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 쿠르치..
갈리 쿠르치..
내가 원래 성악을 별로 안 좋아했던 데다가 20년대 가수인 그녀 노래를 들어 봤을리가 없었다.. 그냥 그 시절 무쟈게 잘 나가던 가수였다라는 것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 밖에는.. 그녀의 노래을 처음 듣게 된 것은 한 십년 전쯤 미국에 출장 갔다가 삼촌 집에서 주말 하루를 놀면서 묵을 때였다..
삼촌이 내가 어렸을 때 미국에 간 이후 삼촌 집을 직접 방문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것 저것 구경을 시켜 주시다가 침실에 조촐하게 차려 놓은 오디오와 음반들을 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삼촌은 클래식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했었다.. 듣는 음악의 범위도 나처럼 편식을 많이 하는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되게 광범위했고.. 그런데 가지고 있는 판의 양을 보고는 난 적잖이 놀랬다.. 내가 생각했던 것에 비해 너무 양이 적었던 것이다.. 한 백장이나 되었으려나.. 왜 이렇게 판이 적냐는 내 말에 삼촌은 피식 웃으면서 많이 처분해 버리셨다고 했다.. CD가 대세인 시대에 LP를 마냥 가지고 있기도 뭐해서.. 거기다 숙모는 컨트리 음악을 좋아해서 클래식 판 같은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촌이 하시는 말씀.. 여기 있는 판 중에서 네가 갖고 싶은 판 있으면 몽땅 가져가라.. 단 이거 한 장만 빼고.. 엥.. 이거 한 장이라니.. 그게 뭔데염.. 으응.. 이 판.. 하면서 꺼내 주시던 판이 바로 갈리 쿠르치였다.. 삼촌은 이 가수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단다.. 휴.. 취향도 특이하지.. 그래서 옛날에 젊은 시절에 그녀의 판을 구하려고 무지 애를 쓰다 시카고에서 우연히 구하고는 띌 듯이 기뻐했었다는 무용담을 구구절절히 들려 주셨다.. 하하.. 가져 가래도 안 가져 갑니다.. 다른 판들은 좀 군침 넘어가는 것들이 있었는데.. 이미 난 그때 메일 오더해 놓은 LP를 호텔로 배달시켜서 한 보따리 갖고 있는 상태여서 그냥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디 나가면 가방 하나 달랑 이외에는 다른 것들 들고 다니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해서.. 그 날밤.. 삼촌하고 짧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삼촌 방에 가면 쥐어 주던 초컬릿 이야기.. 항상 흐르던 음악.. 그 중에서도 송어 이야기.. 삼촌은 잘 기억도 안 난다고 하셨는데.. 난 기억이 생생했다.. 아무튼 삼촌은 갈리 쿠르치 판을 무지 애지중지 하셨다.. 워낙에 어렵게 구하기도 했던 거였고..
재작년인가.. 회현동에 LP 보러 나갔다가 우연히 갈리 쿠르치 판을 보게 되었다.. 보아하니 이 판이 그리 희귀한 판도 아니고 맘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판이었다.. 물론 내가 삼촌 집에서 봤던 바로 그 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삼촌 생각이 나서 한 장 사왔다..
모짜르트.. 롯시니.. 벨리니.. 마이어베어 등등의 오페라 아리아가 들어있고.. 황금시대의 콜로라투라.. 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집에 와서 올려 놓고 듣는데 사실 머 그렇게 오만 수사를 동원하면서 역사상 최고라느니 머 어쩌구 하기에는 음원이 너무 열악한 것 같았다.. 전형적인 SP 복각.. 코먹은 소리.. 지글지글 하는데다가 좁아서 답답한 음역.. 다만 방금 들린 그대 음성 같은 데서는 칼라스나 베르간자 등과 또다른 묘한 느낌을 들게 해 주는 노래를 들려준다.. 그런데 이게 과연 왕년의 이 대 소프라노의 정확한 음색일까.. 하는데에는 많은 회의가 따른다.. 그냥 정말 역사의 기록으로서의 가치밖에는.. 그 소리에서 뭉클한 무엇인가를 느끼기에는 이미 내가 너무 감정이나 상상력이 메말라 버린 것 같다..
갈리 쿠르치의 노래가 쓰인 골때리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에 알았는데 그 당시에 볼 때는 몰랐었다.. 반딧불의 묘.. 만화에서 "Home Sweet Home" 이게 갈리 쿠르치의 노래로 들어가 있었다.. 청승 맞은 만화영화에 살짝 청승 맞게 부르는 노래라.. 나름 잘 어울렸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만화는 일본 만화 중 무쟈게 밥맛 없는 만화 중 하나다.. 지 새끼덜이 전쟁 일으키고 남의 나라에서 오만 개질알 염병질은 다 떨구서는 마치 지 새끼덜이 피해자인양 찌질대는 만화.. 졸라 개밥맛이었다.. 머 그냥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는 졸라 휴머니즘 넘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건 니덜 생각이고.. 한마디로 졸라 위선적인 만화다.. 하긴 요즘은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 하고.. 일본이 우리 나라 산업화에 지대한 도움을 줬다는 새끼덜이 늠름하게 구케의원도 되고.. 자위대 새끼들 창설 기념식에도 졸라 사해 동포주의에 충만한 구케의원 년놈들이 떳떳하게 참석하는 세상이니.. 내선일체화가 다시 되어 가는 이 시대에 내가 너무 편협한 관점으로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 자료를 보니 갈리 쿠르치가 왜정 시대에 조선에 와서 공연했던 기록도 있다.. 헐..