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돈 조반니의 회상..
아침에 판을 뒤적이다 보니 조낸 희한한 판이 한 장 나왔다.. 언제 샀던건지 기억도 안 나는 판인데.. 내가 왜 이 판을 샀을까.. 껍닥이 워낙에 연변 가무단 삘이 나게 촌빨이 날려서리 신기한 맘에 샀을까.. -_-;; 아님 내용물이 졸라 호기심을 동하게 해서 샀을까.. 아마도 둘 다인듯.. 글구 보니 예전에 리스트가 오페라에서 발췌하여 편곡한 피아노 곡이 실려 있는 판을 여기 블로그에다 포스팅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그 판도 아마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샀을거고.. 오늘 올리는 이 판 역시 동일한 심리가 발동했을 것이 분명하다.. 판의 제목은 "Operatic and Dramatic Fantasies" 라고 되어 있는데 리스트가 모짜르트, 바그너, 멘델스존, 구노의 오페라나 극음악에서 발췌한 부분을 졸라 환상곡 풍으로 편곡한 작품들을 싣고 있는 판이다.. 껍닥 디자인이 복스나 턴어바웃 판에서 간혹 나타나는 아주 오금을 지리게 만드는 포스가 있지만.. -_-ㅋ 그래도 꼴에 영국 데카에서 찍어낸 판이라 껍닥 상태도 좋고.. 소리도 좋고.. 는 개뿔.. 이거 녹음이 원래 별루 안 좋은 것 같구 그나마도 곡마다 편차가 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 판을 첨에 소장하고 들었던 잉간이 한쪽만 열씨미 들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연주는 루이스 켄트너 옹인데.. 나로서는 잘 모르는 양반이라 자료를 찾아보니 1905년 헝가리에서 태어나신 양반이다.. 여섯 살 때 부다페스트 아카데미에서 첨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열 세 살에 첫 콘서트를 열었다고 한다.. 그는 1935년 영국에 정착하게 되는데 그 이후 삼십 여년 동안을 세계 각지에서 연주 활동을 해왔고.. 그 때 현지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기사 일부를 판의 껍닥 뒷면에 실어 놓았다.. 주로 이 양반이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스탈의 뛰어난 연주자라는 평가 일색인데.. 잼있는 사실은 이 양반이 쇼팽 콩쿨에서 이보 포고렐리치의 1차 예선 통과에 항의하여 심사위원직을 내던졌다는 일화가 있다.. 이보 포고렐리치가 워낙에 독특한 스탈이라 그랬던 것 아닌가 싶은데.. 우끼는건 3차 예선에 탈락했다고 이번에는 아르헤리치가 열받아서 심사워원직을 사임했으니.. 이보 포고렐리치는 당시 콩쿨에서 두 명의 심사위원을 멀리 보내 버린 셈이다.. 난 예전에 포고렐리치의 쇼팽보담두 그의 바하 연주에 더 뿅갔었고.. 한창 젊었던 시절 이 양반이 내한했을 때 졸라 아픈 몸을 이끌구 연주회에 가서 간신히 끝까지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최근 이 양반 사진을 보니 당시의 그 꽃미남은 어디로 가고 웬 복덕방 아자씨 같은 분이.. 쿨럭.. 암튼 간에 포고렐리치가 그리 전통적인 스탈이 아니다 보니 켄트너의 반감을 사지 않았을까 싶구.. 글케 따지면 켄트너 옹은 어쩌면 꼰대 오브 꼰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두 해본다.. ㅋ
판에 실려 있는 곡은 앞면에 마치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 한편을 보는 느낌을 주는 돈 주앙의 회상.. 난 걍 돈 조반니의 회상이라고 할란다.. 암튼 이 곡으로 시작해서 바그너의 방황하는 화란인에서 물레의 합창을 편곡한 작품이 담겨 있다.. 뒷면은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에서 결혼 행진곡과 요정들의 춤을 편곡한 작품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왈츠를 편곡한 작품이 들어 있다.. 다들 원작의 선율을 충분히 살리면서 리스트 특유의 천변만화 하는 초절기교를 짬뽕시켜서 편곡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첫 빠따로 실려 있는 돈 조반니의 회상은 비록 판 상태는 좀 별로이긴 하지만 이 판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비록 이런 스탈의 오페라 판타지가 오늘날에는 별로 대접을 못 받고 있기는 하지만.. 19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모든 작곡가겸 피아니스트가 당시 가장 인기있는 오페라의 주제를 변용한 작품을 자신의 연주 곡목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모짜르트나 베토벤 그리고 쇼팽도 유명한 오페라 주제를 가지고 매우 뛰어난 변주곡을 만들기도 했으니.. 하물며 리스트 같은 양반이 이런걸 안 했을리가 있겠냐.. 당근빠따로 자기 연주회에서 폼 잡을려구 조낸 많은 오페라 판타지를 만들었는데.. 그들 중 진짜루 뛰어난 것들은 그저 단순히 뛰어난 재기를 보여주는 것 뿐만 아니라 곡이 원래 가지고 있는 오리지날리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작곡자의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판에 수록된 돈 조반니의 회상에서 리스트는 그런 종류의 걸작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곡은 1841년에 쓰여졌고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부분이 이 복잡한 드라마의 다른 면들과 각각 연관되어 있는.. 일종의 작은 교향시와 같은 느낌이라 하겠다.. 첫 부분은 석상의 저주와 기사장의 복수를 암시하는 것처럼 어둡고 무겁게 시작하다가 이러한 느낌이 점점 심화되면서 마침내 격렬하고 과격한 반음계의 패시지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두 번째 파트로 넘어가 돈 조반니가 체를리나와 부르는 이중창의 멜로디가 밝고 가볍게 전주에 이어 등장한다.. 졸라 머찐 순간이자 리스트의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되는 장면이다.. 세 번째 파트는 석상의 복수가 재연되고 그 와중에 돈 조반니의 샴페인의 아리아가 이어져 나오면서 이 잉간이 끝까지 개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결국 돈 조반니의 파멸적 운명을 암시하는 것처럼 기사장의 주제가 나오면서 곡은 끝난다.. 그야말로 초절기교의 악보와 작품의 스토리를 얼마나 절묘하게 만들어 나갔는지 곡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연주 역시 곡의 성패를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치만 요즘은 워낙에 기교적으로는 빠방한 피아니스트들이 넘쳐나는고로 당시의 인기만큼은 못 누리는 곡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연주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튜브 톱스타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발렌티나 리시차의 연주를 걸어 놓는다.. 진짜 뛰어난 기교와 더불어 남자 싸대기 날리는 박진감을 그 특유의 공중부양 하는 듯한 손 모양으로 들려준다.. 뭐 이 언니 억까할 때 단골 메뉴인 정서적 깊이의 부족이건 내면적 감수성의 결핍이건 그런건 걍 다 개나 줘버리라고 하고.. -_-ㅋ 이런 연주는 걍 감탄하면서 들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