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 로마 교향곡..
비제가 서른 여섯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졸했을 때는 카르멘의 첫 번째 공연이 망한 후 딱 3개월이 지나서였다.. 근데 이 소심쟁이 비제는 자신도 속으로는 무척이나 카르멘의 성공을 원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오페라가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초연에서의 폭망 이후 몇 년이 지나면서 1875년 초연 당시의 평은 완전히 180도 달라지게 된다..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과 미쿡에서의 성공적인 공연이 이어지면서 관객의 반응은 이 작품에 대한 적대적 평가에서 그 고유의 독창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화되었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자 당시 카르멘을 졸라 경멸하면서 개무시하던 파리의 평론가 새끼들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180도 태세 전환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이 작품을 칭찬하느라 아주 질알을 떨었다고 한다.. 얍실맞은 새끼들.. 물론 그 이후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비제의 카르멘은 구노의 파우스트와 더불어 전 시대를 걸쳐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짱인 무대 작품이 되었고.. 오페라의 "오" 짜도 모르는 수많은 잉간들도 아는 작품이 되었다.. 사실 카르멘 뿐만 아니라 진주조개잡이, 아름다운 페르트의 처녀, 툴레 왕의 컵 등의 오페라 작품을 볼 때 비제는 뛰어난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되고 또한 그렇게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가 그렇게 이른 나이에 죽지 않고 더 오래 살았더라면 엄청난 업적을 남겼을 것으로 누구나 추정할만하단다.. 그치만 이렇게 종국에 가서 얻게된 카르멘의 명성과 영광은 비제의 다른 장르에서의 재능과 솜씨를 어느 정도 감춰버렸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친한 친구였던 생상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비제보다 세 살이 위였던 그는 비제에게 최대한 형제와 같은 우애를 베풀었다고 한다.. 당시 이 젊은 두 작곡가는 구노의 비호 아래 나이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편곡하거나 반주 등을 하면서 생활을 했고.. 당시 비제는 비록 자신이 발을 내밀만한 공간이 아직은 쥐뿔도 없었지만서도 자신의 운명이 극장의 무대 위에 놓여 있음을 확신했다고 한다.. 생상스는 당시 비제에게 "야 ㅅㅂ 저 새끼들이 우리에게 극장을 순순히 내 줄거 같지 않어.. 차라리 콘서트 홀로 째는게 낫지 않겠냐.." 라고 얘기를 하면 비제는 "즐~ 너야 그렇겠지.. 난 교향곡도 못 만들었고.. 나한텐 오로지 극장밖에 없어.. 난 극장 없이는 암것두 못 해.. ㅅㅂ" 이라고 했다 한다.. 그러면 생상스가 듣고서는 "야 이 새끼야.. 모름지기 졸라 제대로 된 음악가라면 모든 장르에 능숙해야지.. 글케 편식을 쳐하면 되겠냐.." 라고 비제를 타일렀다고 한다.. 결국 생상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은 비제의 두 작품으로 증명이 되었는데.. 그 증거가 바로 비제의 교향곡 C 장조와 로마 교향곡이 되겠다..
비제의 교향곡 C 장조가 그의 나이 열 일곱살이던 1855년 모짜르트 스탈의 조숙함으로 한 달여만에 완성된 작품인데 비해 다른 작품인 로마는 11년여에 걸친 땜빵과 수정의 산물이었다.. 이 작품은 원래 1860년 이탈리안 교향곡으로 구상되었는데.. 비제는 이 작품을 뭔가 아쉬움과 애정을 담아서 "나의 교향곡" 이라 불렀다 한다.. 비제가 로마 대상을 수상했던 해가 1857년이고 그 부상으로 로마에 3년 동안 장학생으로 유학을 갔다 왔으니 아마도 이 작품은 그 당시의 기억을 담은 작품으로 구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악장은 1악장이 로마, 2악장 안단테가 베니스, 3악장 스케르초가 플로렌스, 4악장 피날레가 나폴리였다.. 하.. 시바.. 다시 놀러 가고 싶은 동네들이네.. 망할넘의 코로나.. 이 구상은 1866년 개정되었고.. 1868년 여름에는 1악장을 완전히 다시 개작을 하면서 안단테 악장도 상당 부분 수정되었다.. 1869년 2월에는 스케르초 악장이 생략된 채 3개의 악장만으로 이 이탈리안 교향곡이 공연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의 명칭은 "환상 교향곡, 로마의 추억" 이었다.. 이러한 제목과 각 악장마다 붙어있는 상세한 머릿글은 아마도 당시의 지휘자였던 줄스 파스들루가 급하게 갖다 붙인 것이라고 추정된단다.. 이 초연은 관객들의 반응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대부분 무시로 일관했다.. 아마도 비제가 당시 프랑스 언론의 취향이나 이익에 그리 부합되지 않는 작곡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여간 이 새끼들은.. -_-ㅋ 이러한 상황에 대해 비제는 졸라 실망을 했고.. 그래서 1871년 세 번째 개정을 하게 되는데 아쉽게도 일케 최종적으로 개정된 작품은 비제가 죽고 나서 5년이 지난 1880년이 될 때까지 다시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올려진 바로 1880년 그 해에 출판도 되는데 당시 "세 번째 콘서트 모음곡" 이라는 엉뚱한 제목이 붙었다.. 이는 아마도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1번과 2번 다음의 세 번째 모음곡이라는 의미의 명칭이 붙은 것이 아닌가 하는데.. 이 때는 각 악장에 붙어 있던 세부적인 설명까지 다 생략되고 그저 피날레의 타이틀만 카니발이라고 붙어 있었다고 한다.. 즉흥적이고 활기찬 측면에서 보자면 그의 C 장조 교향곡보다는 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표현력과 유쾌한 발랄함을 훌륭한 오케스트레이션 실력으로 버무려 놓은 젊은 천재의 훌륭한 작품이 이 교향곡이라 하겠다.. 최종적으로는 원래 구상했던 2악장과 3악장의 위치가 바뀌어서 2악장이 스케르초, 3악장이 안단테가 되었는데.. 내가 베니스를 다시 가구 싶은 맘이 굴뚝 같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안단테 악장.. 졸라 알흠답고 이 교향곡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악장이라 하겠다.. 그치만 사실 한 악장씩 곰씹어 보면 간혹 모골이 송연해지게 하는 각별한 아름다움.. 이게 천재과에 속하는 잉간들의 종특인지는 모르겠다만.. -_-;; 뭔가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그런 느낌의 뭉클한 멜로디가 흘러 나오는데 바로 이렇게 정신을 홀리게 하는 그런 작품이다.. 1악장부터 들어 보면 그냥 쏙 빠져들 수 밖에 없는데.. 혼의 합주로 뭔가 조낸 신비한 분위기로 시작하면서 목관과 금관으로 확장되고.. 이어서 나오는 현의 오금을 지리게 하는 주제는 증말 압권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_-;; 다만 각 악장마다 원래 명시되었던 도시가 있느니만큼 듣고 있음 왠지 그 도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연상 작용을 불러 일으킨다.. 방구석에 쳐박혀 있을 수밖에 없는 요즘같은 상황에서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곡이라 하겠다.. -_-ㅋ
올리는 판은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루이 프레모가 지휘한 판이다.. 비제의 C 장조 교향곡과 커플링 되어 있는 판인데.. 무척이나 활기차고 싱싱한 느낌의 선이 굵은 연주를 들려준다.. 껍닥의 그림이 졸라 머찐데.. 내가 조아라 하는 화가인 카미유 코로의 작품으로 "테베레 강변의 산탄젤로 성" 이라는 작품이다.. 하.. 그림 보니 여기두 또 가구 싶네.. 대천사 미카엘이 칼을 치켜들고 조낸 위압적으로 내려다 보고 있는 테베레 강과 베드로 대성당의 모습을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ㅅㅂ 그래서 아쉬운 김에 19년도 여름 와이프랑 놀러 갔던 천사성에서 내다 본 바깥 모습을 한 장 올린다.. 방구석에 짱박힌 채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맘을 담은 사진이랄까.. ㅋ 그리고 연결시키는 링크는 스페인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연주.. 여기서는 비제의 교향곡 2번이라 표기하고 있다.. 그것두 나름 설득력 있는 제목인 것 같다.. 난 걍 로마 교향곡이라 할란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