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3번..
흔하게 만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에 감동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자기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 대해 쓸 때마다 호감을 넘어서는 자그마한 감정의 떨림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 대단한 물건이고.. 그것이 바로 사용하는 이 자신에게는 명품이 아닌가 싶다.. 요즘이야 못 먹구 못 살았던 과거에 대한 한 맺힌 질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신 철천지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ㅅㅂ 나두 명품 쓰구 있다는 환장병이 걸린 듯이 오만 것들에게 전부 다 명품 타령질을 쳐 해대는데.. 그건 ㄴㅁ 딱 됐고.. 걍 내 기준에 명품이란 고이 모셔 놓고 숭배하고 감상하면서 자랑질을 쳐 해대는 것이 아닌.. 내가 실제로 사용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한테 감동을 주는 넘.. 이런 넘이 명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좀 우끼는 얘기이긴 하지만.. 음악에 있어서 나한테 마치 명품처럼 느껴지는 넘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베토벤 슨상님의 교향곡 3번이다.. 사실 베토벤의 교향곡.. 그 중에서도 졸라 흔해 빠진 3번 교향곡은 어느 때나 쉽게 들을 수 있고.. 또 그 만큼 식상한 느낌이 들 만도 한데.. 희한하게도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그리고 그 잘난 명반이구 나발이구 안 찾구 걍 어느 판을 대충 꺼내 듣더라도 음악 자체만으로 그 때마다 감정의 떨림을 제공한다는 것이 참 대단한 곡이라는 생각이다.. 왜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느냐 하면.. 아까 잠깐 음악 파일을 찾아서 돌아다니다.. 요즘은 사무실에서 늘상 음악을 틀어 놓고 지내다 보니 자꾸 파일 형태로 된 넘을 찾게 되는 듯.. 암튼 슈만의 작품 몇 개를 다운 받다 기다리구 있기도 맹숭맹숭해서 유튜브에 머 잼있는 넘 없나 하구 훑어 보었는데.. 우연히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베슨상님의 3번이 풀 버전으로 올라와 있길래 걍 호기심에 첨부터 보기 시작했다.. 근데 걍 음악에 퐁당 빠져서리 꼼짝도 안 하구 이걸 그대로 다 보구 말았다는 것.. 네덜란드 라디오 챔버 필하모닉이라는 웬 듣보잡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영상이었는데.. 이거 듣다 보니 연주하는 꼬라지가 범상치 않아서리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헤레베헤나 브뤼헨 같은 유명한 지휘자들이 객원을 하는 방송 오케스트라더라.. 소개를 보다 보니 골 때리는 것이 네덜란드 당국의 공영 방송 예산에 대한 대대적인 삭감으로 인해 2013년 8월에는 해산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얘기를 읽어 보니 좀 전에 봤던 영상이 감이 또 다르게 다가오더라는 것.. 그래서 일단 고해상도로 다운을 받아 놨는데.. 근데 머니머니 해두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연주가 끝나고 나서 헤레베헤가 직접 단원들 하나하나에게 다가가면서 감사 표시를 하는 장면.. 보통은 걍 쇼맨쉽이나 인사치레 정도로 대충 하고 마는 것을 흔히 보게 마련인데.. 이 양반은 그게 아니더라.. 먼가 졸라 감사가 진심으로 우러나서 표시를 하는 듯한.. 그 잘나빠진 식상한 단어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진정성이 느껴지더라는 것..
암튼 이 얘기는 그걸로 됐고.. 내가 또 한 번 삘이 받으면 걍 내쳐서 고하는 성향이 있는 관계로.. -_-;; 좀 정신을 가다듬은 후 LP를 한 장 꺼내서 들었다.. 내가 가지구 있는 3번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는 졸라 개뻥이구.. -_-ㅋ 걍 쫌 되는데.. 보면 내가 이 넘으 판을 왜 샀을까 싶은 넘들까지 있다.. 젠장.. 하여간 갸들중에서 한 장을 골랐는데.. 초현대식 최근의 연주를 봤으니 LP라는 고리짝 미디어에 걸맞게 간만에 푸슨상님의 3번을 꺼내 들었다.. 1944년 비엔나 필하모닉과의 실황 판이다.. 푸르트뱅글러와 비엔나 필의 마지막에 관한 얘기가 자켓의 뒷 면에 있는데..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비엔나로 돌아와서 발퀴레를 녹음했고 이는 이 죽어가는 양반이 섬광처럼 남긴 음악적 유언장이 되었다고 한다.. 발퀴레의 녹음을 마치자마자 푸슨상님은 음악 뿐만 아니라 비엔나에 이별을 고하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리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야그다.. 그리고는 이 판에 실린 극한의 전시 상황이었던 1944년 녹음에 관한 장광설이 늘어져 있는데.. 가만히 읽다 보면 이게 졸라 신파조다.. 3번이 초연되었던 시절 비엔나의 상황과 이 연주가 있었던 시절의 비엔나를 얘기하면서.. 폐허와 구속.. 심지어는 죽음으로부터도 부활하는 인간의 꺾이지 않는 의지와.. 이를 구현한 베토벤과 푸르트뱅글러에 대한 찬양질을 해댄다.. 그래서리 이걸 누가 썼나 하구 보니 앙드레 튀뵈프더라.. 예전에 이순열 슨상께서 쓰신 책에.. 이 양반 얘기가 나오는데.. 메뉴힌과 푸르트뱅글러의 베토벤 협주곡 공연 실황에 대한 튀뵈프의 평에 대해 쓴 얘기.. 튀뵈프는 지가 기대한 환상을 그 연주에 투영시켜서 평을 했다는 것.. 근데 거기도 보면 튀뵈프의 평은 졸라 신파다.. 그리구 푸슨상에 대한 한없는 존경심이 절절 흐르는 것 같기도 하구.. 머 어찌 되었건 그건 평론가 양반들의 몫이구.. 이 연주는 머 다른 푸슨상님의 연주와 마찬가지로.. 걍 주금이닷.. 평 한번 졸라 간단하다.. -_-;; 특히나 2악장의 비장함은 좀 오바가 아닐까 싶을 정도지만.. 당시 나찌 새끼들 패망 직전의 극한적 상황에 남겨졌던 비엔나 꼴을 상상해 보면.. 역시 음악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딱 됐구..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산물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3번 교향곡에서 느껴지는.. 튀뵈프가 얘기한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다.. 나한테는 무슨 연주로 듣더라도 마찬가지고.. 들을 때마다 그저 음악 자체만으로 가심에다 불을 질러대는 곡 중의 하나가 되겠다.. 그러구 보니 어제가 성금요일이구.. 내일이 부활절이구나.. 3번 교향곡이 넘나두 인간적이라 어째 좀 초월적 존재와의 교감이라는 면에서 볼 때는 안 어울리는 듯도 하다만..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의 고뇌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생각해 보면 어딘가 통하는 이야기의 와꾸가 나오는 듯 하기도.. 하여간 간만에 3번을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다..
아래는 아까 낮에 보았던 헤레베헤의 영상이다.. 콘서트헤보 홀에서의 연주 영상인 듯한데 이거 아주 좋다.. 먼가 소박하구 진지한 헤레베헤의 액션하며.. 실실 끓어 오르는 듯한 단원들의 분위기.. 근데 플룻 연주하는 누님의 액션이 졸라 커서 옆에 사람 한 대 칠까봐 보는 내내 불안하더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