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Balalaika Favorites..

rickas 2009. 3. 11. 00:24

 

 

생각해 보면 중딩 때 나야말로 헐리우드 키드질을 하구 싸돌아 다녔다..

물론 그 짓거리는 고딩 때도 계속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러 다니는데 맛을 들였던 시기는 바로 그 때였다.. 중1 때 담임이 영화를 좋아해서 굳이 연소자 관람불가 안 따지고 대충 데리고 다녔던 것 같고.. 학교도 머 거의 막장이라.. 시험만 끝났다 하면 동네 3류 극장으로 단체 관람 명목의 영화를 되는 대로 보여 주었던 것 같다.. 기껏 보구 나면 선생들이 한다는 소리가.. 이거 애덜 보는 영화 아니구만.. --;; 그래도 그 당시에 개봉관이건 3류 극장이건 안 따지고 쏘다닌 덕에 웬만한 영화들은 코딱지만한 TV가 아닌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고.. 그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가심을 벌렁거리게 하는 영화들이 생각 나곤 한다.. 지금은 사라진 단성사.. 국도.. 스카라.. 국제.. 피카디리.. 그런 극장들.. 그리고 동네 3류 극장이던.. 미도.. 세일.. 미아리.. 천지.. 그런 극장들이 기억 난다.. 좌석에 앉아 있으면 화장실 냄새가 실내의 곰팡이 냄새와 오버랩 되어서 생겨나던 그 오묘한 냄새..

 

되는대로 치다 보니 글이 삼천포로 날라 가는데..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그 당시에 개봉관.. 아마 국도였던 것 같은데.. 에서 보았던 영화.. 닥터 지바고 얘기다.. 중딩 1년 때였을텐데.. 그 넘의 영화 보군 쇼크 팍 먹었던 기억이.. 뭐 그 당시 초딩 때를 완전히 벗지 못한 나이에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스러져 가는 한 우유부단한 지식인의 삶을 가슴 아파하거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지는 않고.. 오로지 그 장면 장면에 나오던 숨막힐 것 같던 러시아의 자연 풍광에 온통 맘이 쏠렸던 것 같다.. 특히나 지바고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장례를 치르던 장면에 나오던 러시아의 황량한 벌판.. 그리고 구덩이 속으로 내려지던 관.. 상당히 쇼킹했었다.. 그리곤 지바고에게 남겨졌던 어머니의 유일한 유품.. 빨간색의 이쁘고 쪼끄만 발랄라이카.. 난 발랄라이카가 그 당시의 기억 때문에 크기가 다 고만한 줄 알았었다.. 이 판을 만나기 전까진..

 

러시아 음악을 주로 발랄라이카로 이루어진 러시안 민속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판이다..

예전부터 소리가 좋다고 소문났던 머큐리 판이기도 한데.. 마침 중량반 리이슈 덕에 새판을 쉽게 구했다.. 그런데.. 이 판 자켓에서 보니 으헐..  이 넘의 발랄라이카라는 넘이.. 먼 넘의 이사짐 이불 보따리만하다냐.. 놀랐다.. 표지와 뒷면은 엄청 조잡하게 잔뜩 갈겨놨다.. 소련에서 미쿡 장비와 스탶으로 녹음한 첫 레코딩이란다.. 머 내 알 바 아니고.. 중요한 것은 이 판의 소리도 소리지만.. 음악이 무척이나 좋다.. 첫 곡인 두 개의 민요에 의한 환상곡부터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여 주더니 두 번째 곡인 동틀 때 라는 곡에서는 바로 이것이 러시아 풍이라는 것을 심장이 콩닥거리게 들려 준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닥터 지바고에서 보았던 러시아의 풍광이 아련히 떠오르는 것만 같다.. 다른 곡들도 러시아의 정서를 보여주는 그런 곡들로 채워져 있는데.. 소리가 진짜 좋긴 좋다.. 러시아의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은 그들만의 무엇인가에 푹 담가보구 싶을 때 그럴 때 듣기 좋은 판.. 이 판을 들으면서 페로프나 사브라소프의 그림들이 꽉 차있는 도록을 천천히 넘겨 볼 수 있다면.. 월매나 좋을까.. 쩝..

 

지난 주말에 다시 닥터 지바고를 보았는데.. 으이구.. 한심하게 순진한 인간.. 나는 너무 닳고 닳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