난 바렌보임은 데일리 텔레그라프에서 전율을 불러 일으키는 음악적 재능이라는 평을 받았고.. 1885년 태어난 클렘페러는 뮌헨의 한 석간 신문에서 구약성서의 위엄을 지닌 음악의 모세로 신비화 되었다.. 젊은 클렘페러는 수줍어하고 회의적이면서 신중한 성격이었다.. 특히나 요란하게 홍보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졸라 의미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기자들의 호기심이 그의 신경을 거스른다고 생각한다.. 클렘페러의 경력을 돌이켜 보면 그가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한 것이 상당히 늦은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그치만 반면에 젊은 바렌보임은 영리하고 수선스럽다.. 그는 15세 때 대중 앞에서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했고 20대에는 베토벤의 소나타 32곡 전체와 협주곡,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브람스 등으로 호기심 많은 스테레오 청중을 확보했다.. 바렌보임은 그의 예술적 재능과 클렘페러의 격려에 힘입어 레코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작품 중 하나인 이 프로덕션의 제안을 받게 되었다.. 클렘페러는 이 프로덕션에서 자신의 동반자로 완성된 인물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의 입장을 고수해 온 젊고 재능있는 뛰어난 피아니스트를 제안했고.. 이는 바렌보임에게 있어서 클렘페러는 젊은 시절 누려보지 못했던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었다.. 사실 여기는 둘 다 유대인이라는 공통점과 이를 적극 활용했다는 면도 작용했다.. 그치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는데.. 클렘페러는 젊은 시절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잉간이었다.. 그는 한때 도발적이고 객관적인 퍼포먼스로 청중을 놀라게 하곤 했는데 베를린에 있는 크롤 오페라를 맡고 있던 시절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대담한 무대가 되었다.. 클렘페러는 항상 전통에 대한 의심이 있었고 클렘페러와 바렌보임은 둘 다 일상에 대한 저항과 항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물론 둘 다 피아노로 성장했는데 한 사람은 지휘대로 갔고 다른 한 사람은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라 하겠다.. 사실 클렘페러의 피아노 솜씨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는데.. 클렘페러가 말러에게 함부르크 극장에 추천을 요청했을 때 말러는 처음에 이를 거절하면서 넌 이미 뛰어난 피아니스트인데 뭐하러 지휘자가 되려고 하느냐라고 했단다.. 바렌보임은 이 다섯 개의 협주곡 녹음을 마치고 나서 클렘페러는 느린 템포를 선호한 반면 자신은 빠른 템포를 원했지만 둘은 상당히 조화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고.. 클렘페러가 자신에게 수정을 요청한 적은 딱 두 번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치만 사실은 본인이 클렘페러를 위해 졸라 느리게 연주했다고 실토했다.. 머 대충 이런 이야기로 쓰여진 글이다.. 글구 보니 오늘이 클렘페러 영감님 생일이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원래 포르테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실은 오케스트라의 구성이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를 위한 대협주곡이었다.. 협주곡의 초고는 17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3년 후 베토벤은 비엔나에서 현재의 버전을 완성했고 이는 아마도 손실된 원본 원고의 수정 버전일 것으로 추정된단다.. 이 협주곡은 1801년 비엔나에서 작품 번호 15번으로 출판되었지만 이는 부분적인 출판이었고.. 전 악보의 초판은 1834년 말 프랑크푸르트에서 출판되었다.. 원본 원고에서는 솔로 파트가 불완전했는데 베토벤은 초판에서 이를 모두 완성했다.. 베토벤 자신이 1798년 프라하에서 솔리스트로 이 작품을 초연했고.. 1800년 4월 비엔나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연주되었다.. 곡은 모짜르트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물론 그런 면도 있고 비록 초창기의 덜 영근 느낌이 나는 면도 있지만 베토벤 특유의 흥분과 활기 그리고 베토벤스런 우아함.. 그냥 일반적인 우아함이 아니라 머라 해야하나.. 마초적인 우아함이랄까.. -_-;; 하여간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곡이다.. 곡은 베토벤의 제자였던 바르바라 오데스칼키 후작 부인에게 헌정되었다.. 연결시키는 링크는 이번에는 바렌보임이 지휘자로 나서고 아르헤리치가 피아노를 맡은 연주 되겠다.. 2014년 이 둘의 고향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실황이다.. 거의 십 년 전인데도 둘 다 많이 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