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바하.. 칸타타 140번..

rickas 2022. 2. 11. 21:07

오늘은 간만에 바하.. 생각해 보면 바하는 정말 대단한 양반이다.. 그게 통상적인 의미가 됐건 아님 좀 다른 세속적인 의미가 됐건..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는 인물임은 틀림없다.. 그가 지속해서 양산.. 그것도 대량 양산.. 그니깐 말하자면 공장장처럼 찍어낸 그의 작품들의 방대한 양도 양이지만.. 애들도 그렇게 방대하게 양산을 했다는 것도 대단.. -_-ㅋ 그 양산된 작품들이 가지는 일정 수준 이상의 균일한 품질.. 그런데 사실 이런 그의 양산품들이 상당 부분 그의 먹고사니즘으로 인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결과물임을 생각해 볼 때 그를 음악의 아빠니 뭐니 하기도 한다만.. 진정한 아빠로서 그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활 전선에서 조뺑이를 치신 졸라 피곤한 인생을 살았던 가장의 모습이 다른 한편으로는 그려지는 것이다.. 특히나 그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헨델 같은 양반과 비교해 볼라치면.. 바하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서 양 어깨에 그 가족의 무게를 짊어지고 시골 촌구석에 짱박혀 외길의 삶을 살아간 영감님이라면.. 헨델은 이와는 달리 국제적으로 놀아보신 자유인이라고 쓰고 날건달이라고 읽는 그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은근히 부러움이 가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싶다.. -_-ㅋ 머 바하의 음악이 가지는 위대성이라는 것은 굳이 내가 미주알 고주알 따질만한 실력도 없거니와 그러기도 귀찮고.. 글타구 내가 조낸 무슨 바하의 음악을 통해 신을 영접하고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중뿔난 신앙심이 있는 것두 아니구.. 걍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것두 꿈보다 해몽이 더 앞선.. 그니깐 이빨꾼들의 농간이 아닐까 싶은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하의 음악 역시 걍 듣고 즐기면 되는거 아닌가 싶다.. 그보다 더 나아가서 정신적인 안식과 심리적인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그의 음악이 가지는 가치는 충분한 것이라 생각한다..


바하가 라이프치히에서 칸토르로 봉직했던 기간인 1723년부터 1750년 동안 교회력으로 따지면 삼위일체절 이후 27번째 주일은 딱 두 번 있었다고 한다.. 이때를 위해 작곡한 칸타타가 바하의 칸타타 중에서도 졸라 유명한 축에 드는 140번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이다.. 이 곡이 실려 있는 판도 아마 몇 종류가 있는 것 같은데 지난 주말에 판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 우연히 얻어 걸려서 듣게 되었던 이 판을 올린다.. 레이몬드 레파드가 잉글리시 체임버와 연주한 판으로 내가 애정해 마지 않는 엘리 아멜링 누님이 등장하신다.. 다시 이 곡으로 돌아가서 일케 졸라 유명한 곡인데 실제 바하 시절에 연주된 것은 절기를 맞추다 보면 두 번일 것으로 보인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원래 교회력의 축일 대부분이 부활절을 기준으로 정해진다는데 이 부활절은 춘분이 지나고 돌아오는 첫 번째 보름 후의 일요일이 된다.. 근데 춘분과 보름 사이의 기간이 졸라 들쭉날쭉 할 수 있기 때문에 부활절 자체가 날짜가 흔들릴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이를 기준으로 2주 뒤로 정해지는 삼위일체절 역시 왔다리 갔다리 하게 되는 것이다.. 근데 골때리는 것은 교회력의 시작인 대강절은 성탄절 4주 전인 양력으로 정해지게 되므로 그 바로 전의 맨 마지막 주는 그 해 달력에 따라 짧게는 삼위일체절 이후 22주 길게는 27주까지 되는 것인데 바로 이 27주에 연주할 목적으로 작곡한 작품이 140번 칸타타 되겠다.. 이 곡은 3명의 솔로이스와 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인데 1731년 작곡되었으니 아마도 삼위일체절 이후 27번째 주일이 있던 그 해와 1742년 두 번에 걸쳐 연주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단다.. 곡은 필립 니콜라이가 쓴 현명한 처녀와 모지리 처녀의 우화를 얘기하는 찬송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칸타타는 일종의 결혼 칸타타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는 신랑으로서의 예수와 다가오는 그를 기다리는 신부로서 믿는자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고.. 원래 가사 내용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열 명의 처녀 이야기를 사용한 것이라 한다.. 이야기는 뭐 신랑을 맞이하기 위한 열 명의 처녀가.. 근데 이게 신랑도 열 명인지는 모르겠음.. -_-ㅋ 다섯 명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한 등불에 사용할 기름을 미리 준비했고.. 다섯 명은 준비를 안 했다가.. 나중에 신랑이 오니 자빠져서 자지 않구 기름을 준비한 다섯 명만 혼인 잔치로 들어 가고 나머지 다섯 명은 못 들어갔다.. 뭐 그런 얘기다.. 그니깐 평상 시에 미리미리 준비 좀 잘하고 있으라는 교훈적 얘기가 아닐까 싶다.. 근데 여기서 함정은 기름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이 쫌만 좀 나눠 달라고 사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미리 준비한 처녀들이 즐~ 저기 시장 가서 사오셈~ 이러구 지들만 혼인잔치로 쏠랑 들어 갔다는 것.. 근데 ㅅㅂ 살면서 피곤하고 바쁘다 보면 머 좀 그럴 수도 있는거지 싸가지 하고는.. 좀 너무하는거 아니냐.. 글구 보면 얘들도 졸라 순진하지.. 걍 적당히 기름 비슷한 걸루 퉁치구 위조했음 별 탈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_-ㅋ 곡은 워낙 유명한 곡인데다 4번째 곡인 테너 합창이 부르는 이 곡의 대표적으로 유명한 코랄도 좋지만 소프라노와 베이스가 부르는 듀엣인 세 번째 곡 아리아는 그 바이올린 독주와 함께 정말 심쿵하게 만드는 노래를 들려준다.. 당연히 소프라노는 신부를 맡은 믿음을 가진 자의 영혼이고.. 베이스는 신랑을 맡은 예수인데.. 기름을 갖고 등불을 밝히고 기다리는 신부의 노래와 금방 간다며 신부의 애를 태우게 하는 신랑의 노래가 절묘하게 얽혀 있다 하겠다..


연결시키는 링크는 쿠프만의 연주로 걸어 놓는다.. 이 양반의 연주는 오바스럽지 않은 사뿐사뿐한 발걸음이 좋다.. 그렇다고 결코 경박하지 않은 두루두루 적당한 연주라는 생각인데.. 세 번째 곡인 듀엣에서 노래하는 카수들보담두 일어서서 연주하는 바이올린 독주 언냐의 연주가 넘 므찌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