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젤렌카.. 두 대의 오보에와 바순을 위한 소나타..

rickas 2010. 3. 21. 00:54

 

 

오랜만에 이 곳에 들렀다..

두어 달 정도 내팽개쳐 놨더니 어째 좀 낯선 감까정.. --; 예전엔 그저 내가 듣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들을 이곳에다 시간 날때마다 끄적거려 놓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인생이 바쁘다 보니.. ㅋ 뭐 바쁜것도 있었지만 그저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그넘의 FM을 하게 되는 습성이 언제부턴가 생겨버려서.. 이번 시즌 제대로 막장 크리 타고 있는 유베 덕에 실축은 텄고.. 걍 겜이나 하자.. 그런 셈이다.. 거기다 요 두어 달 동안 러시아 그림쟁이들의 그림책을 몇 권 읽느라 거기에 정신이 쏙 나갔었다.. 특히나 러시아 그림 얘기 책은 예전부터 읽어 보려고 벼르던 것이라서 연짱으로 두번을 읽어 제꼈다.. 출장 가던 비행기 안에서 몽롱한 상태로 읽은데다 오는 길에 이모님을 만나서 책을 드리고 왔기에 집에 와서 한 권을 또 사고 말았다.. 그 김에 한번 더 읽은 것.. 암튼 그러다 보니 블로그질은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 버렸다..

 

음악은 그래도 짬짬이 들었다.. 더구나 지난 연말이던가 연초던가.. 벌써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동안 심심찮게 삐걱거리던 프리 앰프를 몽땅 깔끔하게 손을 봐서 앓던 이 빠진 것 같은 시원함에 이판저판 많이 꺼내 듣기도 했다.. 다시 제대로 손봐 놓고 음악을 듣고 있자니 오디오 소리가 꽤나 맘에 든다.. 이게 좀 모자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야 바꿈질을 할텐데.. 아직은 동력이 안 생기니 걍 이대로 가는 수밖에 엄따.. 하긴 오됴질 자체에 대한 관심도 이제는 시들해져 버린 탓도 있지만..

 

이 판은 얼마 전에 꺼내서 들었던 판 중의 하나다..

젤렌카의 두 대의 오보에와 바순을 위한 소나타.. 4번과 5번이 앞 뒷면으로 실려 있는데.. 4번이 마이너 곡이고.. 마이너 곡을 좋아하는 내 특성 상 역시 무쟈게 좋다.. 자켓 내지의 해설을 읽어 보면 젤렌카라는 작곡가에 대한 연민이 절절히 느껴진다.. 예전에 이판을 사서 들으면서.. 난 모르는 곡도 절대 내지의 해설부터 읽지는 않는다.. 괜히 쓸데없는 선입관이나 알량한 지식으로 인해 음악이 내개 줄 수 있는 영감의 순도를 왠지 떨어뜨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4번을 들으면서 하두 맘이 아려 오는 느낌이 들길래 자켓을 열고 읽어 보았더니 이 양반.. 삶이 무쟈게 불쌍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청승맞은 곡두 나오는구나.. 싶었다.. 젤렌카는 1745년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죽었는데 당시 드레스덴의 작센 선거후 궁전에서 교회 음악감독이라는 직위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아무런 애도도 받지 못했다.. 죽기 전 몇년 동안 그는 무지하게 고통스러워 했으며 점점 비사교적인 인간이 되어 갔다고 한다.. 표면적으로야 궁정 악장에 미끄러진 담에 그렇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궁정악장은 내가 먹어야 한다고 탄원서도 몇번 냈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물을 먹었다고 한다.. 결국 궁정악장은 당시 잘나가던 애숭이 녀석한테 돌아갔고.. 그는 선거후가 그의 작품을 외부에 출판하는 것도 금했었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었고.. 더구나 가족들.. 마누라나 애두 없었다.. 그의 사후 텔레만이 그의 작품 몇개를 출판하려고 해보았으나 수포로 돌아갔고 그러면서 그의 작품은 2백년 이상이나 드레스덴 궁전에 쳐박혀서 잊혀졌었다.. 뭐 기타 등등..

 

암튼간에.. 이 곡들은 그가 푹스의 가르침을 받던 거의 마지막 무렵인 1715년 초쯤 쓰여졌다고 하니.. 비교적 젊은 시절에 작곡된 셈인데.. 이 정도로 멋진 트리오 소나타를 작곡하는 인간이 아무리 당대의 명망있고 능숙한 음악가였다고는 해도.. 푹스한테 배울게 뭐가 그리 있었을까 싶다.. 모두가 잠든 밤에 듣고 있자면 두 대의 오보에가 울려대는 애잔한 느낌이.. 리얼 월드에서 벌어지는 뒷골 땡김을 차분히 어루만져 주는..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소박하게나마 위안을 얻게 해주는 그런 음악이다.. 녹음도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