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캐슬린 페리어.. 바하, 헨델의 아리아..

rickas 2014. 12. 14. 20:16

 

 

성악을 즐겨 듣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 대딩 시절 음악에 한창 빠져 있을 때에 비하면 오히려 나이가 먹어 가면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없어져 가더라.. 특히나 종교 음악 같은 것들은 내가 오디오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사실 나같은 경우는 무신 신앙심이 투철하거나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 그저 왠지 오바스런 오페라 보다는 고음악을 비롯한 종교 음악이 훨씬 쉽게 맘에 와서 닿더라는 것.. 머 그런 연유에서 그랬던 것인데.. 그러다 보니 카수들도 일부 워낙에 잘난 누님들을 제외하면 주로 그런 음악들을 즐겨 부르는 카수들에 익숙하게 되더라능.. 그 중에서도 오늘은 무쟈게 특별한 존재였던.. 나한테 특별했다는게 아니라 현대 음악사에서 특별했다는 얘기.. -_-;; 콘트랄토 가수의 판을 간만에 꺼내 들은 김에 올려 놓는다.. 캐슬린 페리어.. 머 나란 잉간은 원래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리 조낸 유명세를 타는 양반한테는 오히려 관심을 덜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페리어의 경우 역시 예전 음악동아에서부터 하두 이 양반 저 양반 지저귀어 대길래 걍 그런갑다 했었던 것.. 그러던 것이 아무래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구 첨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 보게 된 판이 있었는데..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유리디체의 발췌 녹음을 데카 라이센스로 발매한 판이었다.. 아직도 첨 듣던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 인상이 기억에 남는다.. 한마디로 오잉.. -_-;; 내가 워낙 천성이 얄팍하구 경박스러운 고로 귓구녕에 화려하게 꽂히는 목소리에 당연히 맘이 가기 마련인데.. 아 이 양반의 목소리는 아무리 콘트랄토라구 해두.. 그리고 그녀를 기사에서 보아왔던 대로.. 왕년의 여배우스런 비주얼과도 완전히 다른 그야말로 따로 노는 느낌이 들어서리.. 개황당 내지는 당혹.. 바로 그것이었다.. 완전 중성적인 두께감 쩌는 목소리.. 아니 슈발.. 이런 목소리를 지성이 넘친다구 하는건가부다.. 난 지성이 넘치기는 글러 먹었네.. 덴장.. -_-;; 사실 나야 머 남들이 다 좋다구 해두 내가 안 내킴 그거 굳이 애써서 들으려구 노력하는 수고를 절대 안 하는 고로 그렇게 페리어 역시 걍 잊어 먹구 말았는데.. 그녀의 목소리에 완전 맛이 간 것은 그보다 한참 뒤였다.. 바로 그녀가 부르는 마태 수난곡의 몇 곡이 실려 있는 데카의 싸구려 판..에이스 오브 클럽 판이었는데.. 오늘 올리는 이 판이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아득한데 암튼 판을 고르다 걍 눈에 뜨이길래 예전 생각두 나구 해서 호기심에 집어 왔던 판인데.. 이 판을 들어 보구서는 캐슬린 페리어의 노래가 이래서리 사람들이 그케 환장을 하는구나.. 하는 감이 오더라.. 머랄까.. 분명히 중성적인.. 흔히 여성의 목소리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여리여리한 느낌은 전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대역에서 마치 심산유곡의 샘물과 같은 맑은 느낌이 안정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반짝거린다기 보다는 어두운 심연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듯한 그런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주고 있더라는 것.. 진짜 머라구 혓바닥으로는 표현을 하기 힘든 오묘한 소리가 바로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부르는 마태 수난곡의 '주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듣고서는 완전히 정신줄을 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치만 역쉬.. 그녀의 말러는 내가 워낙에 말러랑 친하지가 않은 고로 안 듣게 된다능.. -_-;; 비록 페리어가 부른 말러가 아무리 전설로 남았지만서두 말이다..


캐슬린 페리어는 일찍 세상을 떠났던 고로 실제 프로페셔널한 경력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하지만..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그녀가 부른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지휘했고.. 그 이후 그녀의 신실한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었던 발터 슨상님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전 세기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성악가 중의 한 명이었다.. 그토록 짧은 활동 기간 동안에 이 정도의 족적을 남긴다는 것이 사실.. 그녀 이전 영국의 카수들이 그리 유명한 양반들이 없었던 고로 영국넘들이 의도적으로 띄우기 위해 노력했다손 치더라도.. 절대 포장질로 이루어질 일은 아니라는 것.. 그녀의 마지막 무대는 짧은 생애 만큼이나 드라마틱 했는데.. 바로 그녀가 1946년 글라인드 본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던 시절 역할을 맡았던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유리디체를 그녀의 마지막 무대에서도 공연을 했던 것이다.. 그 마지막 무대는 1953년 2월 코벤트 가든에서의 공연이었는데 바비롤리 경의 지휘로 원래 네 번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병세는 악화일로를 치닫구 있었고.. 그래서리 간신히 두 번의 공연만으로 마지막 무대를 마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로부터 몇 개월 후인 10월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무엇인가를 세상에 만들어서 내어 놓기에는 그녀가 활동했던 기간이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나면서도 한때는 전화 교환원 출신이었던 그녀가 남긴.. 영혼을 일깨우는 듯한 노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조금도 스러지지 않는 듯하다.. 오늘 날씨두 꿀꿀한데 이 판을 듣구 있자니 기분이 완전 가라앉는 듯하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에서 뭍어 나오는 빛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위안을 받는 듯한 느낌도 들구.. 암튼 조낸 복잡한 감정이 맘 속에서 빙빙 돌다 나가는 느낌이다..


연결시키는 링크는 역시나 그녀가 부른 주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말콤 사전트가 지휘하는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1946년 녹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