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코발디.. 쳄발로를 위한 토카타..
휴일 오전은 쳄발로 소리를 듣기 좋은 시간이다.. 커피를 한 잔 내려서 여유있게 퍼질러 앉은 담에 쳄발로 판을 올려 놓고 귀를 기울일라치면 졸라 심신이 녹아 내리는 듯하다.. 오늘 꺼내 들은 판은 프레스코발디의 작품이 실려 있는 텔레푼켄 판인데.. 원래 이넘의 레이블 소리를 그닥 맘에 들어하지는 않으면서도 워낙에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음악들을 많이 녹음한지라 걍 어쩔 수 없이 이판 저판 사서 듣게 되었는데.. 지금 올리는 이 판은 예외다.. 예전에 이 판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는 깜놀했던 기억..
베니스의 16세기 후반기는 다성 오르간 및 피아노 음악의 첫 황금 시대였다.. 이러한 이태리에서의 시대적 정점이 바로 초기 바로크 시대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의 작품이 되겠다.. 프레스코발디는 1583년 페라라의 존경받는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당대의 유명한 오르가니스트 루짜스키의 제자로 들어간 어린 시절부터 상당한 재능을 나타냈다고 한다.. 1604년에는 로마의 성 세실리아 아카데미아 수도회의 오르가니스트 겸 카수가 되었고.. 로디 대주교의 플랑드르 여행에 동행하면서 네덜란드의 오르간 음악에 익숙하게 된다.. 1608년은 그에게 있어서 두 가지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해였는데.. 하나는 그의 첫 작품들이 지오반니 가브리엘리와 클라우디오 메룰로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과 나란히 출판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그토록 열망했던 성 베드로 대성당의 오르간 주자가 된 것이었다.. 그는 이 직무를 그가 죽던 해인 1643년까지 35년 동안 지속하였다.. 프레스코발디가 가졌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의 특별한 점은 그의 수많은 잘난 제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는 프로베르거 같은 이가 있음.. 당대의 오페라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성악 및 기악 작품들을 무쟈게 다양하게 남겼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당시에는 음악가들의 봉급으로 감당하기에는 대량의 작품을 인쇄하는데 드는 비용이 졸라 높았던지라 그의 작품들 중 소수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만.. 그나마 건반 음악들은 상당량을 후대를 위해 남겨 놓았다.. 그의 작품이 후대에 끼친 영향은 특별히 독일 음악가들에게 강하게 나타나는데.. 북스테후데의 상상력이 넘치는 오르간 작품이나 바하의 오르간 작품들은 프레스코발디의 영향을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프레스코발디의 창작 활동이 활발했던 그의 중후반기 시절에 그는 초기 작품들을 기초로 이를 변형하거나 새로운 것들을 추가하는 작업을 즐겨했다.. 일례로 1637년에 출판된 오르간과 쳄발로를 위한 토카타 작품집은 1615년에 출판된 컬렉션의 다섯번째 에디션이었고 이는 중간에 1627년에 다른 형태로도 울궈 먹은 것이었다.. 따라서 나중의 작품집은 그 이전의 다양한 스탈의 작품들을 하나로 결합시켜 놓은 것이 되겠다.. 당시의 관례대로 프레스코발디 역시 하프시코드 음악과 오르간 음악을 분리시켜 놓지는 않았는데 이는 나중에 바하 시대 정도에 가서야 비로소 악기 별로 구별이 되기 시작한다.. 프레스코발디의 가장 위대한 걸작들은 그의 토카타 작품들이다.. 비록 그가 이 형태를 창안한 양반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는 이 형태를 당시의 극한의 가능성까지 구사하였던 인물이었다.. 이 작품들에서 우리는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형식적 요소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1637년에 출판한 1집과 2집 토카타가 이 판에 실려 있는데 앞서도 얘기했지만 일단 녹음이 졸라 좋다.. 블란딘 베르렛의 쳄발로 연주인데.. 내가 여태 들어 본 쳄발로 녹음 중에서 유별시리 소리가 좋은 판이 아닌가 싶다.. 무쟈게 투명하면서 부드럽기도 하다가 간혹 폐부를 찌르는 듯한 칼날 같은 뾰족함까지 어느 것 하나 실체감을 넘어선 오바의 경지까지를 들려 주는 듯한 소리이다.. 음악 자체는 그야말로 바로크로 넘어가지 전의 약간은 촌빨이 날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나중에 바로크 시대로 가서는 모음곡에 등장하는 춤곡 형식의 원형들이 이런 저런 형태로 실려 있는데 "Aria detto la Frescobalda" 라는 곡은 정말 유별시리 이쁘다.. 이런 표현력이 이 시대에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이양반도 시대를 앞서간 양반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