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 피아노 협주곡 3번..
판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보면 가끔 졸라 낯선 판을 발견하는 일이 있다.. 아마도 예전에 언제이던가 구매할 당시에는 흥미가 땡겨서 일단 사 놓구서는 이내 관심이 식으면서 까먹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일거다.. 어쨌거나 오늘도 세종대왕 마마 덕분에 거기다 대체 휴일이라는 훌륭한 제도 덕분에 하루 더 놀게된 마당에 아침부터 골방에서 조용히 판을 듣기 시작했는데.. 예전에 사놓구 걍 던져 놓았던 판 무더기가 한쪽에 몰려 있는 것을 발견하군 이판 저판 뒤적여 보게 되었다.. 대충은 기억이 나는 판들인데.. 오잉.. 이건 뭐지.. 하는 판이 나오길래 함 들어보게 되었다.. 앞면에는 요한 시몬 마이어라는 양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실려 있고.. 뒷면에는 페르디난트 리스라는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실려 있는 턴어바웃 판이다.. 간혹 가다 보면 이 턴어바웃 판에 완전 듣보잡 작곡가나 작품 아니면 연주자들의 음악이 실려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판이 그런 경우라 하겠다.. 물론 내가 졸라 과문한 탓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양반들일지도 모르나 어쨌거나 내 기준으로는 듣보라 하겠다.. 오늘 아침에 신기해서 한 번 들어 보았는데 마이어의 작품보다는 리스의 작품이 더 땡겨서리 두 번을 연속해서 듣고 말았다.. 그래서리 여기서는 주로 리스의 작품 가지고 썰을 풀어볼까 한다.. 판은 내가 턴어바웃 판을 살 때 항상 주의해서 보는게 어디 프레싱인가 하는건데.. 이 판 역시 데카 프레싱이라 머 소리는 그냥저냥 괜찮다.. 근데 오케스트라가 녹음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째 좀 빈약한 느낌이 드는데.. 함부르크 심포니와 알로이스 스프링거라는 지휘자의 연주로 이 양반 역시 듣보 되시겠다.. -_-;; 피아노는 마리아 리타우어라는 헝가리 출신의 여류 피아니스트인데..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서 리스트 음악원에서 공부했단다.. 이후에 비엔나 음악 아카데미에서 계속 공부했고 1960년에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따먹었다구 하는데 그 이후의 활동이 그리 유명세를 탈만하지는 못했던 듯하다..
곡에 관한 얘기로 돌아와서.. 페르디난트 리스는 1784년 태어나서 1838년 세상을 떠났는데.. 이 양반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명성은 대개가 작곡가라기 보다는 전기작가로서의 것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그가 쓴 베토벤의 전기에서 그 자신이 19세기의 음악에 대해 찬양을 늘어놓고 있었고 그 주변을 뒤덮고 있는 그림자 같은 영향력은 온전히 베토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리스는 베토벤의 친구이자 제자.. 거기다 비서 그리고 전기작가이기도 했는데 그보다 그 자신이 온전히 작곡가로서 남긴 작품들의 양이 상당한 양반이라 하겠다.. 그는 6개의 교향곡, 9개의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상당량의 실내악 작품들을 남겼는데 아쉽게도 이들 대부분은 잊혀진 작품이 되고 말았다.. 베토벤 자신도 리스가 자신을 너무 따라하려 한다는 얘기까지 할 정도로 리스에게 있어서 베토벤은 그만큼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리스는 본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환경이 온통 음악으로 가득차 있었단다.. 그는 다섯 살때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여덟 살에 첼로 그리고 아홉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당시는 천연두가 일부 지역에서 만연하곤 했는데 이로 인해 리스 역시 한쪽 눈을 실명하고 말았지만 그로 인해 그의 활동이 영향을 받거나 제약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사실 그보다도 그를 계속 괴롭혔던 것은 그가 서른 무렵에 영국에서 성공하기 전까지 겪었던 가난이었다.. 사실 이 양반도 행적을 쭉 훑다보면 꽤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걸로 보인다.. 그는 열여섯 살에 뮌헨을 거쳐 비엔나로 가게 되는데 베토벤의 제자가 되면서 베토벤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우끼는건 베토벤이 과연 그 정도로 친절한 잉간이었을까 싶게 리스에게는 상당한 호의를 베풀었다는 점이다.. 그는 리스에게 레슨을 하면서 종종 돈을 쥐어 주기도 했고.. 물론 상환의 의무가 없는 돈이었다.. 귀족들에게 소개시켜서 임시직으로나마 일자리를 주선해 주기도 했다.. 더구나 그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초연에서 피아노를 리스에게 맡기기도 했다고 하니 베토벤으로서는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자신의 용량 이상의 호의를 나타냈던 듯하다.. 그치만 지 버릇 개 못준다고.. -_-;; 1808년에 일자리와 관련된 오해로 인해 베토벤은 리스에게 질알질알 하면서 다투게 되었고 둘의 인연은 여기서 종을 치구 만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이 터져서 징집이 될 상황이었으나 한쪽 눈 문제로 인해 이를 면하게 되었고.. 이후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면서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을 쌓아 나갈 수 있었다.. 리스는 러시아로 연주 여행을 가는 도중에 영국 배에 나포되어 빵에서 좀 지내기도 했지만 결국 러시아 연주 여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1813년 영국으로 넘어와서 그의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영국에서 리스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당시 평론에 의하면 당대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와 차별되는 리스의 특징으로서 생생한 로맨티시즘을 꼽았다고 한다.. 영국에 있는 동안 리스는 작곡도 열심히 했고.. 더구나 결혼까지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평온하고 안정된 시절을 보냈던 셈이다.. 말년에 그는 영국에서의 명성을 뒤로 한 채 독일로 돌아와서 일련의 음악제 감독을 포함하여 성공적인 캐리어를 쌓게 되는데.. 베토벤에 관한 회고록 형태의 전기는 그가 세상을 뜨던 해에 쓰여져서 출판되었다고 한다.. 듣보 양반이다 보니 이 양반의 행적에 관한 얘기가 길게 늘어졌는데.. 그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그의 작품 중 그나마 대중적인 곡이라 한다.. 레알?? -_-;; 런던에 있을 당시 작곡되었고 클레멘티에게 헌정되었다.. 시기적으로 고전파의 끝무렵 내지는 낭만파의 시작과 비슷한 시기를 공유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곡의 인상에 대해 좀 개소리를 풀어보자면.. 가만히 듣다 보면 좀 덜 떨어진 베토벤을 쇼팽 스타일로 버무려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_-;; 1악장부터 뭔가 투쟁적인 1주제와 부드럽고 상냥한 2주제가 대비되어 나타나는데.. 머 베토벤까지는 아니더라도 리스가 소재를 어떻게 다듬어 나가는지에 대한 솜씨에서 베토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난 잘 모르겠다.. 걍 좀 전투적인 쇼팽 같어.. -_-ㅋ
어차피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이니 만큼 연주 역시 걍 듣보들의 연주로 링크를 걸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