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rickas 2012. 4. 7. 21:40

 

 

오늘 낮에는 간만에 백조의 호수를 꺼내 들었다.. 전곡이 실려 있는 앙세르메의 판인데.. 와이드밴드라 그렇겠지만 소리가 무척이나 좋다.. 늘상 느끼는 거지만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호화찬란하게 번쩍거리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이 정도로 명암과 입체감이 뚜렷한 실체감을 단순히 소리를 들으면서 얻기란 쉽지가 않을 것 같다.. 근데 소리는 좋은데 이 넘의 판은 들을 때마다 느끼는건데.. 오케스트라가 좀 소극적인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머 그렇다.. 워낙에 잘나고 출중한 넘들이 쌔발린 속에서 그리 학실한 존재감을 내기가 쉽지는 않았겠지만 암튼간에 좀 덜 영근 것 같은 솜씨를 보여주는 듯해서 살짝 아쉽다..

 

각설하구.. 1871년 차슨상이 그의 누이인 알렉산드라의 가족과 함께 카멘카에서 머무는 동안.. 차슨상은 게르만 전설인 백조의 호수에 기초한 짧은 발레 음악을 그의 조카들에게 써 주었다.. 4년 후 그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에게 보내는 9월 22일자 편지에서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 감독에게서 백조의 호수 발레 음악 작곡을 의뢰받았는데.. 돈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이런 종류의 음악을 내 손으로 써 보는 것이 오랜 바람이었기 때문에 이를 수락했다고 썼다.. 차슨상은 그의 초기 작품을 이 새로운 프로페셔널 발레에 포함시켰고.. 최종 버전은 1875년 8월부터 1876년 3월 사이에 전 4막의 대규모 형태로 작곡되었다..

리허설은 1877년 초 시작되었고.. 같은 해 3월 4일에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무대장치는 개판이었고.. 안무 연출은 형편무인 지경이었으며.. 음악은 스코어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졸라 아마추어급의 연주자들이 당황해서 허우적대는 바람에 상연은 좆망이 되고 말았단다.. 근데 역시 졸라 소심하면서 자기검열이 유별나신 차슨상께서는 이러한 실패에는 자기 음악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고는 스코어를 일부 뜯어 고치려 한다.. 1882년 9월에 그는 출판업자인 유르겐센에게 콘서트용 음악으로 일부를 다듬기 위해 이 발레의 오케스트라 악보를 보내 달라고 편지를 썼다.. 물론 이는 그해 초에 새로운 안무가 올라프 한센의 연출로 볼쇼이 극장에서 재상연되었지만 역시 좆망이 되고 말았던 터라 음악이라도 다듬어서 콘서트용 모음곡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쨌건 이는 실현되지 못했고 차슨상이 한 번 더 그의 작품의 일부라도 보게 된 것은 1888년 프라하 방문에서 2막이 공연되는 것을 관람했을 때였는데 당시 그는 이 공연을 꽤나 흡족해 했다고 한다..

1893년 차슨상이 세상을 하직한 후.. 당시 졸라 유명했지만 이미 늙어버린 불세출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는 백조의 호수의 악보를 검토하구서는 이거야말로 졸라 걸작중의 걸작이라는 것임을 금방 눈치 긁게 된다.. 그는 페테르스부르크의 황립 극장 감독에게 적어도 일부만이라도 차슨상의 추도 공연으로 상연하자는 제안을 하는데.. 음악 감독은 이에 동의했고 즉시 차슨상의 동생인 모데스트에게 시나리오 일부를 수정하게 하고 작곡가 드리고가 일부 음악을 변경하게 한다.. 2막이 먼저 완성되었고 프티파가 안무 플랜을 디자인한 담에 레온 이바노프에게 안무 연출이 맡겨진다.. 이렇게 해서 백조의 호수는 1894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다시 막을 올리게 되는데 졸라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나머지 막 역시 곧 이어서 준비가 되었고 마침내 프티파의 안무 연출로 1895년 1월 27일 동 극장에서 공연이 되는데 역시 엄청난 환호를 받는 대성공을 거둔다는 해피 엔딩으로 백조의 호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사실 차슨상의 출판업자였던 유르겐센은 드리고의 편집질에 졸라 열이 받아서리 그해 차슨상의 오리지날 스코어를 출판하려고 준비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비록 드리고가 차슨상의 피아노 곡 일부를 편곡해서 이 작품에 집어 넣거나 음표를 무자비하게 삭제하는 등 과격한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결국 오늘날 공연에 이용되는 것은 드리고가 편곡한 악보이고 이 판 역시 이를 근거로 연주되고 녹음되었다고 한다..

어쨌건 무엇보담도 백조의 호수의 음악은 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졸라 극도로 긴 악보임에도 불구하고 차슨상의 영감이 빛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의 특징인 풍부한 멜로디와 오케스트레이션의 교묘함과 색채감 등이 넘치는.. 발레를 넘어서는 음악만으로도 인정을 받아야 하는 걸작이다.. 근데 마지막이 좀 우낀데.. 이는 상연하는데마다 다르게 연출을 하는 듯.. 왕자가 로트바르트에게 칼빵을 놓아 물리치고는 공주님과 졸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던가.. 아니면 왕자와 오데트 둘 다 로트바르트에게 당하구 걍 죽는다던가.. 머 기타 등등의 결말이 있는 것 같던데.. 이 마지막은 음악 자체도 좀 아리송한 듯.. 이게 비극적인 결말을 노래하는 것인지.. 아니면 빛나는 승리를 노래하는 것인지 음악만으로도 헷갈림.. 그래도 기왕이면 둘 다 디지는 것이 좀 더 현실감이 있을 듯.. 이제껏 보아 온 백조의 호수 공연을 실공연이건 DVD이건 곰씹어 보면 이 로트바르트라는 시키가 워낙에 쥐새끼 대마왕 같은 포스를 졸라 발산하는지라 찐따스러운 우리으 왕자님이 물리칠 정도로 그리 만만한 넘이 아닐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_-ㅋ

 

백조의 호수를 듣고 있자니 떠오르는 두 가지 기억..

하나는 예전에 아마도 중딩 시절이었을 것임.. 집에 있던 이 곡의 테이프를 꽤나 자주 들었는데.. 당시에 아버지 차 안에서 졸라 크게 틀어 놓고 듣다 어머니한테 욕을 쳐먹었던 기억.. 동네 떠나가는 줄 알았다고.. --;; 넨장.. 내가 밖에도 그리 크게 들릴 줄 알았남.. 당시에 첨으로 밀폐된 장소에서 울려 퍼지는 스테레오의 위력에 넋을 빼앗겼던 기억이다..

다른 하나는 백조의 호수가 느닷없이 흘러 나오던 장면이 기억나는 영화.. 애수다.. 중딩 시절.. 비비안 누님과 로버트 형님에게 완존 맛이 가서 보았던 영화.. 졸라 신파의 극치와 유치를 치달리지만.. 캔들 클럽 장면에서 보여주던 낭만은 이제는 어떤 영화에서도 보여 줄 수 없는.. 그런 시대가 되고 말았다..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